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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선사시대[편집]
3. 고대 히베르니아[편집]
고대 아일랜드에는 켈트족의 분파인 게일인(고이델인)이 정착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아일랜드 섬을 히베르니아(Hibernia)라 불렀는데, 이웃한 브리타니아(Britannia)[1]가 로마의 속주가 된 것과 달리 히베르니아는 로마의 본격적인 침공을 받지 않고 켈트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유지되었다.
5세기 아일랜드에는 브리타니아 출신 성직자 파트리치오(패트릭)이 기독교를 전파했는데, 기독교 신앙이 아일랜드 다신교를 대체함에 따라 파트리치오는 사후에 시성되어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지금도 아일랜드 문화를 대표하는 명절이 성 파트리치오 축일(세인트 패트릭 데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아일랜드 섬을 히베르니아(Hibernia)라 불렀는데, 이웃한 브리타니아(Britannia)[1]가 로마의 속주가 된 것과 달리 히베르니아는 로마의 본격적인 침공을 받지 않고 켈트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유지되었다.
5세기 아일랜드에는 브리타니아 출신 성직자 파트리치오(패트릭)이 기독교를 전파했는데, 기독교 신앙이 아일랜드 다신교를 대체함에 따라 파트리치오는 사후에 시성되어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지금도 아일랜드 문화를 대표하는 명절이 성 파트리치오 축일(세인트 패트릭 데이)다.
4. 중세[편집]
4.1. 아일랜드 소왕국과 바이킹 시대[편집]
4.2.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정복[편집]
5. 근세[편집]
5.1. 아일랜드 왕국[편집]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전역에 대한 잉글랜드의 직접 지배 체제를 확립한 후 아일랜드 국왕을 칭했다.
5.2. 영국 내전과 잉글랜드 연방[편집]
5.3. 왕정복고 이후의 아일랜드 왕국[편집]
6. 근대[편집]
6.1. 영국 구성국 아일랜드[편집]
1801년 연합법을 통해 아일랜드 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통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의 구성국이 되었다.
법적으로 아일랜드도 영국 본토의 일부가 되었지만, 실질적인 차별 대우는 지속되었고, 특히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 인구가 급감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에 아일랜드 민족의 권리 신장을 요구하는 아일랜드 내셔널리즘이 나타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아일랜드 공화국을 수립하자는 아일랜드 공화주의 사상 역시 등장했다.
법적으로 아일랜드도 영국 본토의 일부가 되었지만, 실질적인 차별 대우는 지속되었고, 특히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 인구가 급감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에 아일랜드 민족의 권리 신장을 요구하는 아일랜드 내셔널리즘이 나타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아일랜드 공화국을 수립하자는 아일랜드 공화주의 사상 역시 등장했다.
6.1.1. 부활절 봉기[편집]
1916년 부활절 봉기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아일랜드인의 독립 의지를 고취시켜 이전까지는 영국 내에서의 자치권 확대만을 추구하던 온건 내셔널리즘 세력마저 독립파 정당인 신 페인(Sinn Fein)을 지지하는 결과를 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