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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본 구조
2.1. 중서성2.2. 문하성2.3. 상서성
2.3.1. 이부2.3.2. 호부2.3.3. 예부2.3.4. 병부2.3.5. 형부2.3.6. 공부
3. 중국의 3성 6부제4. 한민족 국가의 수용
4.1. 발해3성 6부제4.2. 고려의 중앙관제
4.2.1. 2성 6부제4.2.2. 1부 4사제
4.3. 고려말 ~ 조선의 1부 6조제
5. 일본의 2관 8성제

1. 개요[편집]

전근대 한자문화권 국가의 정부 조직 체계이다.

중국 수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후 당나라에서 체계화되어 중원 왕조의 전형적인 통치 체계로 자리잡았으며, 발해, 고려, 일본 등 주변국으로도 수출되어 각국의 사정에 맞게 현지화되었다.

2. 기본 구조[편집]

중서성, 문하성, 상서성이라는 3성을 두고, 상서성 밑에 이부, 호부, 예부, 병부, 형부, 공부라는 6부를 두는 구조였다.

이러한 기관들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명칭이 바뀌거나 통폐합되기도 했고, 3성 6부에 속하지 않는 별도의 기관도 여럿 존재했다.

2.1. 중서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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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사항과 정책발의, 행정승인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중서령이었다.

2.2. 문하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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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명출납과 정책심의, 행정승인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문하시중이었고, 줄여서 시중이라 했다..

2.3. 상서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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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행정 집행을 담당했고, 6부를 하위 기관으로 두었다.

수장은 상서령이었다.

2.3.1. 이부[편집]

인사 및 일반행정 전반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이부상서였다.

2.3.2. 호부[편집]

재정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호부상서였다.

2.3.3. 예부[편집]

외교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예부상서였다.

2.3.4. 병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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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병부상서였다.

2.3.5. 형부[편집]

사법 및 형벌 집행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형부상서였다.

2.3.6. 공부[편집]

토목 및 수공업을 담당하는 기관.

수장은 공부상서였다.

3. 중국의 3성 6부제[편집]

수나라에서 처음으로 3성 6부제를 시작했고, 당나라를 비롯한 후대 왕조들도 이를 이어받았다.

금나라에서는 3성 가운데 상서성만을 두고 휘하에 6부를 두는 1성 6부제를 운용했다.

원나라에서는 금나라의 1성 6부제를 모방하되 중서성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지방에 행중서성이라 불리는 관청을 설치하여 지방행정을 담당하게 했다.

명나라는 건국 직후에는 원나라의 제도를 모방했으나,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 승상 호유용을 제거한 이후부터는 중서성을 완전히 폐지하고 6부를 황제 직속으로 두었고, 이에 따라 3성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6부만이 청나라 시대까지 존속했다.

4. 한민족 국가의 수용[편집]

발해고려, 조선이 각각 3성 6부제를 자국식으로 현지화한 제도를 운용했다.

4.1. 발해3성 6부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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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와 같은 3성 6부 구조를 채택했으나, 명칭은 당의 3성 6부를 그대로 쓰지 않고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했다.

4.2. 고려의 중앙관제[편집]

4.2.1. 2성 6부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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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성과 문하성을 중서문하성으로 통합하고, 상서성 밑에 6부를 두는 2성 6부제를 운용했다.

2성 6부 이외에는 도병마사, 식목도감, 중추원, 삼사 등이 별도의 관청으로 존재했다.

4.2.2. 1부 4사제[편집]

고려의 상서성과 중서문하성은 원간섭기의 관제 격하로 인해 첨의부로 통폐합되었고, 6부 역시 4사로 통폐합되며 1부 4사제로 개편되었다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로 개칭[1]되어 1부 4사와 별도로 존재하며 고려말의 핵심 권력기구로 기능했다.

4.3. 고려말 ~ 조선[2]의 1부 6조제[편집]

반원 개혁 정책을 추진한 공민왕에 의해 첨의부는 문하부로, 4사는 다시 6조로 개편되며 1부 6조제가 시작되었다.

조선 개국 이후인 1400년에는(정종 2년)에는 1부 6조와 별도의 기관이었던 도평의사사가 의정부로 개편되고, 1401년(태종 1년)에 의정부가 문하부를 흡수하면서 의정부 밑에 6조를 두는 조선의 중앙관제가 확립되었다.

조선의 3사(사헌부, 사간원,홍문관[3])은 3개 관청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3성 6부의 3성에 대응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고려의 2성을 전신으로 둔 기관이 아니므로[4] 3성 6부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별도 기관이었다.

1895년 제3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을 통해 내각관제를 도입하여 의정부가 내각으로, 6조가 8아문으로 개편되면서 조선의 1부 6조제는 완전히 혁파되었고, 이후 대한제국에서 내각이 의정부로 환원된 시기에도 6조는 부활하지 않았다.[5]

대한제국 내각 및 의정부의 하위 기관으로 부가 존재했으나 6부가 아닌 7부[6]였으며, 장관은 상서가 아닌 대신이라 했고, 군통수권자로서의 황제를 보좌하는 원수부와 궁중사무를 담당하는 궁내부는 내각(의정부) 소속이 아닌 황제 직속 관청이었다.

5. 일본의 2관 8성제[편집]

고대 일본은 3성 6부제를 자국식으로 현지화한 2관 8성제를 실시했는데, 3성에 해당되는 기관의 역할은 모두 태정관이 담당하게 하고 제사 등 종교 의식을 담당하는 신기관을 동격의 기관으로 두었으며, 태정관 휘하에 8성을 두어 중국의 6부처럼 구체적인 개별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이러한 기관들은 가마쿠라 시대 이래 막부가 조정 대신 실질적인 중앙정부 역할을 하면서 유명무실해졌으나,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권한을 회복하여 1885년 내각제 실시 이전까지 존속했다.
[1] 도병마사는 중국에서 존재한 적이 없는 고려 고유의 관청이었으므로, 격하가 아닌 단순 명칭 변경이었다.[2] 1895년 이전까지.[3] 집현전의 후신.[4] 사간원은 간쟁을, 사헌부는 서경권을 가지며 인사, 감사, 탄핵을, 홍문관은 연구, 기록을 관리했다.[5] 의정부 및 6조와 별도로 존재하며 조선 중후기의 핵심 기관 역할을 하던 비변사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이미 혁파되어 사라졌다.[6] 탁지부,내부,외부,농상공부,법부,군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