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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두 번째로 발발한 아편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청은 당대 초강대국인 영국과 그에 맞먹는 국력을 보유한 프랑스 제2제국의 연합과 맞붙었으며 열강인 미국과 러시아 제국도 영불 연합군을 지원했다. 즉, 영불미러 4개국이 협공하여 청나라 원정에 나선 전쟁이다.
2. 결과[편집]
이 때까지만 해도 서양 열강들과 일본은 청을 대국, 동양의 잠자는 사자 같은 '침묵의 강자'라는 신비로운 강국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괜히 건들지 않으려고 선뜻 선전포고를 걸지 않았으나 아편 전쟁 이후 허약한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청은 순식간에 서구 열강과 일본의 덩치 큰 호구,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 전쟁 직전에 참전한 크림 전쟁에서는 두 나라가 무려 40만 대군을 투입해 러시아 제국을 상대한 데 비해 이 전쟁에서는 겨우 5% 정도인 2만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청의 무릎을 꿇렸다. 얼마나 동서양의 국력 차이가 벌어져 있었고 청이 동네북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베이징 조약을 맺은 이후로도 청은 계속 서구 열강들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2000년간의 중화 우위의 질서가 무너지고 서구 열강의 침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은 청의 조공국이었지만 청의 정보 전달도 늦고 부정확했다. 조선은 청의 관영에서만 제한적인 정보를 받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조선은 되려 제1차 아편전쟁을 영국이 토벌된 것으로 받아들였고 후에 전라도 지방에 떠밀려온 프랑스 선원이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름'이라고 전했는데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베이징이 함락된 제2차 아편전쟁은 당시 조선에도 전해져 적잖이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단순히 양이들의 분탕질로 황제가 북쪽으로 잠시 피신한 것으로 해석해 대외관에서 큰 수준의 변화는 없었다.
베이징 조약을 맺은 이후로도 청은 계속 서구 열강들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2000년간의 중화 우위의 질서가 무너지고 서구 열강의 침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은 청의 조공국이었지만 청의 정보 전달도 늦고 부정확했다. 조선은 청의 관영에서만 제한적인 정보를 받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조선은 되려 제1차 아편전쟁을 영국이 토벌된 것으로 받아들였고 후에 전라도 지방에 떠밀려온 프랑스 선원이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름'이라고 전했는데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베이징이 함락된 제2차 아편전쟁은 당시 조선에도 전해져 적잖이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단순히 양이들의 분탕질로 황제가 북쪽으로 잠시 피신한 것으로 해석해 대외관에서 큰 수준의 변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