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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하위 행정구역4. 인문 환경 및 문화
4.1. 민족과 언어4.2. 종교4.3. 건축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Roman Britain

1세기부터 5세기 초까지 영국잉글랜드웨일스 일대에 존재했던 로마 제국의 속주.

로만 브리튼은 오늘날 영국 역사학계에서 사용하는 명칭이며, 당대에는 라틴어브리타니아(Britannia)[1]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2. 역사[편집]

로마 이전 브리타니아(브리튼)의 주민은 켈트어파 브리튼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켈트 브리튼인이었다.

이들과 로마군의 첫번째 조우와 충돌은 로마 공화국 말기의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하던 도중 브리타니아까지 공격하면서 벌어졌으나, 당시 카이사르는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을 노리기보단 갈리아 속주의 안정을 위해 일종의 무력시위를 벌인 정도였기에 브리튼인들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은 제정 시대 초기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 재위 기간인 서기 43년에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은 네로 황제는 이케니(Ikeni)족 여왕 부디카가 이끄는 브리튼인 봉기를 진압했다.

네로 사후 네 황제의 해라 불리는 내전을 거쳐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늘날의 잉글랜드웨일스에 해당되는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고, 2세기 오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음으로써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과 오늘날 스코틀랜드에 해당되는 칼레도니아를 구분하는 국경을 확정지었다.

이후 일부 황제들이 칼레도니아까지 정복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이 5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다.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일시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갈리아 제국이 브리타니아까지 지배하기도 했고, 4세기 초에는 카라우시우스(Carausius)라는 군벌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두 자칭 제국은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다시 복속되었다.

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브리타니아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유럽 대륙 영토를 방어하는 것도 벅찬 상태에 몰린 서로마군이 410년 철수하면서 로만 브리튼 시대는 막을 내렸다.

3. 하위 행정구역[편집]

  • 브리타니아 수페리오르 속주(Provincia Britannia Superior)
  • 브리타니아 인페리오르 속주(Provincia Britannia Inferior)

4. 인문 환경 및 문화[편집]

4.1. 민족과 언어[편집]

고대 로마인들이 지배층으로 유입되고 라틴어가 공용어로서 사용되었으나, 인접한 갈리아 속주가 로마화의 우등생이라 불릴 정도로 순조롭게 동화되어 현지어인 갈리아어가 완전히 사멸한 것과 달리, 로만 브리튼의 주민들은 고유어인 브리튼어를 계속 보존했고, 현대까지 그 후신 언어인 웨일스어와 콘월어, 브르타뉴어[2]가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4.2. 종교[편집]

본래 브리튼인들은 켈트 다신교 계열의 고유 종교를 믿었으나,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로마 다신교로마군에서 유행하던 미트라교도 유입되었다.

기독교는 본래 로마에서 박해받던 종교라 외곽 지역인 브리타니아 속주까지 확산되는데 한계가 있었으나, 로마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신앙을 공인한 이후부터 교세를 크게 확장하여 브리튼인 출신 성직자와 신학자도 여럿 배출되었고, 켈트 문화와 기독교가 결합한 '켈트 기독교'라는 문화적 양상도 나타났다.

4.3. 건축[편집]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포함한 로마 시대 건축물은 지금도 영국 각지에 남아있다.

5. 관련 문서[편집]

[1]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 탐험가 피테아스가 온몸에 '그림을 칠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프레타니케(Prettanike)'라고 지칭한데서 유래했다.[2] 이쪽은 본래의 로만 브리튼 속주가 아닌 갈리아 북서부로 이주한 브리튼인 후예들의 언어로, 현재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