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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실존 여부[편집]
하나라는 전통적으로는 실존 국가로 여겨지다가 청나라 시대에 고증학이 발달하면서부터 실존이 부정되기 시작했고, 청대 고증학보다도 실증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근현대 고고학 및 역사학에서도 이러한 취세가 이어졌다.
최근 상나라 은허 유적보다도 오래된 얼리터우 문화(이리두 문화) 유적이 발견되면서 과거에 비해 실존 가능성이 올라갔지만, 갑골문 해독을 통해 은허 지역에서 '상(商)'이라는 국호를 당대에 사용했음이 밝혀진 것과 달리, 얼리터우 유적에선 아직도 '하(夏)'에 대응되는 문자 기록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얼리터우 유적을 신화 속 하나라와 동일시 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최근 상나라 은허 유적보다도 오래된 얼리터우 문화(이리두 문화) 유적이 발견되면서 과거에 비해 실존 가능성이 올라갔지만, 갑골문 해독을 통해 은허 지역에서 '상(商)'이라는 국호를 당대에 사용했음이 밝혀진 것과 달리, 얼리터우 유적에선 아직도 '하(夏)'에 대응되는 문자 기록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얼리터우 유적을 신화 속 하나라와 동일시 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 논쟁이 진행 중이다.
3. 역사[편집]
본래 요, 순 임금 시대의 '선양' 전통을 깨고, 우왕이 아들 계(啓)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중국 역사상 최초의 '부자 상속' 왕조 체제를 구축했다. 우왕은 황하의 치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민심을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조는 찬란한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으나, 말기에 이르러 폭군 걸왕의 실정과 사치로 국력이 쇠퇴했다. 결국 명조(鳴條) 전투에서 상나라의 탕왕에게 패배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