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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시엔 (三弦, sānxián) |
1. 개요[편집]
중화권의 전통악기.
2. 역사[편집]
오키나와의 산신(三線), 일본의 샤미센(三味線), 몽골의 샨즈(Шанз), 베트남의 단탐(Đàn tam)의 기원이 되는 악기이다.
<비파의 길> 저자인 존 마이어스에 따르면, 싼시엔과 같은 스파이크 류트(Spike lute) 형태의 악기가 고대 이집트와 중동에서 처음 유래하여 중국으로 전해졌고, 이것이 진나라 때 현도(弦鼗)라는 악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스파이크 류트가 중국의 현도와 같은 계통인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중국에서는 현도의 기원이 시황제가 만리장성 건축을 위해 백성들을 징발하면서 강제노역의 설움을 달래고자 사람들이 작은 북을 개조해 윗면에 줄을 달고 목이 긴 발현악기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싼시엔이 현도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했는지, 아니면 계통만 비슷한 별개 악기인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또다른 설은 원나라 시기 몽골인들로 인해 호금(胡琴), 얼후(二胡)와 같은 이민족 악기가 중국으로 전해졌는데, 이 악기들 중에서 싼시엔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설이다. 다만 송나라(남송) 시기 석조 조각에서 싼시엔과 비슷한 3줄 형태의 악기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싼시엔(三弦)이란 이름은 명나라 문헌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한다.[1]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싼시엔이란 이름이 당나라 시기 최영흠(崔令钦)이 지은 《교방기(教坊记)》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 싼시엔과 같은 악기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싼시엔 연주는 원나라 시기에 번성했으며 명나라 인물 양신(杨慎)은 "지금의 삼현(三弦, 싼시엔)은 원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겼다 한다. 청나라 인물 모기영(毛奇龄)은 상술한 진나라 악기 도(鼗)에서 싼시엔이 유래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구당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정작 구당서에서는 "지금의 도(鼗)는 비파(琵琶)의 전신"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기영의 주장과 다르다.
만주족의 전통 악기 중에서도 싼시엔이 있었으며 《흠정만주제신제천전례(钦定满洲祭神祭天典礼, 황제가 지정한 만주의 신과 제천 의식)》에서는 만주족이 제례 음악을 연주할 때 싼시엔도 사용다고 한다. 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 학자 허창린(何昌林)은 싼시엔이 만주족에 의해 발명되었다며 발해에서 당나라로 보낸 발해금(渤海琴)이 싼시엔이라고 주장했다.[2]
종합적으로 싼시엔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는 어떠한 설도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며, 현재로써는 추측만 할 뿐 기원을 확인할 길이 없다.
<비파의 길> 저자인 존 마이어스에 따르면, 싼시엔과 같은 스파이크 류트(Spike lute) 형태의 악기가 고대 이집트와 중동에서 처음 유래하여 중국으로 전해졌고, 이것이 진나라 때 현도(弦鼗)라는 악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스파이크 류트가 중국의 현도와 같은 계통인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중국에서는 현도의 기원이 시황제가 만리장성 건축을 위해 백성들을 징발하면서 강제노역의 설움을 달래고자 사람들이 작은 북을 개조해 윗면에 줄을 달고 목이 긴 발현악기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싼시엔이 현도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했는지, 아니면 계통만 비슷한 별개 악기인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또다른 설은 원나라 시기 몽골인들로 인해 호금(胡琴), 얼후(二胡)와 같은 이민족 악기가 중국으로 전해졌는데, 이 악기들 중에서 싼시엔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설이다. 다만 송나라(남송) 시기 석조 조각에서 싼시엔과 비슷한 3줄 형태의 악기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싼시엔(三弦)이란 이름은 명나라 문헌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한다.[1]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싼시엔이란 이름이 당나라 시기 최영흠(崔令钦)이 지은 《교방기(教坊记)》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 싼시엔과 같은 악기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싼시엔 연주는 원나라 시기에 번성했으며 명나라 인물 양신(杨慎)은 "지금의 삼현(三弦, 싼시엔)은 원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겼다 한다. 청나라 인물 모기영(毛奇龄)은 상술한 진나라 악기 도(鼗)에서 싼시엔이 유래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구당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정작 구당서에서는 "지금의 도(鼗)는 비파(琵琶)의 전신"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기영의 주장과 다르다.
