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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23대 황제 엘라가발루스 ELAGABALV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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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섹스투스 바리우스 아비투스 바시아누스 Sextus Varius Avitus Bassianus |
출생 | |
사망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전임자 | |
후임자 | |
부모 | 아버지: 섹스투스 바리우스 마르켈루스 어머니: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
배우자 | |
종교 | |
1. 개요[편집]
로마 제국의 제23대 황제이자 세베루스 왕조의 제3대 황제. 서기 1세기 네로 이후 로마인에게 최악의 불명예 3종 세트[3]를 모두 받고 몰락했다.
공식 제호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보다 그가 섬기던 태양신 '엘라가발'의 이름을 딴 엘라가발루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근위대에 의해 14세의 어린 나이에 옹립되었으나, 로마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종교를 무시하고 파격적인 성적 행보와 기행을 일삼아 로마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현대에 와서는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해 트랜스젠더적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공식 제호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보다 그가 섬기던 태양신 '엘라가발'의 이름을 딴 엘라가발루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근위대에 의해 14세의 어린 나이에 옹립되었으나, 로마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종교를 무시하고 파격적인 성적 행보와 기행을 일삼아 로마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현대에 와서는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해 트랜스젠더적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2. 생애[편집]
203년 경 시리아 에메사에서 태어난 그는 태양신 엘라가발의 대제사장으로 성장했다. 할머니 유리아 마이사의 정치적 책략 덕분에 218년 6월 8일 안티오크 전투에서 승리하며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즉위 후 로마의 주신 유피테르 대신 에메사의 검은 돌(태양신)을 숭배하도록 강요하고, 베스타 여사제와 결혼하는 등 금기를 깨뜨렸다. 또한 여성 복장을 즐기거나 스스로를 '왕비'라 칭하는 등의 기행으로 민심과 군심을 모두 잃었다. 결국 222년 3월 11일, 정치적 위협을 느낀 할머니와 근위대에 의해 어머니와 함께 살해당했으며, 시신은 티베리스강에 던져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