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제국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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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 |||
![]() | |||
■ 1204년 강역 | |||
1204/1205[1]~1261 | |||
성립 이전 | 환도 이후 | ||
위치 | 아나톨리아 서북부 | ||
정치체제 | |||
국가원수 | |||
주요 황제 | |||
중세 그리스어 | |||
로마인(그리스인) | |||
주요 사건 | 1204년 건국 126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 | ||
언어별 명칭 | |||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 |||
Αυτοκρατορία της Νίκαιας | |||
Empire of Nicaea |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임시 황제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편집]
2.2. 테오도로스 1세: 니케아에서 임시정부 수립[편집]
알렉시오스 3세의 사위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는 니케아를 임시수도로 삼고 황제 테오도로스 1세라 칭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출한 세계 총대주교가 집전하는 대관식을 거행함으로써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했다.
2.3. 요안니스 3세와 테오도로스 2세: 제국의 중흥[편집]
2.4. 요안니스 4세[편집]
2.4.1. 무잘론 형제의 섭정[편집]
2.4.2. 소산드라 쿠데타: 미하일 8세의 집권[편집]
2.4.3.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 제국의 부활[편집]
3. 정치[편집]
3.1. 역대 황제[편집]
4. 둘러보기 틀[편집]
[1]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와 그를 지지하는 동로마인 세력이 십자군을 피해온것은 1204년, 터전을 잡고 망명세력에서 제대로 된 국가의 기틀을 갖춘건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의 뒤를 이어 테오도로스 1세가 집권한 1205년이기에 건국연도는 의견이 갈린다.[2] 현 터키 이즈미르 주의 케말파샤.[3] 공화정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로마 고유의 전제정이었다.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거나 심각한 실정을 범할 경우 황제는 군단장이나 원로원의 반란을 직면해야 했으며 이렇게 새워진 왕조는 금방 시민의 인정을 받았으나 이전 왕조와 똑같은 한계를 지녔다. 동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의 통치를 신의 권위를 빌려 정당화하려 했으나 궁극적으로 동로마 멸망까지 이런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앤서니 칼델리스의 《The Byzantine Republic》은 황제를 제위 세습이 가능한 초강력 종신 대통령으로 기술하고 있다.[4] 1258년부터는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미하일 8세와 제위를 공유했다.[5] 트라페준타 제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테살로니키 제국.[6] 이걸 알 수 있는 게 바로 황제 넘버링인데 니케아의 요안니스 3~4세는 동로마 요안니스 1~2세의 넘버링을 계승한 것이며, 재건된 동로마 제국의 요안니스 5~8세 넘버링은 니케아를 계승한 것이다. 반면 트라페준타와 이피로스는 수도 수복에 실패했기에 비정통으로 간주하고 처음부터 따로 센다.[7] 팔레올로고스 가문 출신 공동 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