만주족의 전통 악기 중에서도 싼시엔이 있었으며 《흠정만주제신제천전례(钦定满洲祭神祭天典礼, 황제가 지정한 만주의 신과 제천 의식)》에서는 만주족이 제례 음악을 연주할 때 싼시엔도 사용다고 한다. 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 학자 허창린(何昌林)은 싼시엔이 만주족에 의해 발명되었다며 발해에서 당나라로 보낸 발해금(渤海琴)이 싼시엔이라고 주장했다.[2]
종합적으로 싼시엔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는 어떠한 설도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며, 현재로써는 추측만 할 뿐 기원을 확인할 길이 없다.
3. 구조[편집]
지판에 해당하는 목이 상당히 길며, 몸체 겉면을 [비단뱀 가죽[3]으로 만든다. 줄은 총 3줄이며 과거에는 비단실로 만들었으나 오늘날에는 나일론이나 쇠줄을 사용한다.
음역은 3옥타브 정도이며 가장 낮은 현과 가장 높은 현은 1옥타브 간격, 중간현은 4도 혹은 5도 간격으로 조율해 연주한다. 연주자는 악기의 몸통을 오른쪽 허벅지 앞에 대고 몸통을 45도로 비스듬히 세워 목이 왼편을 향하게 한 후, 왼손으로 음정을 짚고 오른손으로 악기용 인조손톱이나 피크를 사용해 현을 뜯어 연주한다. 발현악기 특성상 음색이 매우 두드러지고 타악기스러운 특색을 지니며 합주 시 눈에 잘 띄는 악기이다.
중국 북부로 갈수록 형태가 크며 남부로 갈수록 작은 것이 특징이다. 기후가 습하고 온난한 남중국에서는 뱀 가죽을 강도 보강 없이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기후가 건조하고 추운 북중국에서는 강도 보강을 한 뱀 가죽이나 인조 가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음역은 3옥타브 정도이며 가장 낮은 현과 가장 높은 현은 1옥타브 간격, 중간현은 4도 혹은 5도 간격으로 조율해 연주한다. 연주자는 악기의 몸통을 오른쪽 허벅지 앞에 대고 몸통을 45도로 비스듬히 세워 목이 왼편을 향하게 한 후, 왼손으로 음정을 짚고 오른손으로 악기용 인조손톱이나 피크를 사용해 현을 뜯어 연주한다. 발현악기 특성상 음색이 매우 두드러지고 타악기스러운 특색을 지니며 합주 시 눈에 잘 띄는 악기이다.
중국 북부로 갈수록 형태가 크며 남부로 갈수록 작은 것이 특징이다. 기후가 습하고 온난한 남중국에서는 뱀 가죽을 강도 보강 없이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기후가 건조하고 추운 북중국에서는 강도 보강을 한 뱀 가죽이나 인조 가죽을 쓰는 경우가 많다.
4. 여담[편집]
- 12세기 1116년 고려로 송나라에서 일현금, 삼현금, 오현금, 칠현금, 구현금 등 여러 악기들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여기서 말하는 삼현금이 싼시엔 계통 악기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싼시엔, 산신, 샤미센, 샨즈, 단탐 또한 명칭이 3줄과 관련이 있으며, 비파 처럼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퍼져 전해 내려오는 악기들 가운데 가장 널리 퍼진 3줄 악기는 싼시엔 계통 악기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악기들이 각국으로 전해진 시기도 고려의 삼현금처럼 싼시엔의 유래에서 언급하는 송나라~원나라~명나라 시기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람들은 중국 악기나 일본 악기 가운데 줄이 3개인 악기를 '삼현/삼현금'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국악사전 - 삼현(三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