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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종류
3.1. 한국 비파
3.1.1. 향비파3.1.2. 당비파
3.2. 중국 비파3.3. 일본 비파3.4. 베트남 비파

1. 개요[편집]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해 동아시아 전역에 퍼진 전통 현악기.

2. 역사[편집]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진 뒤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갔다.

후한 말기에 지어진 『석명』에는 명칭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비파: 본래 오랑캐 (사회) 가운데서 말 위에서 타는 바에서 나왔다.[1] 손을 밀어 앞세움을 "비"라 이르고 손을 당겨 물림을 "파"라고 이르니 그 타는 때를 본땀으로 말미암아 이름으로 삼다.(枇杷: 本 出於胡中 馬上所鼓也. 推手前 曰 "枇", 引手卻 曰 "杷" 象其鼓時 因以爲名也.)
문헌에서 비파를 오늘날처럼 玨 아래에 로 쓰지 않고 편(偏)에 를 붙여서 비파라고 썼다. 오늘날에 사용하는 한자는 위진남북조시대에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허나 석명의 내용은 민간어원이므로 정확하지 않다.

일설에 의하면 비파의 어원은 고전 그리스어페르시아어를 거쳐서 들여온 외래어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로 전래된 리라형 악기인 바르비톤(Βάρβιτον)이라는 악기가 이란바르바트(بربت)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도 제대로 된 증거가 확인되지 않은 독자연구에 가깝다.

또한 류트의 기원이 되는 중동의 우드에서 비파가 유래됐다고 주장하지만, 족보를 따져 보면 전세계 원시 현악기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이기에 비파와 우드는 먼 친척뻘 되는 악기일 뿐 서로의 기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3. 종류[편집]

3.1. 한국 비파[편집]

파일:당비파.jpg
파일:개량향비파.jpg
당비파
개량 향비파

한국 비파는 크게 향비파당비파 두 가지가 있다. 삼국 시대 때 중국에서 들어온 '비파(당비파)', 기존에 전래된 비파를 참고하여 자체적으로 만든 '향비파', 그리고 후당을 거쳐 들어온 '후당비파' 세 가지가 있었는데 고려 시대 부터 후당비파는 당비파로 통합되었다.

3.1.1. 향비파[편집]

비파와 피아노 협주곡 <연어 Ⅱ> / 연주자: 정영범

향비파중국에서 들어온 당비파와 구분하고자 붙인 이름이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쓰인 대표적인 향악기 가운데 하나다.

조선 시대 때는 거문고처럼 술대를 연주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고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다양한 연구, 개량과 함께 위 영상처럼 손가락 깍지를 사용하기도 한다.[2]

삼국사기에서는 '始於新羅(신라에서 비롯했다)'고 하는데, 애초에 비파라는 악기가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마치 현대의 기타 제작 업체들이 미국의 GibsonFender를 참고하여 자체적인 기타를 만들듯이 기존에 있던 비파를 참고하여 신라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비파라는 뜻으로 이해하는게 맞을 것이다. 간혹 중국에서 온 당비파가 원조이고 향비파는 아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논리면 당비파도 중앙아시아 비파의 아류나 마찬가지이므로 애초에 논지를 벗어난 주장이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 때는 가야금, 거문고와 함께 신라삼현으로 꼽히고, 향비파곡만 220곡 정도가 있다고 했을 정도로 메이저한 악기였다. 현은 명주실로 된 현이 5현이 있고, 무현-청현-대현-중현-유현을 각 僙-㑣-㑣-黃-仲으로 조율한다. 울림통에는 다른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울림 구멍[3]이 존재하며 괘[4]는 처음엔 5괘였다가 조선시대에서는 10괘, 근대에서는 12괘까지 증가하였다. 현대에 사용되는 향비파는 1988년 이성천 교수가 개량한 것으로[5] 괘의 수가 31개이다. 이하 "개량 비파"로 칭한다.

개량 비파는 기존 비파보다 음역과 음량이 넓어서 정악과 창작국악에서 두루 쓰일 수 있다는 듯. 한국 비파는 거문고와 마찬가지로 술대를 가지고 연주했는데[6] 지금도 종묘악에서 술대를 사용하여 합주에 응하는 한국 비파 모습을 볼 수 있다. 개량 이후로는 중국 비파와 마찬가지로 음량을 키우기 위해 손가락에 뾰족한 가조각을 끼우고 연주하기도 한다.[7]

3.1.2. 당비파[편집]

개량 당비파로 연주한 '찬기파랑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를 전후하여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중국 비파.

『삼국사기』 <악지> 편 기록을 보면 통일신라시대 당비파를 '비파'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덧붙혀 삼국사기의 '비파'는 오직 4현으로 되어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향비파는 이에 해당되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비파란 명칭 자체가 신라의 향비파와 구분하기 위해 당시 중국 왕조였던 당나라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물론 당비파도 오랜 세월이 흐르며 한국화되어 우리 전통악기로 구분된다.

향비파와 달리 악기의 몸체가 크지 않고 연주자의 몸에 맬 수 있어 다른 비파들과 달리 이동 연주가 가능했다. 현재의 기타처럼 궁중은 물론 민간에서도 널리 쓰인 유용한 악기였다. 국악 장르 중 하나인 당악(唐樂)에서 썼다.

