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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일국 Deutsches Reich 나치 독일 NS-Staat | Nazi German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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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
국가 | ||
준국가 | ||
위치 | ||
수권법 통과 이전 | 멸망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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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 ||
국가원수 | ||
역대 퓌러 | ||
역대 국가대통령 | ||
정부수반 | ||
역대 내각 | ||
경제 | ||
통화 | 라이히스마르크(ℛℳ) | |
1. 개요[편집]
2. 국호[편집]
3. 상징[편집]
3.1. 국기 및 국장[편집]
3.2. 국가[편집]
4. 역사[편집]
4.1. 히틀러의 집권과 수권법 통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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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에서 수권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아돌프 히틀러 |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여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던 독일은 도스 안, 로카르노 조약 등 전쟁 배상금 삭감과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1920년대 중엽부터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고, 그러자 기성정당들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좌우 극단주의 정치 이념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극좌 진영을 대변하는 독일 공산당(KPD)은 자본가 계급 타도와 노동계급의 단결,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부르짖으며 당세를 확장했으며, 극우 진영을 대변하는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나치당)은 극단적인 게르만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및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기성정당들 중에서는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1930년 총선에서 원내1당을 사수하며 선방했으나, 독일 중앙당[18], 독일 인민당[19] 등 다른 기성정당들이 몰락하고 나치당과 공산당이 각각 원내2당과 3당으로 약진하면서 위기가 감돌았다.
1932년 총선에서는 나치당이 기어코 사민당마저 제치고 원내1당으로 올라서는데 성공했고, 1933년에는 총리직마저 히틀러가 가져가면서 정권을 장악했다.
히틀러 내각 출범 직후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터지자 나치당은 이를 공산당의 테러로 규정하고 공안정국 속에서 조기총선을 실시했는데, 범좌파 진영의 표가 사민당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산당의 선거 참여 자체는 허용했으나, 총선 개표가 끝난 후 원내3당을 차지한 공산당을 바로 금지시키고 공산당 대선후보를 지낸 에른스트 텔만 등 주요 공산당원들을 체포했다.
이후 나치당은 입법권을 내각에 넘겨주는 수권법을 의회에 상정했는데 다른 우파 및 중도 정당들마저 이에 동조하는 상황 속에서 원내2당인 사민당만이 최후까지 반대 의견을 개진했으나, 사민당 당수 오토 벨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끝내 수권법은 사민당을 제외한 모든 원내정당들의 압도적 찬성표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나치당은 사민당은 물론이고 수권법 통과에 동조한 우파 및 중도 정당들마저 불법화함으로써 유일 합법정당이 되어 독일을 완전히 장악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고, 그러자 기성정당들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좌우 극단주의 정치 이념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극좌 진영을 대변하는 독일 공산당(KPD)은 자본가 계급 타도와 노동계급의 단결,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부르짖으며 당세를 확장했으며, 극우 진영을 대변하는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나치당)은 극단적인 게르만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및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기성정당들 중에서는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1930년 총선에서 원내1당을 사수하며 선방했으나, 독일 중앙당[18], 독일 인민당[19] 등 다른 기성정당들이 몰락하고 나치당과 공산당이 각각 원내2당과 3당으로 약진하면서 위기가 감돌았다.
1932년 총선에서는 나치당이 기어코 사민당마저 제치고 원내1당으로 올라서는데 성공했고, 1933년에는 총리직마저 히틀러가 가져가면서 정권을 장악했다.
히틀러 내각 출범 직후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터지자 나치당은 이를 공산당의 테러로 규정하고 공안정국 속에서 조기총선을 실시했는데, 범좌파 진영의 표가 사민당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산당의 선거 참여 자체는 허용했으나, 총선 개표가 끝난 후 원내3당을 차지한 공산당을 바로 금지시키고 공산당 대선후보를 지낸 에른스트 텔만 등 주요 공산당원들을 체포했다.
이후 나치당은 입법권을 내각에 넘겨주는 수권법을 의회에 상정했는데 다른 우파 및 중도 정당들마저 이에 동조하는 상황 속에서 원내2당인 사민당만이 최후까지 반대 의견을 개진했으나, 사민당 당수 오토 벨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끝내 수권법은 사민당을 제외한 모든 원내정당들의 압도적 찬성표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나치당은 사민당은 물론이고 수권법 통과에 동조한 우파 및 중도 정당들마저 불법화함으로써 유일 합법정당이 되어 독일을 완전히 장악했다.
4.2. 추축국의 형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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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열린 방공 협정 체결 축하 행사 |
4.3. 제2차 세계대전[편집]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영국과 프랑스까지 참전하는 대전쟁으로 확전되면서 1945년까지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이 전개되었다.
독일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 지방까지 점령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막기 위해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지역마저 합병하고 폴란드 회랑 지대까지 요구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강렬히 거부하였다.
그 후 독일은 1939년 이념적으로 대립하였던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기습 침공하였다. 이에 폴란드와 원조 조약을 맺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였고,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결국 소련과 독일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고,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곧바로 프랑스를 침공하였다. 독일군은 겨우 6주만에 프랑스를 항복시켰고, 필리프 페탱을 정부 수반으로 하는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국을 수립하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샤를 드골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 자유 프랑스라는 망명 정부를 수립하였고, 독일에 대한 항전을 의미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펼쳤다. 그러자 독일은 영국을 공격하였고, 영국은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지휘 아래 독일 공군의 공습을 물리쳤다.
