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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22대 황제 마크리누스 MACRINV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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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 (Marcus Opellius Macrinus) |
출생 | |
사망 | 218년 6월 (향년 52~53세)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전임자 | |
후임자 | |
배우자 | |
자녀 | |
종교 | |
1. 개요[편집]
마크리누스는 카이사레아 출신의 무어인으로 아주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정신력으로 궁정까지 올라간 나귀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적절해 보인다. 특히 그는 무어인들의 관습에 따라 한쪽 귀를 뚫었다. 출신 등에서 오는 이러한 약점은 그의 강직한 성품에 가려졌다. 그러나 법과 판례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법조문 등을 충실하게 따르기는 했지만 이에 대한 지식은 정확하지 않았다.디오 카시우스 79. 11
2. 생애[편집]
165년 경 북아프리카의 카이사레아에서 태어난 마크리누스는 법률가로서 명성을 쌓아 세베루스 왕조 아래에서 관직을 역임했다. 217년 4월 8일, 카라칼라의 파르티아 원정 도중 황제 암살을 주도하거나 묵인한 뒤 4월 11일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했다. 그러나 파르티아와의 굴욕적인 평화 협정과 군인 봉급 삭감 정책은 군부의 거센 반발을 샀고, 카라칼라의 이모인 율리아 마이사가 주도한 엘라가발루스 추대 운동에 직면했다. 218년 6월 8일 안티오키아 인근 전투에서 패배한 뒤 도주하다 붙잡혀 처형되었으며, 그의 아들 디아두메니아누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