《삼국사기》 악지(樂志) 편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당비파가 통상 "비파"란 이름으로 불렀던 것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탄생한 향비파와 구분하기 위해 당비파라는 이름을 따로 붙인 것으로 추측한다. 비파란 악기 자체가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동아시아 각지로 들어왔으므로 시기상 향비파보다 당비파를 먼저 연주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1935년까지 향비파와 같이 전국적으로 연주했으며, 중국에서보다 더 많이 연주하였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당시 민간에서도 대금, 퉁소, 거문고와 함께 비파를 활발히 연주하였다. 이렇게 메이저 악기로 사용했던 당비파는 1935년 이후로 연주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으나 1950년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연주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며 국내 비파 연주가들이 대거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이에 따라 당비파도 1960년대 이후로 그다지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국립국악원과 일부 당비파 연주가들이 연주하는게 전부이다.

3.2. 중국 비파[편집]

현대 중국 비파를 기준으로 제일 윗부분 머리장식을 '두화', 줄감개를 '축', 프렛 중 윗부분 여섯 개를 '상', 아랫부분을 '품'이라고 한다. 조율할 때는 안쪽 줄부터 '라-레-미-높은 라'로 한다. 손톱에 가조각을 끼고 연주한다.
▲ 중국인 연주자 오만(吴蛮)의 연주
▲ 한국인 연주자 마롱의 연주

국내의 대표적인 중국 비파 연주자로는 마롱이 있다. 전) 사단법인 한중예술협회 대리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거리 공연자로 활동 중이다. 2021년부터는 향비파 위주의 연주 활동을 하고있다.

주결경이 중국 비파 특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데뷔 초기에는 방송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가끔 보여주었다.

3.3. 일본 비파[편집]

가가쿠 곡인 슈코오시(酒胡子)를 연주하는 모습

중국 비파에서 유래한 일본 전통 악기. '비와(びわ)'라고 부르며 일본 전통음악인 가가쿠에 쓰인다.

목이 줄감개 부근에서 90도 가깝게 뒤로 꺾인 곡경(曲頸) 비파이다. 한국은 거문고와 비슷하게 술대를 쓰고, 중국은 손가락에 끼우는 가조각을 쓰는데, 일본은 샤미센과 비슷하게 바닥에 붙은 껌 떼는 칼처럼 생긴 채(撥)로 연주한다. 대개 4현이지만 지판의 프렛(fret) 수나 크기, 모양 등에서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5현 비파도 있었지만 명맥이 끊겼고, 대신 근대에 치쿠젠비와(筑前琵琶)나 니시키비와(錦琵琶) 등 새로운 5현 비와가 나오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연주 할 때 연주자의 몸짓은 반드시 느리고 우아하게 팔을 들어 느리고 우아하게 현을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하나씩 뜯은 다음 느리고 우아하게 원래 위치로 팔을 복귀시킨다. 채로 악기 표면을 세게 문지르게 되기 때문에 악기 보호와 소음 감소를 위해 연주하는 부위에는 가죽을 덧댄다.

크기 또한 샤미센, 다른 비와류 등 일본의 다른 류트형 현악기들과 비교해 봐도 독보적으로 크고(약 100cm)[8] 무겁다(약 7kg). 따라서 반드시 자리에 양반다리로 앉아 연주해야 하며, 서거나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크기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 불편한 점이 많아, 이후 개발된 비와들은 전부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이후, 가가쿠의 음계가 서양 음악의 음계에 맞춰 미세하게 변하였는데, 그 최대 피해자가 바로 가쿠비와이다. 음이 높아짐에 따라 현을 더 세게 감아야 해 현이 끊어지는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최근의 산성비 때문에 골골대는 누에들한테서 뽑은 실크로 현을 만드느라 현의 내구도가 많이 낮아졌는데 더 세게 감으니 허구한 날 현이 끊어져 나간다고 한다. 비와의 현은 실크에 손으로 염색해 손으로 꼰 줄을 쓰기 때문에,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닌데 자주 끊어진다.

종류로는 헤이케비와(平家琵琶), 사츠마비와(薩摩琵琶), 치쿠젠비와(筑前琵琶), 류큐비와(琉球琵琶) 등이 있다.

3.4. 베트남 비파[편집]

베트남어로는 '단 띠바(Đàn tỳ bà, 彈琵琶)'라고 한다.

네 줄로 되어 있으며 베트남식 아악인 냐냑(Nhã nhạc, 雅樂)에서 중요한 악기로 사용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 이로 인해 기마민족에게서 유래한 악기임을 유추할 수 있다.[2] 이미 조선시대 초기에도 손가락에 가조각을 끼우고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3] 이 구멍을 음공(音孔)이라고 한다. [4] 기타의 프렛 역할[5] 비슷한 발현악기인 월금도 개량하였다.[6] 거문고와 달리 현을 다룰 때 드는 힘이 적어서 술대 잡는 법이 좀 다르다. 또한 술대를 만들 때의 재료도 철남목을 사용하였다.[7] 이미 조선시대 초기부터 손가락에 가조각을 끼우고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8] 기타 중에서도 길이가 1m 가까이 되는 물건들이 있긴 하지만, 기타는 특성상 악기의 길이 중 넥의 길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크기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되는 편이다. 반면에 가쿠비와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넥이 매우 짧고 대부분이 울림통이기 때문에 체감상으로 그 떡대가 더욱 부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