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1920년부터 1923년까지 존재했던 튀르키예의 임시정부 체제이자 현 튀르키예 공화국의 직접적 전신.
튀르키예 대국민의회가 사실상 정부 역할까지 수행했기에 대국민의회 정부라고도 불렸고, 코스탄티니예(이스탄불)의 오스만 제국 정부와 대비되어 앙카라 정부라고도 불렸다.
건국 직후에는 오스만 제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에 국제사회에서 합법정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1922년 이스탄불에 입성하여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그 국제법상 지위를 승계하여 명실상부한 튀르키예의 합법정부가 되었고, 1923년 헌법 제정을 통해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승계되었다.
튀르키예 대국민의회가 사실상 정부 역할까지 수행했기에 대국민의회 정부라고도 불렸고, 코스탄티니예(이스탄불)의 오스만 제국 정부와 대비되어 앙카라 정부라고도 불렸다.
건국 직후에는 오스만 제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에 국제사회에서 합법정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1922년 이스탄불에 입성하여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그 국제법상 지위를 승계하여 명실상부한 튀르키예의 합법정부가 되었고, 1923년 헌법 제정을 통해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승계되었다.
2. 역사[편집]
2.1. 튀르키예 독립전쟁[편집]
1918년 오스만 제국이 무드로스 정전협정을 통해 협상국(연합국)에 항복한 후 제국의 수도 코스탄티니예에는 영국군이 진주하였고, 1919년 세브르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국토는 협상국들과 신생국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러나 일부 오스만 제국군 병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게릴라전을 전개했는데,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1]이 합류하면서 세를 크게 불렸다.
1920년 케말은 오스만 제국의회와 별도로 앙카라에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를 열었고, 곧이어 오스만 제국을 대신할 신정부 튀르키예국을 수립했다.
그러자 그리스 왕국을 비롯한 협상국들이 이를 저지하려 했는데, 그리스군은 앙카라 외곽까지 진격하여 위협했으나, 시카리아강 전투에서 케말이 이끄는 튀르키예 독립군이 이를 저지했다.
이후 전세는 튀르키예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전되어 케말은 1922년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수복하는데 성공했고, 코스탄티니예에 주둔하던 영국군마저 케말과의 협상을 통해 철군을 결정했다.
그러나 일부 오스만 제국군 병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게릴라전을 전개했는데,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1]이 합류하면서 세를 크게 불렸다.
1920년 케말은 오스만 제국의회와 별도로 앙카라에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를 열었고, 곧이어 오스만 제국을 대신할 신정부 튀르키예국을 수립했다.
그러자 그리스 왕국을 비롯한 협상국들이 이를 저지하려 했는데, 그리스군은 앙카라 외곽까지 진격하여 위협했으나, 시카리아강 전투에서 케말이 이끄는 튀르키예 독립군이 이를 저지했다.
이후 전세는 튀르키예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전되어 케말은 1922년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수복하는데 성공했고, 코스탄티니예에 주둔하던 영국군마저 케말과의 협상을 통해 철군을 결정했다.
2.2. 오스만 제국의 멸망[편집]
2.3.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편집]
제국 멸망 이후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는 헌법 제정에 착수하여,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헌법이 제정되고 무스타파 케말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튀르키예국은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승계되었다.
3. 역대 지도자[편집]
3.1. 대국민의회 의장[편집]
- 무스타파 케말 (1920 ~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