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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문구
선출 사유(causa)
  • rei gerundae causa: 공무 수행을 위해
  • clavi figendi causa: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의 벽에서 행해지는 못질 의식을 위해
  • seditionis sedandae causa: 폭동 진압을 위해
  • comitiorum habendorum causa: 정무관 선거를 위한 민회 개최를 위해
  • ferarium constituendarum causa: 축제 개최를 위해
  • ludorum faciendorum causa: 루디 로마니 개최를 위해
  • Latinarum feriarum causa: 라틴 축제 개최를 위해
  • senatus legendi causa: 칸나이 전투 이후 원로원 의원 선출을 위해
  • legibus faciendis: 법률 제정
  •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공화정 재건을 위해
  • dictator perpetuo: 종신 독재관
기타
  • mortuus est: 집권 중 사망
  • sine magistro equitum: 기병장관을 임명하지 않음
  • non iniit: 취임하지 않음
  • occisus est: 집권 중 암살
서력기원:
기원전 501년
기원전 496년
기원전 494년
기원전 463년
로마 건국 기원:
253년
255년
260년
291년
(불명)
선출 사유(causa):
기원전 458년
기원전 439년
기원전 437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4년
296년
315년
317년
319년
320년
기원전 431년
기원전 426년
기원전 418 년
기원전 408년
기원전 396년
323년
328년
336년
346년
358년
기원전 390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5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68년
364년
365년
369년
374년
386년
기원전 368년
기원전 367년
기원전 363년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1년
386년
387년
391년
392년
393년
기원전 360년
기원전 358년
기원전 356년
기원전 353년
기원전 352년
394년
396년
398년
401년
402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50년
기원전 349년
기원전 348년
기원전 345년
403년
404년
4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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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년
기원전 344년
기원전 3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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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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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년
420년~421년
422년
423년
427년
기원전 325년~기원전 324년
기원전 322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0년
429년~430년
432년
433년
433년
434년
기원전 320년
기원전 3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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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년
434년
4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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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2년
441년
442년
444년~445년
448년
452년
기원전 301년
기원전 287년
기원전 287년
기원전 2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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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년
467년
467년
469년
474년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원전 276년
기원전 263년
기원전 257년
기원전 249년
기원전 249년
478년
491년
497년
505년
505년
(기록 미상)
기원전 246년
기원전 231년
기원전 224년
기원전 221년
기원전 217년
508년
523년
530년
533년
537년
기원전 217년
기원전 216년
기원전 2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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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5년
기원전 203년
기원전 202년
546년
547년
549년
551년
552년
기원전 82년~기원전 79년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672년~675년
705년
706년
707년~710년
7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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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Imperator Caesar Augustus
고위 관직
Magistratus
평민 관직
Magistratus Plebis
속주 총독
Rector Provinciae
원로원 속주 총독[A]
Proconsul
황제 속주 총독
Legatus Augusti pro Praetor
황제 속주 행정관
Procurator
원로원 속주 총독[B]
Proconsul
임페리움(군사 지휘권)을 가진 관직
평민이 취임할 수 있는 관직
밑줄
민회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관직
[A]
아시아와 아프리카 속주에는 전직 집정관이 파견됨.
[B]
이 속주들에는 전직 법무관이 파견됨. 그러나 호칭은 여전히 프로콘술.
1. 개요

1. 개요[편집]

독재관은 고대 로마 공화정 시기 공화정의 일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되었던 최고 권력자였다. 라틴어 원어는 '딕타토르(dictator)'로, 현대에 부정적으로 쓰이는 의미와 달리, 초기 로마에서의 독재관은 공화정 체제 내에 법적으로 규정된 합법적 임시 관직이었다.

독재관은 평상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상시 관직으로, 전쟁이나 내란, 종교적 위기 등 공화정이 평시의 2인 집정관 체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만 소집되었다. 임명은 보통 집정관 중 한 명이 로마 원로원의 동의를 받아 행하였으며, 원로원의 판단에 따라 임명 권한이 부여된 집정관이 바로 독재관을 지명하였다. 독재관은 임명 순간부터 집정관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보다 우위에 서며, 모든 행정·군사·사법 권한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었다.

독재관의 임기는 원칙적으로 6개월을 넘지 않았으며, 위기가 조기에 해소될 경우에는 그보다 더 일찍 사임하였다. 또한 이 관직은 임기 내에 책임을 묻지 않는 불간섭의 원칙이 적용되었고, 오직 공화국의 존속과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세습 군주나 전제 정치 지도자와는 성격이 달랐다.

독재관은 언제나 부관인 기병대장(마기스테르 에퀴툼)을 임명할 수 있었으며, 이는 군사적 필요를 염두에 둔 구조였다. 독재관과 기병대장은 함께 군대를 지휘하며 로마 시민군을 통제하고, 내외의 위기에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권한을 행사하였다.

공화정 중기 이후, 독재관 제도는 점차 그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사용이 감소하였고, 최종적으로는 기원전 2세기 중반 이후 사실상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 관직은 포풀라테스(민중파)와 옵티마테스(벌족파)라는 두 정파[1]의 정쟁이 극심했던 기원전 1세기 초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기원전 1세기 초 부활시키면서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되었다.

옵티마테스 세력의 영수로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비롯한 포풀라레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그는 정적들을 완전히 말살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정치 개혁을 진행하기 위해 입법 및 공화정 재건 독재관[2]이라는 이름의 독재관에 취임했고, 이는 이전의 6개월 임기 독재관들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아직 공화정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구집권하는 것도 가능한 사실상의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이후 2년여간 독재관으로서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던 술라는 반공화국 세력[3] 숙청 및 정치 개혁이 마무리되었다고 판단되자 자진 사퇴했고, 이로써 독재관은 다시 역사의 유물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술라의 숙청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포풀라테스는 완전히 말살된 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계의 한 축으로 부상했고, 술라의 정적이었던 바로 그 마리우스의 인척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내전 끝에 집권하면서 독재관은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그는 폼페이우스를 비롯한 정적들과의 내전을 거치며 독재관으로 선출되었고, 술라처럼 6개월 제한을 넘겨 1년, 10년, 종신 독재관에 이르는 권한을 확보하였다. 이로 인해 독재관 제도는 본래의 비상시 권한이라는 성격에서 벗어나 개인 권력의 기반으로 전환되었고, 결국 공화정 체제를 붕괴시키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독재관은 본래는 합법적이고 제한적인 공직이었으나, 후대의 역사에서는 전제 권력과 동일시되는 상징적 의미로 변질되었다. 오늘날 '독재'라는 말이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정권을 뜻하게 된 것도 바로 로마 공화정 말기의 독재관 제도의 변형과 그 정치적 결과에서 기원한 것이다.
[1] 엄밀히 말하면 당대에 해당 명칭이 정식으로 사용된 게 아니라 후대 학자들이 임의로 붙인 명칭이다.[2] 법을 제정하고 공화정을 재건하는 독재관.[3] 어디까지나 술라 본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