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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Ioannes
서로마 제국의 참칭 황제.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 사후 서로마 궁정의 실권을 장악한 권신 카스티누스에 의해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되었으나, 불과 2년만인 425년에 호노리우스의 조카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옹립한 동로마군에 의해 폐위된 후 처형된 인물이다.
그는 폐위된 이후부터 동서 로마 중 어느쪽에서도 정식 황제의 지위를 영원히 인정받지 못했기에, 훗날 동로마 제국에서 요안네스의 그리스식 이름인 요안니스를 제호로 사용한 황제들은 황제 넘버링에서 그를 제외하고 10세기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부터 넘버링을 세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참칭 황제.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 사후 서로마 궁정의 실권을 장악한 권신 카스티누스에 의해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되었으나, 불과 2년만인 425년에 호노리우스의 조카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옹립한 동로마군에 의해 폐위된 후 처형된 인물이다.
그는 폐위된 이후부터 동서 로마 중 어느쪽에서도 정식 황제의 지위를 영원히 인정받지 못했기에, 훗날 동로마 제국에서 요안네스의 그리스식 이름인 요안니스를 제호로 사용한 황제들은 황제 넘버링에서 그를 제외하고 10세기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부터 넘버링을 세게 되었다.
2. 일생[편집]
본래 요안네스는 서로마 궁정의 문서담당관이었는데 워낙 한미한 출신인데다 직위도 낮아서 생년월일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범한 하급 관료로서 살다갈 인물이었으나, 423년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호노리우스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자신의 여동생 갈라 플라키디아와 결혼한 콘스탄티우스 3세를 공동 황제로 책봉함으로써 후계자로 삼았으나, 콘스탄티우스가 의문사한 후에는 갈라 플라키디아를 의심하며 위협했고, 이에 따라 그녀는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 딸 호노리아와 함께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피했다.
이로써 서로마 내부에는 더이상 호노리우스의 뒤를 이을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황족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상태에서 호노리우스가 사망하면서 황위가 공석이 되었다.
이때 서로마 궁정의 실권을 장악한 이는 카스티누스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직접 황제로 즉위하지 않는 대신, 하급 관료에 불과했던 요안네스를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했다.
당시 갈라 플라키디아와 그녀의 아들딸을 보호하고 있던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황족이 아닌 일개 하급 관료를 서로마 황제로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에 따라 동서 로마 간의 내전이 일어났다.[1]
2년에 걸친 내전은 425년 동로마군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요안네스는 재위 2년만에 자신을 옹립한 카스티누스와 함께 처형되었으며,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정식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따라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범한 하급 관료로서 살다갈 인물이었으나, 423년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호노리우스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자신의 여동생 갈라 플라키디아와 결혼한 콘스탄티우스 3세를 공동 황제로 책봉함으로써 후계자로 삼았으나, 콘스탄티우스가 의문사한 후에는 갈라 플라키디아를 의심하며 위협했고, 이에 따라 그녀는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 딸 호노리아와 함께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피했다.
이로써 서로마 내부에는 더이상 호노리우스의 뒤를 이을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황족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상태에서 호노리우스가 사망하면서 황위가 공석이 되었다.
이때 서로마 궁정의 실권을 장악한 이는 카스티누스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직접 황제로 즉위하지 않는 대신, 하급 관료에 불과했던 요안네스를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했다.
당시 갈라 플라키디아와 그녀의 아들딸을 보호하고 있던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황족이 아닌 일개 하급 관료를 서로마 황제로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에 따라 동서 로마 간의 내전이 일어났다.[1]
2년에 걸친 내전은 425년 동로마군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요안네스는 재위 2년만에 자신을 옹립한 카스티누스와 함께 처형되었으며,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정식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