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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로마 이전 브리타니아(브리튼)의 주민은 켈트어파 브리튼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켈트 브리튼인이었다.
이들과 로마군의 첫번째 조우와 충돌은 로마 공화국 말기의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하던 도중 브리타니아까지 공격하면서 벌어졌으나, 당시 카이사르는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을 노리기보단 갈리아 속주의 안정을 위해 일종의 무력시위를 벌인 정도였기에 브리튼인들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은 제정 시대 초기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 재위 기간인 서기 43년에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은 네로 황제는 이케니(Ikeni)족 여왕 부디카가 이끄는 브리튼인 봉기를 진압했다.
네로 사후 네 황제의 해라 불리는 내전을 거쳐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늘날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해당되는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고, 2세기 오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음으로써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과 오늘날 스코틀랜드에 해당되는 칼레도니아를 구분하는 국경을 확정지었다.
이후 일부 황제들이 칼레도니아까지 정복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이 5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다.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일시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갈리아 제국이 브리타니아까지 지배하기도 했고, 4세기 초에는 카라우시우스(Carausius)라는 군벌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두 자칭 제국은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다시 복속되었다.
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브리타니아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유럽 대륙 영토를 방어하는 것도 벅찬 상태에 몰린 서로마군이 410년 철수하면서 로만 브리튼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들과 로마군의 첫번째 조우와 충돌은 로마 공화국 말기의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하던 도중 브리타니아까지 공격하면서 벌어졌으나, 당시 카이사르는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을 노리기보단 갈리아 속주의 안정을 위해 일종의 무력시위를 벌인 정도였기에 브리튼인들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은 제정 시대 초기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 재위 기간인 서기 43년에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은 네로 황제는 이케니(Ikeni)족 여왕 부디카가 이끄는 브리튼인 봉기를 진압했다.
네로 사후 네 황제의 해라 불리는 내전을 거쳐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늘날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해당되는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고, 2세기 오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음으로써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과 오늘날 스코틀랜드에 해당되는 칼레도니아를 구분하는 국경을 확정지었다.
이후 일부 황제들이 칼레도니아까지 정복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이 5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다.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일시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갈리아 제국이 브리타니아까지 지배하기도 했고, 4세기 초에는 카라우시우스(Carausius)라는 군벌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두 자칭 제국은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다시 복속되었다.
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브리타니아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유럽 대륙 영토를 방어하는 것도 벅찬 상태에 몰린 서로마군이 410년 철수하면서 로만 브리튼 시대는 막을 내렸다.
3. 하위 행정구역[편집]
- 브리타니아 수페리오르 속주(Provincia Britannia Superior)
- 브리타니아 인페리오르 속주(Provincia Britannia Inferior)
4. 인문 환경 및 문화[편집]
4.1. 민족과 언어[편집]
4.2. 종교[편집]
4.3. 건축[편집]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포함한 로마 시대 건축물은 지금도 영국 각지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