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동서교회 대분열은 서방교회(가톨릭)과 동방교회(정교회)가 신학적, 정치적, 문화적 차이로 갈등을 겪다가 1054년 공식적으로 갈라선 사건이다.
두 교회는 중세 초기부터 이미 아카키오스 분열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분열을 겪다가 봉합되길 반복했고, 로마 교황의 수위권 주장과 성령의 발출에 관한 '필리오케(Filioque)' 논쟁 역시 9세기에 이미 포티오스 분열이라는 교회 분열을 통해 한 번 폭발한 적이 있었기에, 1054년의 분열 역시 당대에는 오래가지 못할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으나, 십자군 전쟁 등 양측의 관계를 악화시킬만한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결과적으로 이 분열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의 차이를 넘어, 서방 라틴-게르만 문화권과 동방 그리스 문화권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2. 전개 및 결과[편집]
1054년,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9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미하일 1세 키룰라리오스를 필두로 한 자국 교회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교황청에 특사 파견을 요청했고, 로마 교황 레오 9세가 이에 화답하여 훔베르트 추기경을 대표로 하는 교황청 특사단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했다.
그러나 세계 총대주교 미하일 1세는 역으로 황제를 구워삶아 황제가 교황청 특사단을 적대하게 만들었고, 이에 격분한 특사단이 파문장을 남기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고, 세계 총대주교 역시 특사단을 파문하며 이른바 동서교회의 상호파문이 이루어졌다.
파문장을 날릴 당시 교황 레오 9세는 이미 선종하여 특사단은 교황을 대리하여 세계 총대주교를 파문할 권한을 상실한 상태였고[1], 세계 총대주교 본인 역시 특사단을 파문했지 서방교회 전체를 파문하지는 않았기에 후대의 평가나 인식과 달리 당대에는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동서교회 양측이 공동으로 이슬람에 맞서기 위해 일으킨 십자군 전쟁이 성지 예루살렘의 수복은 커녕 두 교회 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역효과만 초래하고, 결정적으로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로 인해 서로를 이교도 취급할 정도로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면서 파국을 맞이했다.
1261년 동로마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이후 두 교회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열어 재통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동서교회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동로마가 멸망하고 정교회가 오스만 제국에 종속되면서 더이상 유의미한 통합 시도가 불가능해졌다.
이후 동서교회 양측은 각자 독자적인 신학을 발달시키며 서로 다른 종파로서의 교리를 확립했기에, 상호파문 자체는 약 900년이 지난 1965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철회되고 두 교회 간 관계도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하긴 했으나 완전히 하나의 교회로 재통합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세계 총대주교 미하일 1세는 역으로 황제를 구워삶아 황제가 교황청 특사단을 적대하게 만들었고, 이에 격분한 특사단이 파문장을 남기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고, 세계 총대주교 역시 특사단을 파문하며 이른바 동서교회의 상호파문이 이루어졌다.
파문장을 날릴 당시 교황 레오 9세는 이미 선종하여 특사단은 교황을 대리하여 세계 총대주교를 파문할 권한을 상실한 상태였고[1], 세계 총대주교 본인 역시 특사단을 파문했지 서방교회 전체를 파문하지는 않았기에 후대의 평가나 인식과 달리 당대에는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동서교회 양측이 공동으로 이슬람에 맞서기 위해 일으킨 십자군 전쟁이 성지 예루살렘의 수복은 커녕 두 교회 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역효과만 초래하고, 결정적으로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로 인해 서로를 이교도 취급할 정도로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면서 파국을 맞이했다.
1261년 동로마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이후 두 교회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열어 재통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동서교회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동로마가 멸망하고 정교회가 오스만 제국에 종속되면서 더이상 유의미한 통합 시도가 불가능해졌다.
이후 동서교회 양측은 각자 독자적인 신학을 발달시키며 서로 다른 종파로서의 교리를 확립했기에, 상호파문 자체는 약 900년이 지난 1965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철회되고 두 교회 간 관계도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하긴 했으나 완전히 하나의 교회로 재통합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 세계 총대주교는 동방교회의 서열 2위 주교이자 동서교회를 통틀어 서열 2위에 해당되므로, 세계 총대주교를 파문하는 것은 서열 1위인 교황 본인 또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만이 가능했는데, 바로 그 권한을 위임한 교황이 사망하여 권한 위임 역시 무효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