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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대만 국장.svg
국기
국장
위치
기본 정보
수도
난징시(명목상)
타이베이시(사실상)
최대도시
신베이시
하위 행정구역
18직할시 35성 1자치구 1특별행정구(명목상)
6직할시 2성(사실상)
면적
36,197㎢(사실상)
상징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
국가
중화민국 국가
국화
매화
인문 환경
인구
23375314명[A]
인구 밀도
657명/㎢[A]
정치
총통
차이잉원
부총통
라이칭더
여당
민주진보당
경제
통화
신 대만 달러
GDP(명목상)
7591억 달러[3]
1인당 GDP(명목상)
36230달러[4]
기타 정보
국가 코드
158, TW, TWN
국제 전화 코드
+886
1. 개요2. 역사
2.1. 대륙 통치 시절(1912~1949)
2.1.1. 북양 정부(1912~1928)2.1.2. 국민 정부(1928~1949)
2.1.2.1. 국민 혁명2.1.2.2. 중일전쟁2.1.2.3. 국공내전과 국부천대
2.2. 대만 통치 시절(1949~현재)
3. 여담

1. 개요[편집]

중화민국(대만)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타이완 섬과 부속 도서, 진먼다오, 우추 향, 마쭈 열도로 이루어진 공화국이다.

2. 역사[편집]

2.1. 대륙 통치 시절(1912~1949)[편집]

중화민국은 1912년 쑨원의 신해혁명을 통해 탄생했다. 공화제를 꿈꾸었던 그는 청나라의 대표적 군벌 세력이던 위안스카이와 손을 잡고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중화민국을 세웠다. 위안스카이의 힘을 빌리는 대신 총통직을 넘겨주기로 했던 쑨원은 정권을 위안스카이에게 넘기고 일본으로 갔다.

2.1.1. 북양 정부(1912~1928)[편집]

중화민국(북양정부 시절)
中華民國 | Republic of China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장.svg
국기
국장
정권을 잡은 위안스카이는 권력의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말년에는 중화민국을 중화제국으로 바꾸기도 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거센 반발을 받아 이를 취소 하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났다. 위안스카이 사후에도 중화민국은 군벌에 의해 다스려졌다.

2.1.2. 국민 정부(1928~1949)[편집]

2.1.2.1. 국민 혁명[편집]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보내던 쑨원은 북양 정부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힘이 없었던 그는 소련과 힘을 빌릴 생각을 했다. 소련의 요구는 바로 중국 대륙 내에서 세를 키워 가고 있던 공산당과 힘을 합치는 것이었다. 쑨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자신의 정당은 국민당원으로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였다. 이를 1차 국공합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쑨원은 사망했고 그의 오른팔인 장제스가 실권을 잡게 되었다. 쑨원의 뒤를 이은 그는 전투에서 승승장구 하여 결국 중화민국은 군벌의 통치에서 벗어나 국민당의 손으로 들어갔다.
2.1.2.2. 중일전쟁[편집]
1937년 일본이 중국에 쳐 들어왔다. 국민혁명 이후 사이가 나빠져 장제스는 공산당을 토벌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제스에게 공산당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를 들은 그는 다시 한번 공산당과 힘을 합치게 된다. 이를 2차 국공합작이라고 부른다. 전쟁 와중에도 둘은 서로 싸우기도 하는 등 손발이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전쟁은 중화민국의 승리로 돌아간다.
2.1.2.3. 국공내전과 국부천대[편집]
세계 2차 대전이 종료되고 중일전쟁도 승리로 끝낸 중화민국에는 분열의 시작이 일어났다. 중국 대륙의 주인 자리를 두고 공산당과 국민당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화민국의 국민 정부는 무능한 정치로 민심을 잃고 있었고 공산당을 이를 이용하여 민심의 이반을 이끌어 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국민당은 초반에는 전투를 잘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점점 공산당에 합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병력 수가 비슷해 졌고 공산당은 수많은 전투를 승리하면서 대륙을 점점 차지해갔다.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까지 함락 위기에 쳐하자 장제스는 수도를 타이완 성, 즉 대만으로 옮길 준비를 하였다. 약 200만의 군사, 국민과 수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대만으로 옮겼다.
이로 인해 중국 대륙은 공산당의 차지가 되었으며 곧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중화민국은 대륙에서 완전히 쫓겨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역은 타이완 섬과 그 부속 도서들로 축소되었다.

2.2. 대만 통치 시절(1949~현재)[편집]

중화민국은 국부천대 후에 국민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등 국력이 엄청나게 감소하였지만 대륙 시절에 얻은 권리는 당분간 유지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대륙 시기에 얻은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는 유지되었다. 그러나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힘이 커지자 UN은 UN총회를 통해 중화민국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빼앗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넘겨주었다. 중국에 UN 가입 허용뿐만 아니라 상임이사국까지 뺏기자 장제스는 UN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후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선택한 나라들에 의해 수많은 단교를 당했다. 중국이 자신들과 수교하기 위해서는 대만과 단교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단교 뿐만 아니라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쫒겨나게 되었다.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를 주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입김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만은 국제적으로 나라 취급 자체를 못 받는 상황까지 왔다.

3. 여담[편집]

대한민국에서는 '대만'이나 '타이완'이라고 자주 불린다. 수교국 14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국제 기구에서는 '중화 타이베이', 'Chinese Taipei'의 가명으로 활동중이다.
[A] 1.1 1.2 2022년 기준.[3] 2021년 기준.[4] 2022년 3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