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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 𐎧𐏁𐏂[1]
Achaemenid Empire
파일:아케메네스 왕중왕 깃발.svg
왕중왕의 기[2]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위치
파사르가다에(초기 도읍지, 의례수도)
페르세폴리스(명목상, 종교수도)
바빌론(실질적, 행정수도)
엑바타나(왕실 여름수도)
수사(왕실 겨울수도)
정치체제
국가원수
주요
샤한샤
아람어 (공식, 주 공용어)
고대 페르시아어 (왕실, 귀족)
엘람어, 아카드어
그 외 다수의 지방 언어
민족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지배층)
그 외 다수의 피지배민족
통화
다릭(아케메네스 왕조 금화)
시글로스(아케메네스 왕조 은화)
1. 개요2. 역사
2.1. 아케메네스 왕국2.2. 아케메네스 제국
2.2.1. 키루스 2세의 제국 건설2.2.2. 캄비세스 2세: 이집트 정복2.2.3. 다리우스 1세: 제국의 전성기2.2.4. 크세르크세스 1세: 그리스 정복 시도와 실패
3. 정치
3.1. 황제(샤한샤)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상 최초로 사라진 제국(first empire that passed away)이자, 인류 최초의 역사적 민족(first historical people)으로 간주된다.

헤겔(Georg W. F. Hegel), The Philosophy of History

이란 남부 파르스 고원 일대에서 발원하여 오리엔트 세계를 석권한 왕조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라고도 한다.

초기에는 다른 이란계 국가인 메디아에 종속된 소국인 아케메네스 왕국으로 시작되었으나 키루스 2세 치세인 기원전 550년에 메디아에 대한 종속 관계를 끊는 것을 넘어 메디아를 멸망시키고 제국으로 거듭났는데, 이렇게 키루스 2세에 의해 형성된 제국을 아케메네스 제국이라 하며 그냥 아케메네스 왕조라 하면 왕국 시대는 제외하고 기원전 550년 이후 제국 시대의 아케메네스 왕조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 역사[편집]

2.1. 아케메네스 왕국[편집]

2.2. 아케메네스 제국[편집]

2.2.1. 키루스 2세의 제국 건설[편집]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50년에 기존 종주국인 메디아를 멸망시킴으로써 이란 땅을 석권한 후, 기원전 546년에는 아나톨리아의 패권국인 리디아를 멸망시켰고, 기원전 539년에는 신바빌로니아까지 멸망시킴으로써 기원전 609년 아시리아 멸망 이후 오리엔트 패권을 다투던 4대 강국(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이집트) 중 이집트를 제외한 3개국을 모두 정복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30년에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마사게타이를 정벌하려 했다가 마사게타이 여왕 토미리스에게 패하여 전사하고 말았다.

2.2.2. 캄비세스 2세: 이집트 정복[편집]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부황 키루스 2세가 살아생전에 완수하지 못한 오리엔트 4대 강국을 모두 정복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캄비세스 2세의 치세는 폭정으로 인해 7년만에 암살로 막을 내렸고, 이후 제국은 붕괴 위기에 내몰렸다가 방계 황족 출신 다리우스 1세에 의해 가까스로 수습되었다.

2.2.3. 다리우스 1세: 제국의 전성기[편집]

캄비세스 2세 사망 직후에는 그의 동생이라 주장하는 바르디야가 계승했으나, 다리우스를 비롯한 방계 황족들이 그 혈통에 의문을 제기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바르디야를 제거한 후 다리우스가 황제 다리우스 1세로 즉위했다.

다리우스 1세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쿠데타로 즉위하긴 했으나 캄비세스 2세의 폭정으로 인해 붕괴 위기에 내몰렸던 제국의 정세를 안정시켰고, 유럽으로 진출하여 발칸 반도트라키아를 정벌하고 마케도니아 왕국을 속국화하며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무렵 소아시아 서부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계 도시들이 일으킨 반란을 아테네를 비롯한 일부 그리스 본토 도시들이 지원한 것을 계기로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했는데,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며 그리스 본토 정복이 무산되긴 했으나 제국의 패권을 흔들 정도로 큰 타격은 아니었다.

2.2.4. 크세르크세스 1세: 그리스 정복 시도와 실패[편집]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는 부황이 달성하지 못한 그리스 정복의 업적을 달성하고자 제2~3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아테네, 스파르타 등 그리스 도시들의 연합군에 태하여 실패했고, 그 이후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등장하기 전까지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는 산발적인 교전만 있을 뿐 대규모 전면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플라타이아이 전투의 패배 이후 크세르크세스 1세는 내치에 집중하며 국력을 회복하려 했으나 환관 아르타바누스의 궁정 쿠데타로 인해 시해당했고, 이후 아르타바누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를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하여 실권을 장악했다.

3. 정치[편집]

3.1. 황제(샤한샤)[편집]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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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흐샤싸', '흐샤카'로 재구성되기도 한다.[2] 크세노폰에 따르면 키루스 2세 때부터 날개를 펼친 수리를 왕중왕(샤한샤)의 군기로 썼다. 위 그림의 문양은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의 타일 유물에서 따온 것이고, 색상은 다리우스 3세가 붉은 바탕에 황금색 수리가 그려진 군기를 썼다는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의 기록과 폼페이의 '알렉산더 모자이크' 유물의 색상을 따른 것이다.[3] 고대 페르시아어 흐샤야시야 흐샤야시야남(𐎧𐏁𐎠𐎹𐎰𐎡𐎹𐏐𐎧𐏁𐎠𐎹𐎰𐎡𐎹𐎠𐎴𐎠𐎶, xšāyaθiya / xšāyaθiyānām). 대왕(흐샤야시야 바즈라카, 𐎧𐏁𐎠𐎹𐎰𐎡𐎹 𐏐 𐎺𐏀𐎼𐎣 / xšāyaθiya / vazraka), 페르시아의 왕(흐샤야시야 파르사이, 𐎧𐏁𐎠𐎹𐎰𐎡𐎹 𐏐 𐎱𐎠𐎼𐎿𐎡𐎹 / xšāyathiya / Pārsaiy) 등의 칭호도 쓰였다. '샤한샤'는 중세~현대 페르시아어 발음 '셔한셔'를 달리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