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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조 제8대 국왕
프랑스 왕국 프랑수아 2세의 왕비
메리
Mary, Queen of Scots
파일:메리 스튜어트.jpg
1558년 ~ 1560년 프랑스 왕비 시절 초상화
본명
메리 스튜어트
(Mary Stuart)
출생
스코틀랜드 왕국 린리스고 린리스고 궁전
사망
1587년 2월 8일 (향년 44세)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셔 파서링게이 성
신체
180cm[1]
재위
배우자
프랑수아 2세 (1558년 결혼 / 1560년 사망)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 (1565년 결혼 / 1567년 사망)
제4대 보스웰 백작 제임스 헵번
(1567년 결혼 / 1578년 사망)
자녀
아버지
어머니
종교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스코틀랜드 왕국여왕으로, 스코틀랜드 역사상 중요한 군주 중 한 명이다. 제임스 5세의 외동딸로 태어나 6일 만에 여왕으로 즉위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정국 혼란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녀는 5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후계자인 도팽 프랑수아의 약혼녀가 되어 유년기를 자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보냈고, 남편 프랑수아 2세가 왕위를 계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별하면서 귀국하게 되었는데, 워낙 어렸을 때 스코틀랜드를 떠났기에 자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했고,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음모 등이 겹쳐 폐위되어 잉글랜드로 망명했는데, 그곳에서도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갈등 을 겪다 1587년 처형되었다.

2. 생애[편집]

1542년 12월 8일 스코틀랜드 왕국 린리스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5세의 사망으로 생후 6일 만에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어린 시절 프랑스 궁정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으며, 1558년 프랑수아 2세와 혼인하였다. 남편 사망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통치했으나, 개신교가톨릭 간 종교 갈등 속에서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1567년 보스워스 사건 등으로 인해 스코틀랜드를 떠나 잉글랜드로 망명했으며, 1587년 2월 8일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되었다.
[1] 당시 잉글랜드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의 평균 키조차도 크게 앞선 굉장한 장신이었다. 현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큰 키. 모후인 마리 드 기즈도 딸만큼은 아니지만 키가 매우 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