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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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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체적 흐름
2.1. 제정의 성립과 원수정(프린키파투스)2.2. 전제정(도미나투스)과 동서 분할
3. 시대별 역사
3.1. 원수정 시대3.2. 전제정 시대
3.2.1. 사두정치3.2.2. 콘스탄티누스 왕조3.2.3. 발렌티니아누스 왕조3.2.4. 테오도시우스 왕조3.2.5. 395년 동서 분할 이후

1. 개요[편집]

로마 제국(BC 27 ~ AD 1453)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2. 전체적 흐름[편집]

2.1. 제정의 성립과 원수정(프린키파투스)[편집]

로마 제정이 성립한 과정은 내전과 정치 개혁의 교차 속에서 이루어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사적 정복과 정치적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로마 정치의 중심 인물로 부상하였으며, 종신 독재관이라는 사실상의 군주 지위에 오르면서 공화정의 전통적 권위에 도전하였다.

그의 암살은 일시적으로 공화정 복원의 기대를 낳았으나, 실제로는 후계자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사이의 권력 분점 체제(2차 삼두정치)를 거쳐 또 다른 내전을 불러왔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받아 제1시민(프린켑스)로서 제국의 새로운 통치 체제를 마련하였다.

이른바 원수정이라 불리는 이 체제는 공화정의 제도적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사실상 제국의 통일된 중앙 권력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병권과 속주 통치권을 장악하였으며, 원로원과의 협력 구도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후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1세, 네로로 이어지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제정을 제도적으로 고착시키는 한편, 수도 로마의 정비와 속주 행정의 강화에 주력하였다.

이후 네 황제의 해라는 내전을 거쳐 황위를 차지한 플라비우스 왕조가 제국을 안정시켰고, 베스파시아누스는 군부 출신 황제로서 속주 방어와 행정 조직의 재편을 이끌었다.

도미티아누스 시기에는 황제권이 절대화되며 전제정의 성격이 강해졌으며, 이는 후대의 군인 황제 시대를 예고하는 특징이었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으로 이어지는 오현제 시대는 로마 제국의 황금기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에는 속주민에 대한 시민권 부여 확대, 도로망 정비, 국경 방어선의 강화, 법제도의 정비 등이 이루어졌으며, 트라야누스 시기에는 메소포타미아까지 확장되면서 제국의 영토가 가장 넓어졌다. 그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제국은 다시 불안정한 흐름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의 아들 콤모두스가 전제군주의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귀족층과 군부의 반발이 거세졌고, 결국 다섯 황제의 해라는 내전과 세베루스 왕조 하의 일시적 안정을 거쳐,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라는 본격적인 난세가 도래했다.

이 시기는 여러 장군들이 짧은 기간 동안 황제로 즉위하고 폐위되는 불안정한 정치 구조가 반복되었으며, 갈리아 제국팔미라 제국 등 일부 속주에서 독자적인 제국을 선포한 세력이 나타나는 등 분열의 조짐이 본격화되었다. 외부로는 게르만족과 사산 왕조의 침입이 잦아졌고, 내부로는 경제 기반의 붕괴와 도시 생태의 쇠퇴가 가속되었다.

2.2. 전제정(도미나투스)과 동서 분할[편집]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등장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황제권을 강화하였고, 제국을 네 명의 공동 통치자가 분할 지배하는 체제를 도입하였다. 이른바 사두정치라 불리는 이 체제는 서방과 동방을 각각 두 명의 정제와 부제로 나누어 통치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군사적 방어와 행정의 효율을 높였으나, 권력 계승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또다시 내전을 불러왔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단일 황제로 등극하였으며, 그가 행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종교적 기반으로 활용하면서 교회를 통치 체제에 통합하였고, 동방의 전략적 요충지인 비잔티움을 새 수도로 삼아 도시를 대대적으로 개조하였다. 이 도시는 훗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리며 동방 제국의 중심지가 된다.

콘스탄티누스 사후 제국은 다시 분할 통치로 나아갔으며,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일시적으로 제국을 재통일하였으나 그의 죽음 이후 아들들에게 제국을 분할 상속하면서 동서 분할이 공식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구역상의 분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 문화와 종교 운영 방식을 바탕으로 두 개의 제국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이처럼 로마 제국은 공화정 이후 점진적으로 전제정으로 전환되었으며, 초기에는 원로원과의 협력을 통한 통치가 이루어졌지만 점차 황제 중심의 권력 구조가 고착되었다.

동시에 국경 방어와 속주 통치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복수의 황제가 협력하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로마 제국의 생존을 연장시킨 한편, 궁극적으로는 동서의 정치적 분화를 낳았고, 이후 동로마 제국독자적 역사로 이어지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3. 시대별 역사[편집]

3.1. 원수정 시대[편집]

3.1.1.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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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네 황제의 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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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플라비우스 왕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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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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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다섯 황제의 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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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세베루스 왕조[편집]

3.1.7.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편집]

3.2. 전제정 시대[편집]

3.2.1. 사두정치[편집]

3.2.2. 콘스탄티누스 왕조[편집]

3.2.3. 발렌티니아누스 왕조[편집]

3.2.4. 테오도시우스 왕조[편집]

3.2.5. 395년 동서 분할 이후[편집]

3.2.5.1. 서로마 제국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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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2. 동로마 제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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