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2. 역대 국왕[편집]
2.1. 프랑스 혁명 이전[편집]
2.1.1. 카페 왕조(직계)[1][편집]
- 초대: 위그 카페
- 2대: 로베르 2세
- 3대: 앙리 1세
- 4대: 필리프 1세
- 5대: 루이 6세
- 6대: 루이 7세
- 7대: 필리프 2세
- 8대: 루이 8세
- 9대: 루이 9세
- 10대: 필리프 3세
- 11대: 필리프 4세
- 12대: 루이 10세
- 13대: 장 1세
- 14대: 필리프 5세
- 15대: 샤를 4세
2.1.2. 발루아 왕조[편집]
2.1.2.1. 발루아 왕조(직계)[편집]
- 16대: 필리프 6세
- 17대: 장 2세
- 18대: 샤를 5세
- 19대: 샤를 6세
- 20대: 샤를 7세
- 21대: 루이 11세
- 22대: 샤를 8세
2.1.2.2. 발루아-오를레앙 왕조[편집]
- 23대: 루이 12세
2.1.2.3. 발루아-앙굴렘 왕조[편집]
- 24대: 프랑수아 1세
- 25대: 앙리 2세
- 26대: 프랑수아 2세
- 27대: 샤를 9세
- 28대: 앙리 3세
2.1.3. 부르봉 왕조[편집]
2.2. 명목상 국왕(부르봉 왕조)[8][편집]
2.3. 부르봉 왕정복고[편집]
2.4. 7월 왕정(부르봉-오를레앙 왕조)[편집]
- 36대: 루이 필리프[14] (1830 ~ 1848)
3. 관련 문서[편집]
[1] 후술할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 부르봉-오를레앙 왕조도 카페 왕조에 속한다.[2] 처음으로 대왕 칭호를 받았다.[3] 자신의 할아버지인 앙리 4세와 함께 두번째로 대왕 칭호를 받았고, 태양왕이라는 칭호도 받았다.[4] 루이 14세의 증손자. 루이 14세의 아들 그랑 도팽 루이와 손자 프티 도팽 루이가 각각 아버지, 할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증손자가 왕위를 계승했다.[5]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15세의 아들 루이 페르디낭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손자가 왕위를 계승했다.[6] 1791년 프랑스 헌법 제정 이후부터는 프랑스인의 왕을 칭했다.[7] 1792년 왕정 폐지와 함께 폐위된 후 1793년 처형되었다.[8] 프랑스 제1공화국과 제1제국이 프랑스를 지배하던 시절 지방 및 망명 왕당파 세력에 의해 추대된 명목상 국왕이었다.[9] 루이 16세의 아들. 혁명정부에 의해 감금당한 상태였지만 왕당파는 루이 16세 처형 이후부터 그를 프랑스 국왕으로 간주했다.[10] 루이 16세의 동생이자 루이 17세의 숙부. 루이 17세의 사망이 확인된 이후부터 망명지에서 프랑스 국왕을 자칭했다.[11] 루이 16세와 루이 18세의 동생, 루이 17세의 숙부.[12] 샤를 10세의 장남 앙굴렘 공작 루이 앙투안. 샤를 10세가 7월 혁명으로 퇴위한 직후 20분간 형식적으로 재위하고 조카 샹보르 백작 앙리에게 양위했다.[13] 샤를 10세의 손자이자 루이 19세의 조카 샹보르 백작 앙리. 루이 19세의 형식적 재위 이후 양위받았으나 이미 혁명 세력이 실권을 장악한 상태라 정식 국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폐위되었다.[14]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인의 왕을 칭하며 통치했다.[15] 프랑스 국왕 및 프랑스인의 왕 칭호의 원형이 된 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