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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제국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로마 제국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파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jpg

1. 개요2. 생애3. 평가
3.1. 로마 황제로서
3.1.1. 통치에 대힌 평가3.1.2. 후계자 지정에 대한 평가
3.2. 스토아 철학자로서

1. 개요[편집]

Marcus Aurelius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로마의 최전성기인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황제.

황제일 뿐만 아니라 스토아 철학자로서도 이름을 떨친 철인 군주[1]기도 했다.

다만 그의 유일한 아들로서 제위를 계승한 콤모두스가 폭군으로 악명을 떨치다 피살당하면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가 막을 내렸고, 그 이후부터 로마는 몇번의 중흥을 맞이하긴 했어도 다시는 오현제 시대와 같은 전성기를 누리진 못했기에 빛이 바랜 감도 없지는 않다.

2. 생애[편집]

3. 평가[편집]

3.1. 로마 황제로서[편집]

3.1.1. 통치에 대힌 평가[편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전성기를 이끈 다섯 명군(오현제) 중 1명으로서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고결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제국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3.1.2. 후계자 지정에 대한 평가[편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유능한 인재를 후계자로 삼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전통을 깨고 자신의 친아들인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삼는 실수를 범했다. 콤모두스는 아버지의 정복 사업을 모두 폐기하고 자신에게 불만이 있으면 폭력적으로 행동한 폭군으로 평가받는 만큼 이 결정은 로마에게 재앙이었다.

다만 이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있어서 상당히 억울할 수 있는 평가다.

우선 네르바부터 안토니누스 피우스까지의 황제들이 친자가 아닌 양자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인물들에게 친자 자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양자를 들인 것이었지, 의도적으로 친자를 배제하고 유능한 양자를 우선한 것은 아니었고, 양자 계승이 공식적인 계승 원칙으로 확립된 것도 아니었다.
또한 콤모두스는 부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살아있을 때부터 폭군으로서의 기질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도 아니었기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본인이 살아있던 당시에는 황제의 유일한 친아들인 콤모두스를 후계 구도에서 배제할 명분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즉,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본인의 평가마저 떨어진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얘기일 뿐, 흔히 알려진 것처럼 혈연보다 능력을 우선하는 원칙을 져버리는 오판을 저지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3.2. 스토아 철학자로서[편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통해 그의 철학적 사상을 세상에 알렸다. 그의 저서 "명상록"은 외부의 감정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도록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기로 알려져 있다.
[1] 철인 3종 경기 할 때의 철인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으로 언급한 철학자 군주(철인왕)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