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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
2.1. 국기2.2. 국장
3. 역사
3.1. 웨식스 왕조(앵글로색슨 잉글랜드)3.2. 노르만 왕조3.3. 플랜태저넷 왕조
3.3.1. 플랜태저넷 직계3.3.2. 랭커스터 왕조3.3.3. 장미 전쟁과 요크 왕조
3.4. 튜더 왕조3.5. 스튜어트 왕조
4. 정치
4.1. 국왕4.2. 관직4.3. 의회4.4. 법과 제도4.5. 신분
4.5.1. 귀족
4.5.1.1. 귀족 작위
4.5.2. 젠트리4.5.3. 프랭클린/요먼4.5.4. 농노/평민4.5.5. 흑인 노예
5. 영토
5.1. 본토5.2. 아일랜드 섬5.3. 식민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0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잉글랜드를 지배한 왕국.

앵글로색슨 7왕국을 통일하면서 건국되어 대항해시대대영제국이라는 식민제국의 기틀을 다졌고, 스코틀랜드 왕국과 통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수립함으로써 영국의 전신이 되었다.

2. 상징[편집]

2.1. 국기[편집]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2. 국장[편집]

파일:잉글랜드 왕국 국장.svg

3. 역사[편집]

3.1. 웨식스 왕조(앵글로색슨 잉글랜드)[편집]

앵글로색슨 7왕국 가운데 유일하게 바이킹의 침공을 방어하는데 성공한 앨프리드 대왕의 웨식스 왕국이 잉글랜드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그의 손자 애설스탠의 치세에 잉글랜드 왕국이 수립되었다.

잉글랜드의 웨식스 왕조는 덴마크 크누트 왕조의 스벤 1세와 크누트 대왕 등에게 찬탈당하기도 했으나, 참회왕 에드워드가 덴마크 세력을 몰아내고 웨식스 왕조에 의한 통치 체제를 복구했다.

에드워드 사후에는 웨식스 백작 해럴드 고드윈슨이 해럴드 2세로 즉위하고, 노르웨이 국왕 하랄 3세, 노르망디 공작 기욤 2세 등이 잉글랜드 왕위를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이들 가운데 하랄 3세는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해럴드 2세의 잉글랜드군에게 패사했으나, 기욤 2세의 노르망디군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격파함으로써 앵글로색슨 토착 왕조(웨식스 왕조)의 통치는 종식되고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지배가 시작되었다.

3.2. 노르만 왕조[편집]

3.3. 플랜태저넷 왕조[편집]

3.3.1. 플랜태저넷 직계[편집]

3.3.2. 랭커스터 왕조[편집]

3.3.3. 장미 전쟁과 요크 왕조[편집]

3.4. 튜더 왕조[편집]

3.5. 스튜어트 왕조[편집]

4. 정치[편집]

4.1. 국왕[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잉글랜드 국왕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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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관직[편집]

4.3. 의회[편집]

4.4. 법과 제도[편집]

잉글랜드 왕국의 법은 게르만법에 기초한 관습법 체계를 채택하여 영미법의 원류가 되었다.

다만 문자 그대로 관습법만을 추구한 건 아니라서 마그나 카르타, 권리장전 등의 성문법도 존재했는데, 이들 성문법들은 훗날 영국 입헌군주제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4.5. 신분[편집]

4.5.1. 귀족[편집]

귀족 혈통을 타고 나기만 해도 귀족인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은 작위를 보유한 귀족 가문 수장 본인과 그 배우자 및 후계자에만 주어진 신분이었기에 잉글랜드에서 귀족은 상류층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보유한 신분이었다.
4.5.1.1. 귀족 작위[편집]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시절에는 백작이 최상위 귀족 작위였으나 노르만 정복 이후 백작보다 높은 공작후작이 신설되었다.

4.5.2. 젠트리[편집]

젠트리는 귀족의 후예이지만 작위를 물려받지 못한 귀족가의 방계들, 즉 대부분의 귀족 가문 후예들과 후술할 프랭클린/요먼 출신으로 신분 상승에 성공한 소수의 대지주들로 구성되었다.

4.5.3. 프랭클린/요먼[편집]

귀족 혈통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농노가 아닌 자유민인 사람들은 중세 초기에는 프랭클린, 14~15세기 이후에는 요먼이라 불렸다.

4.5.4. 농노/평민[편집]

중세 잉글랜드는 위에서 언급한 소수의 귀족 및 자유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구가 영지에 묶인 농노 신분이었으나, 이들 상당수가 흑사병과 백년전쟁, 인클로저 운동 등을 거치며 사실상 해방되어 자유민이면서도 위에서 언급한 전통 비귀족 자유민 계급(젠트리, 프랭클린/요먼)과는 구분되는 평민이 되었다.

4.5.5. 흑인 노예[편집]

대항해시대 이후 잉글랜드에도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었는데, 일부 흑인들이 해방되어 자유민 신분을 얻기도 했지만, 흑인 노예들의 완전한 해방은 연합왕국 수립 이후인 19세기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5. 영토[편집]

5.1. 본토[편집]

초기 잉글랜드 왕국의 본토는 지금의 잉글랜드 지방에 한정되었으나, 웨일스 공국을 정식으로 합병하면서 웨일스 역시 잉글랜드 본토의 일부로 취급받게 되었다.

5.2. 아일랜드 섬[편집]

아일랜드 영지와 그 후신인 아일랜드 왕국은 법적으로는 잉글랜드와 별개의 나라였으나, 잉글랜드 왕위에 종속되어 함께 세습되었기에 사실상 잉글랜드 왕국의 부속품으로 취급되었다.

다만 처음부터 잉글랜드가 아일랜드 전역을 완전히 직접 지배할 수 있었던 건 아니라서 초기에는 아일랜드 토착 켈트 족장 계급이 지방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종교 개혁 이후에도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다가 올리버 크롬웰의 아일랜드 원정 이후 말살당했다.

5.3. 식민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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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