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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서기 193년은 흔히 '다섯 황제의 해'로 불리며,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황제 계승기의 하나로 기억된다. 이 해에는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세프티미우스 세베루스라는 다섯 인물이 각기 황제를 자처하거나 공식적으로 즉위하여 제국의 정통 지배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혼란은 서기 192년 12월 31일, 황제 콤모두스가 암살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튿날인 서기 193년 1월 1일, 로마 시의 행정 책임자였던 페르티낙스가 원로원과 시민단의 지지를 받아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절제와 재정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서기 3월 28일 이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같은 날,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근위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제시하며 황제 자리를 경매로 얻었다. 그의 경쟁자였던 티투스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는 병사 1인당 20,000 세스테르티우스를 제안하였으나, 율리아누스는 이를 상회하는 25,000 세스테르티우스를 약속하였고, 결국 원로원의 형식적인 승인을 받아 황제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황위 찬탈은 군대와 지방 총독들의 분노를 자극하였다.
곧이어 세 명의 강력한 로마 인사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황제로 자처하였다. 시리아 총독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는 동방에서 지지를 받았고, 브리타니아의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서방 군단의 지지를 기반으로 움직였으며, 판노니아 군단을 장악하고 있던 세프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가장 빠르게 행동하였다. 세베루스는 군단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군하여 서기 6월 1일 로마에 입성한 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처형하도록 명령하고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를 해산하였다.
세베루스는 곧장 동방으로 진군하여 니게르의 세력을 공격하였다. 그는 서기 193년 키지쿠스와 니카이아에서 연승을 거두었고, 서기 194년 이소스 전투에서 니게르를 최종적으로 격파하였다. 이어서 그는 알비누스와 일시적 동맹을 맺었으나, 알비누스가 스스로 황제를 자처하자 곧 결전을 준비하였다. 결국 서기 197년 2월 19일, 갈리아의 루그두눔 근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세베루스는 알비누스를 격파하고 유일한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로써 다섯 황제가 차례로 명멸한 극심한 내전의 시기는 종결되었으며, 세베루스는 서기 211년 2월 4일 사망할 때까지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에서 군대가 황제 계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군인황제 시대로의 전환점을 상징하며, 제국의 정치 구조가 점차 군사력 중심으로 재편되어 가는 흐름의 시작을 보여준다.
혼란은 서기 192년 12월 31일, 황제 콤모두스가 암살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튿날인 서기 193년 1월 1일, 로마 시의 행정 책임자였던 페르티낙스가 원로원과 시민단의 지지를 받아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절제와 재정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서기 3월 28일 이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같은 날,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근위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제시하며 황제 자리를 경매로 얻었다. 그의 경쟁자였던 티투스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는 병사 1인당 20,000 세스테르티우스를 제안하였으나, 율리아누스는 이를 상회하는 25,000 세스테르티우스를 약속하였고, 결국 원로원의 형식적인 승인을 받아 황제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황위 찬탈은 군대와 지방 총독들의 분노를 자극하였다.
곧이어 세 명의 강력한 로마 인사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황제로 자처하였다. 시리아 총독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는 동방에서 지지를 받았고, 브리타니아의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서방 군단의 지지를 기반으로 움직였으며, 판노니아 군단을 장악하고 있던 세프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가장 빠르게 행동하였다. 세베루스는 군단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군하여 서기 6월 1일 로마에 입성한 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처형하도록 명령하고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를 해산하였다.
세베루스는 곧장 동방으로 진군하여 니게르의 세력을 공격하였다. 그는 서기 193년 키지쿠스와 니카이아에서 연승을 거두었고, 서기 194년 이소스 전투에서 니게르를 최종적으로 격파하였다. 이어서 그는 알비누스와 일시적 동맹을 맺었으나, 알비누스가 스스로 황제를 자처하자 곧 결전을 준비하였다. 결국 서기 197년 2월 19일, 갈리아의 루그두눔 근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세베루스는 알비누스를 격파하고 유일한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로써 다섯 황제가 차례로 명멸한 극심한 내전의 시기는 종결되었으며, 세베루스는 서기 211년 2월 4일 사망할 때까지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에서 군대가 황제 계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군인황제 시대로의 전환점을 상징하며, 제국의 정치 구조가 점차 군사력 중심으로 재편되어 가는 흐름의 시작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