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마스코트 선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징
2.1. 국기2.2. 국가
3. 역사
3.1. 프랑스 2월 혁명과 임시정부3.2. 루이 나폴레옹의 대통령 재임3.3. 1851년 프랑스 쿠데타와 공화국의 멸망
4. 정치
4.1. 역대 지도자
4.1.1. 대통령4.1.2. 부통령4.1.3. 총리
4.2. 의회4.3. 선거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848년 2월 혁명으로 수립되어 1852년까지 존속한 근대 프랑스공화정 체제.

모든 성인 남성의 보통선거권을 인정하고 노예제를 철폐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루이 나폴레옹친위 쿠데타로 인해 단명했다.

2. 상징[편집]

2.1. 국기[편집]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2.2. 국가[편집]

지롱드당의 노래가 국가였다.

3. 역사[편집]

3.1. 프랑스 2월 혁명과 임시정부[편집]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은 1848년 2월 혁명으로 붕괴되었고, 공화주의자들이 정부를 장악하여 제2공화국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이때 급진공화파와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은 7월 왕정의 상징이었던 삼색기 대신 혁명가와 민중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적기)를 국기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루이 블랑을 필두로 한 온건공화파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 해 4월 총선에서 농촌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온건공화파가 압승하자 파리에서 혁명 일으킨 주역이었던 도시 노동자들의 분노가 들끓었는데, 그 결과 파리에서 6월 봉기[1]가 일어났으나 외젠 카베냐크가 지휘하는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어 온건공화파가 정국을 완전히 장악했고, 카베냐크는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이때 혜성처럼 정계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었는데, 그는 보나파르트 왕조의 수장[2]이라는 군주의 혈통을 내세워 보수층을 공략하면서도 6월 봉기를 진압한 카베냐크를 혐오하는 노동자들의 표심 역시 공략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은 좌우파와 부르주아, 도시 노동자, 농민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지층을 바탕으로 74.3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카베냐크를 비롯한 경쟁자들을 꺾고 프랑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3.2. 루이 나폴레옹의 대통령 재임[편집]

3.3. 1851년 프랑스 쿠데타와 공화국의 멸망[편집]

4. 정치[편집]

4.1. 역대 지도자[편집]

4.1.1. 대통령[편집]

4.1.2. 부통령[편집]

4.1.3. 총리[편집]

4.2. 의회[편집]

4.3. 선거[편집]

  • 1848년 프랑스 총선
  • 184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1849년 프랑스 부통령 선거

5. 관련 문서[편집]

[1] 소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1832년 6월 봉기와는 다른 사건이다.[2] 나폴레옹의 아들 나폴레옹 2세를 비롯해서 그보다 계승 서열 높았던 보나파르트 가문 남성들은 이미 고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