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루이 필리프 1세(Louis-Philippe Ier, 1773년 10월 6일 ~ 1850년 8월 26일)
프랑스 '7월 왕정'의 유일한 국왕(재위 1830년 ~ 1848년)이다. 스스로를 '프랑스 국왕(Roi de France)'이 아닌 '프랑스인의 왕(Roi des Français)'[1]이라 칭하며 자유주의적 색채를 띠었던 군주다. 귀족적인 권위보다는 시민의 상징인 우산을 들고 다니는 등 서민적인 풍모를 보여 '시민왕(Le Roi Citoyen)'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집권 후반기 보수화와 경제 위기로 인해 1848년 혁명으로 퇴위당하며 프랑스 최후의 국왕이 되었다.
프랑스 '7월 왕정'의 유일한 국왕(재위 1830년 ~ 1848년)이다. 스스로를 '프랑스 국왕(Roi de France)'이 아닌 '프랑스인의 왕(Roi des Français)'[1]이라 칭하며 자유주의적 색채를 띠었던 군주다. 귀족적인 권위보다는 시민의 상징인 우산을 들고 다니는 등 서민적인 풍모를 보여 '시민왕(Le Roi Citoyen)'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집권 후반기 보수화와 경제 위기로 인해 1848년 혁명으로 퇴위당하며 프랑스 최후의 국왕이 되었다.
2. 생애[편집]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혁명군에 투항하여 복무하기도 했으나, 공포정치 시기 아버지가 쿠데타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처형되자 해외로 망명하여 오랜 유랑 생활을 거쳤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쫓겨나자 자유주의 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임 초기에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며 중산층의 지지를 받았으나, 점차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며 선거권 확대 요구를 거부하여 민심을 잃었다. 결국 1848년 2월 혁명이 발발하자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1850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몰락은 프랑스에서 왕정이 영구히 종식되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