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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남부 · 중부
북부 · 동부
프로이센
선사
시대
원시 인류 공동체
고대
중세
근대
남독일 국가들[1]
현대

서독,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영유권 포기[2]

※ 남부 · 중부는 헤센, 튀링겐,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
※ 북부 · 동부는 작센, 작센안할트, 브란덴부르크, 니더작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프로이센은 동프로이센만 포함
도시주인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은 해당 도시가 위치한 행정구역에 포함된 것으로 간주한다.
[1]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등.[2] 오데르-나이세 선 이서 지역(포메른, 슐레지엔, 프로이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포기하였으며,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완전히 포기하였다. 현재 해당 영토들은 폴란드바르민스코마주르스키에, 돌노실롱스키에, 실롱스키에, 오폴스키에, 포모르스키에, 자호드니오포모르스키에, 루부스키에러시아칼리닌그라드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민주공화국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German Democratic Republic
파일:동독 국기.svg
파일:동독 국장.svg
국기 (1959-1990)
국장 (1955-1990)
상징
국가
성립 이전
재통일 이후
역사
지리
위치
(사실상) 동베를린[3]
면적
108,333km2[4]
인문 환경
인구
1950년 18,300,000명
1990년 16,100,000명
정치
정치 체제
국가원수
정부수반
총리(1949-1964)
각료평의회 의장(1964-1990)
총리(1990)
주요 지도자
여당
경제
통화
$1,595억 (1989년) #
1인당 GNP
$9,679 (1989년) #
플래그 캐리어
외교
남북 수교
대한민국: 미수교[6]
북한(단독 수교): 1949년 11월 7일

1. 개요[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동부를 지배한 공산주의 국가.

4개국 연합군이 점령 중이던 독일에서 소련군 점령 지역이 단독 정부를 구성하면서 건국되었다가 독일 재통일로 인해 멸망했다.

2. 정치[편집]

2.1. 정당[편집]

2.1.1. 독일 사회주의통일당[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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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건국 이후부터 1989년 민주화 이전까지 유일 집권당으로서 장기집권했다.

2.1.2. 관제야당[편집]

동독이 명목상으로나마 다당제를 표방하기 위해 만든 관제야당으로, 40여년 동안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거수기에 불과했으나, 1989년 민주화 이후 사회주의통일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진짜 야당이 되었다.

2.2. 지도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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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독의 주들이 독일 연방공화국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서독흡수통일.[2] 정식 명칭은 '독일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한 최종 조약'이다.[3] 동독 정권은 그냥 베를린이라고 불렀다. '사실상'이라고 붙은 이유는 명목상 베를린은 동·서독 정부가 아닌 미/영/불/소의 연합국 4개국이 관할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질적으론 동·서독 정부가 관할했다. 정권 수립 직후부터 동독 정권은 동베를린이 동독의 수도임을 선언하였고 소련을 위시한 공산당 정권들은 곧바로 이를 인정했다. 즉 애초에 당사자인 동베를린의 점령국인 소련이 동독더러 '동베를린은 너희 것 아니라 우리 것이니 넘보지 말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반면 서방국가들은 이것을 동독 정권의 월권 행위로 보고 1990년 동독이 소멸할 때까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대사관을 동베를린에 두는 등 사실상 현실을 인정했으며 서방권과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는 서베를린에 대해 '우리가 점령한 땅' 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었다.[4] 대한민국의 면적에서 충청북도가 하나 더 있는 것과 비슷했다.[5] 북한이나 알바니아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동독 역시 교회를 폭파하고 그 자리에 대학을 세우는 등 공공연하게 종교를 탄압했다. 그 결과 분단 이전까지 개신교의 발상지로서 개신교 다수 지역이던 동독 지역은 무종교 다수 지역이 되었다. 다만 동독에서도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었다.[6] 본래 수교할 예정이었고 실무까지 진행되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통일로 인해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