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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중세 프랑스 왕국2.2. 프랑스 입헌 왕국2.3. 7월 왕정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세 초기 프랑스 카페 왕조의 들, 그리고 근대 혁명 시민혁명 시대의 루이 16세와 루이 필리프가 사용한 칭호.

프랑크 왕국의 군주들이 사용한 프랑크인의 왕 칭호의 후신으로서 탄생했으며, 필리프 2세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왕 칭호가 사용되면서 더이상 사용되지 않다가, 루이 16세 및 루이 필리프 시대에 일시적으로 부활했다.

2. 역사[편집]

2.1. 중세 프랑스 왕국[편집]

프랑스 왕국의 전신은 서프랑크 왕국이었으나 카롤루스 왕조가 단절되고 카페 왕조가 들어설 무렵에는 이미 중프랑크 왕국[1]동프랑크 왕국[2]이 사라진 이후였기에, 서프랑크인의 왕이 사실상 프랑크인의 왕 칭호를 독점하게 되었고, 이후 프랑크 왕국의 라틴어 국호 Francia의 철자와 발음이 프랑스(France)로 변함에 따라 프랑스인의 왕 칭호가 형성되었다.

초기 카페 왕조의 왕들은 왕위 세습이 공식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선거를 통해 당선됨으로써 왕위를 인정받아야 할 정도로 왕권이 취약했으나[3], 누대에 걸쳐 적장자로 대를 이으면서 정통성을 강화하고 왕실 직할령을 확대하면서 왕권을 강화하여, 필리프 2세 시대에 공식적으로 국왕 선거를 폐지하고 프랑스 국왕(Roi de France)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2.2. 프랑스 입헌 왕국[편집]

필리프 2세 이후로 더이상 '프랑스인의 왕' 칭호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제정된 1791년 프랑스 헌법을 루이 16세가 승인하면서, 프랑스이라는 국가 자체를 소유한 왕이 아닌 프랑스 국민을 대표하는 왕이라는 의미를 담아 '프랑스인의 왕' 칭호가 부활했고, 공식 국호 역시 프랑스 왕국에서 프랑스인의 왕국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파리를 탈출하여 지방으로 도피한 후 헌정을 붕괴시키려는 바렌 사건을 일으켰다가 체포되면서 왕권이 정지되었고, 1792년 8월 10일 봉기를 통해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어(제1공화국), 루이 16세의 '프랑스인의 왕' 칭호 사용은 1년만에 막을 내렸다.

2.3. 7월 왕정[편집]

1830년 7월 혁명을 통해 들어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은 입헌군주제를 표방했기에,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왕(Roi de France) 대신 '프랑스인의 왕'을 칭했으며, 공식 국호 역시 프랑스인의 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퇴위하면서 프랑스인의 왕 칭호 역시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다.

3. 관련 문서[편집]

[1] 855년 프륌 조약을 통해 중세 이탈리아 왕국과 로타링기아 왕국, 하부르군트 왕국(프로방스 왕국)으로 분할되며 해체되었다.[2] 카롤루스 왕조 단절 이후 962년 오토 1세의 황제 대관식을 거쳐 제국을 칭했기에 더이상 동프랑크 왕국이라는 국호는 쓰이지 않았다. 다만 흔히 알려진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는 그보다 훨씬 이후인 13세기부터 사용되었다.[3] 그래서 이론상으로는 다른 가문 출신 후보가 국왕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도 가능했으나, 현직 국왕이 살아있을 때 차기 국왕을 선출하도록 하는 꼼수를 써서 사실상의 세습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