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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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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제국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1. 개요2. 역대 황제

1. 개요[편집]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는 로마 제국의 오랜 역사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하던 시기에 해당하는 통치 가문이다. 이 왕조는 1세기 말부터 2세기 말까지 약 백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전제적 황제 지배 체제 하에서도 법률적 질서와 행정의 정비, 사회적 안정을 이룩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에 속한 황제들은 통상 '오현제'라고 불리는 다섯 명의 통치자를 포함하며,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왕조의 기원은 96년 로마 원로원에 의해 선출된 네르바 황제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군부의 지지를 받기 위해 양자로 트라야누스를 입적하였는데, 이는 원로원과 군부 간 정치적 타협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네르바 본인에게 친아들이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양자를 들이긴 해야 했기에 가능했다.

네르바를 시작으로 오현제들이 양자로 대를 이은 것도 혈연보다 능력을 중시했다기보다는 제위를 계승할 친아들 자체가 없어서 혈족이 아닌 타인 중에서 유능한 인물을 지명한 결과물에 가까운데, 황제의 친족이 아닌 양자의 제위 계승을 납득시키려면 결국 실력으로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트라야누스는 로마의 영토를 사상 최대로 확장하였고, 하드리아누스는 행정 개혁과 제국의 방어 체계 강화를 통해 내부적 안정을 도모하였다.

뒤를 이은 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저한 내정 정비와 법률 개혁을 통해 제국의 기반을 다졌으며,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를 유지하였다.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자 황제로도 알려졌고, 그의 저술은 후세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쳤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전까지의 황제들과 달리 콤모두스라는 친아들이 존재했기에 굳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별다른 반발 없이 콤모두스가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콤모두스는 재위 초반에는 무난하게 통치하는 듯 했으나 암살 음모 사건 등을 겪으며 편집증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다 폭주하여 폭압적인 전제 정치를 펼쳤고, 결국 그의 피살로 왕조는 종결된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는 비록 황제 계승에서 의도적으로 혈연을 배제했다기보다는 황제들이 친자를 얻지 못한 사정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양자 계승이 이루어진 사례에 가까웠지만, 바로 그 점 덕분에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난 자질과 덕성을 가진 명군을 연달아서 배출하는데 성공하여, 로마 제국의 통치 모델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이들은 폭정을 자제하고 원로원과의 조화를 유지했으며, 공공사업과 자선 정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또한 법률의 정비와 속주 통치 체계의 개선은 제국 전체의 통합성과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였다.

이 시기는 로마의 정치사뿐 아니라 유럽의 통치 이념에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제국 통치의 모범으로 오랜 시간 회자되었다. 이후 시대의 사가들은 이 시기를 '황금기'로 명명하였고, '오현제'라는 개념은 유능한 군주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는 단순한 왕조 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전제군주제와 입헌적 통치 사이의 절충형 모델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2. 역대 황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