독일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 지방까지 점령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막기 위해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지역마저 합병하고 폴란드 회랑 지대까지 요구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강렬히 거부하였다.
그 후 독일은 1939년 이념적으로 대립하였던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기습 침공하였다. 이에 폴란드와 원조 조약을 맺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였고,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결국 소련과 독일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고,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곧바로 프랑스를 침공하였다. 독일군은 겨우 6주만에 프랑스를 항복시켰고, 필리프 페탱을 정부 수반으로 하는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국을 수립하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샤를 드골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 자유 프랑스라는 망명 정부를 수립하였고, 독일에 대한 항전을 의미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펼쳤다. 그러자 독일은 영국을 공격하였고, 영국은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지휘 아래 독일 공군의 공습을 물리쳤다.
4.3.1. 독소전쟁[편집]
4.4. 패망 이후[편집]
5. 정치[편집]
5.1. 역대 지도자[편집]
5.1.1. 총통(퓌러)[편집]
5.1.2. 국가대통령[편집]
5.1.3. 국가수상(총리)[편집]
5.2. 나치당[편집]
5.3. 법과 제도[편집]
5.3.1. 헌법[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은 나치 독일 치하에서도 일부 조항의 수정만 있을 뿐 대부분의 내용을 그대로 보존하며 헌법의 지위를 유지했으나, 후술할 수권법에 의해 무력화되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헌법이었다.
5.3.2. 법률[편집]
5.3.2.1. 수권법(전권위임법)[편집]
법률이면서 헌법을 무력화시키고 독재를 합리화한 희대의 악법이다.
5.3.2.2. 뉘른베르크 인종법[편집]
5.3.2.3. 기타[편집]
5.4. 국가의회[편집]
6. 영토[편집]
6.1. 본토 행정구역[편집]
6.2. 괴뢰국[편집]
6.3. 총독부[편집]
6.4. 국가판무관부[편집]
6.5. 군정청[편집]
7. 사회/문화[편집]
7.1. 민족[편집]
7.2. 언어[편집]
7.3. 종교[편집]
7.4. 예술[편집]
7.5. 스포츠[편집]
8. 군사[편집]
8.1. 군대/준군사조직[편집]
8.1.1. 독일 국방군[편집]
8.1.2. 돌격대(SA)[편집]
8.1.3. 슈츠슈타펠(SS)[편집]
8.2. 대외 전쟁[편집]
9. 경제[편집]
10. 여담[편집]
[1] 당초 독일 제국의 흑백적기와 나치당의 하켄크로이츠기가 공동 국기로 사용되었지만 1935년 9월 하켄크로이츠기만을 국기로 규정하였다. 얼핏보면 나치당 기와 다를게 없어보이지만 1936년 1월 국기를 상선기로 게양토록한 시행령을 통해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중앙이 아닌 깃대쪽에 가깝게 배치하도록 규정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본문 참조[2] 당수리(파르타이아들러)는 반대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3] 나치당 당가였지만 국가와 당의 일체화를 추진했던 나치당은 '독일인의 노래' 바로 다음 부르도록 하며 사실상 국가 취급했다. 다만 국기로 공인된 하켄크로이츠기와 달리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는 법적으로 국가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다.[4] 아돌프 히틀러 총리 취임 기준. 나치 독일이 완전한 독재적 권력을 쟁취하는 것은 수권법의 통과나 아돌프 히틀러가 퓌러가 된 이후로 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은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한 날을 기준으로 본다. 당사국인 독일연방공화국 역시 히틀러 총리 취임일을 나치 체제의 시작으로 본다.독일연방문서보관소(국가사회주의 치하 독일국)나치 통치(홀로코스트 백과사전), Third Reich(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5] 플렌스부르크 정부 해산 및 체포일 기준.[6] 독일 연방공화국에서는 국방군최고사령부가 무조건 항복한 1945년 5월 8일을 체제 붕괴일로 보고있다.[7] 1933~1943[8] 1943~1945[9] 이후 게르마니아라는 새로운 수도로 재탄생될 계획이었다.[10] 실질적 헌법상 수도는 여전히 베를린이었다.[11] 당시 세계 7위[12] 점령 지역 포함.[13] 명목상[14] 나치 독일은 히틀러가 퓌러에 집권 한 뒤부터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된 것이 맞기는 하지만, 그 전까진 나치당 역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소속된 하나의 당으로서 범민주주의 체제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15] 가끔 총통이라고 번역되는 독일 단어 퓌러(Führer)는 '지도자'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일종의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으며 '총통'이라는 단어는 의미 그 자체라기보다는 의역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퓌러로서의 히틀러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모두 갖고 있었다. 덧붙여 총통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나치의 이미지가 있지만 중국과 대만, 베트남에서는 'president'를 대통령이 아닌 총통(總統)[16]으로 번역하며, 대만은 과거에도 지금도 국가의 수장을 총통이라고 하고 있다.[16] 히틀러가 죽고, 이 자리는 괴벨스와 되니츠가 나누어 가졌다. 괴벨스는 바로 자살하지만, 되니츠는 자기가 퓌러가 되지 않고 크로지크를 마지막 수상에 놓았다.[17] 나치즘(반유대주의, 대독일주의 등)을 내세우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베를린 공방전 도중 자살[18] 중도 ~ 중도우파 가톨릭 정당.[19] 중도우파 ~ 우익 자유주의, 보수주의 정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