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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사회/문화
3.1. 민족과 언어3.2. 종교

1. 개요[편집]

911년부터 1259년[1] 또는 1469년[2]까지 지금의 프랑스 노르망디 일대에 존재했던 공국.

2. 역사[편집]

서프랑크 왕국을 침공한 노르드인 해적(바이킹) 집단의 수장 롤로서프랑크 국왕 샤를 3세와의 협상을 통해 백작위를 하사받고 세운 루앙 백국이 시초로, 롤로의 증손자이자 제4대 루앙 백작인 리샤르 2세가 911년에 공작으로 승격되면서 형성된 나라가 바로 노르망디 공국이었다.

이후 노르망디 공국은 제4대 공작 기욤 2세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1세로 즉위하면서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을 이루게 되었는데, 노르망디-잉글랜드 동군연합은 노르만 왕조는 물론이고 후대 왕조인 플랜태저넷 왕조에서도 이어지다가 노르망디 공작 장 1세로 재위하던 잉글랜드 국왕 존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채널 제도를 제외한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 즉 지금의 노르망디 전역을 상실하게 되었다.

존 왕은 물론이고 그 아들인 헨리 3세는 잉글랜드 왕위를 보유하기 이전부터 조상들이 물려진 영지인 노르망디를 되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1259년 파리 조약으로 채널 제도를 제외한 노르망디 공국을 포기하면서 노르망디는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왕 직할령으로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다만 1259년 이후에도 잉글랜드 국왕들은 기회만 있으면 노르망디를 되찾으려 시도하긴 했는데, 실제로 백년전쟁 시기에는 잉글랜드군이 노르망디를 탈환하는데 성공하면서 잉글랜드 국왕이 노르망디 공작을 겸하는 노르망디 공국이 부활하기도 했으나, 1453년 백년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종결되면서 노르망디 역시 다시 상실했고, 1469년에 이르러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가 노르망디를 영구적으로 왕실 직할령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면서 노르망디 공국의 부활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3. 사회/문화[편집]

3.1. 민족과 언어[편집]

노르망디 공국의 초기 지배층은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노르드인이었으나, 프랑스인과 지속적으로 통혼하면서 라틴화되어 로망스어군에 속하는 노르만어를 사용하는 노르만족이 되었다.

3.2. 종교[편집]

노르만족의 조상은 북유럽 신화를 믿는 노르드인이었으나, 전신인 루앙 백국 시절에 이미 가톨릭으로 개종했기에 노르망디 공국은 가톨릭을 국교로 삼은 나라였다.
[1] 1259년 파리 조약을 통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노르망디 공작위 포기.[2]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의 노르망디 공국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