분류
태평양 전쟁 太平洋戰爭 | Pacific War | ||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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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선 중 하나이다.
2.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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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주만 공습이 발생한 날로, 하와이가 날짜변경선 건너편에 있기에 한국 및 일본 시각으로는 12월 8일이다.[2] 시게미쓰 마모루 대사가 미주리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한 날. 일본 제국의 공식적 종전 선언은 1945년 8월 15일의 쇼와 천황의 옥음방송이다.[3] 영국은 여기 적혀 있는 인도 제국, 캐나다 자치령, 호주 자치령, 뉴질랜드 자치령 외에도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지의 식민지에서 상당한 군대를 끌고 왔다.[4]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일본에 협력했으나, 이후 일본의 잔혹한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영국에 협력하여 일본을 몰아낸다. 당시 일본이 필요 이상으로 잔혹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웅산 열사를 중심으로 한 독립군이 활약했으며, 이 독립군 소속 인물들은 현대 미얀마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5]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형식적으로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했으며, 한국광복군을 파병해 연합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참전국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6] 이들은 연합군 특수부대로부터 무기와 장비를 지원받아 게릴라전 훈련을 받은 뒤 일본군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맡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다야크족이다.[7] 대표적 예시로 PETA와 병보가 있었다. 자바인으로 부대가 구성되었으며 지휘관은 주로 일본군으로 임명되었다. 즉, 사실상 일본군의 보조군대였던 셈.[8] 그리고리 세묘노프와 같은 러시아 백군 잔당들이 만주국과 일제에 적극 협력했으며,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파시스트당 운동가들도 일제 및 만주국에 협력했다.[9] 볼드체는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이다.[A] 10.1 10.2 10.3 10.4 10.5 10.6 영연방 왕국의 총독[16] 중국 전선 제외[17] 한반도와 대만과 같이 일본 제국에서 독립한 경우도 있으나,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반도와 같이 서구 열강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