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노르웨이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고대[편집]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게르만족의 고향으로 꼽히는 지역으로, 동게르만족과 서게르만족이 남쪽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잔류한 게르만족이 북게르만족(노르드인)이 되었다.
고대 노르드어를 사용하며 북유럽 신화를 믿었던 그들은 중세에 접어들면서 지역별로 분화하며 노르웨이인을 비롯한 여러 노르딕 민족들로 나뉘게 되었다.
고대 노르드어를 사용하며 북유럽 신화를 믿었던 그들은 중세에 접어들면서 지역별로 분화하며 노르웨이인을 비롯한 여러 노르딕 민족들로 나뉘게 되었다.
3. 중세 노르웨이 왕국[편집]
바이킹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르웨이인들도 해양으로 나아갔는데,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개척하고 아메리카에 빈란드를 건설한 이들이 바로 노르웨이계 바이킹들이었다.
이와 별개로 노르웨이 본토에서의 통일전쟁도 진행되어 10세기경에 노르웨이 왕국이 형성되었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되었다.
노르웨이는 11세기 중반 하랄 3세 시대에 잉글랜드 왕국을 노리기도 했으나, 1066년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잉글랜드 국왕 해럴드 2세에게 패하여 하랄 3세 본인마저 전사하면서 노르웨이의 잉글랜드 정복 시도는 좌절되었다.[1]
12세기 초에 즉위한 시구르 1세는 이른바 '노르웨이 십자군'이라 불리는 십자군을 조직해 성지 예루살렘까지 원정하여 십자군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아이슬란드가 내분을 겪다가 노르웨이에 합병을 청원하면서 노르웨이령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아이슬란드인들이 노르웨이계 이민자들이 다수라 노르웨이와의 동질감이 강했던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이와 별개로 노르웨이 본토에서의 통일전쟁도 진행되어 10세기경에 노르웨이 왕국이 형성되었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되었다.
노르웨이는 11세기 중반 하랄 3세 시대에 잉글랜드 왕국을 노리기도 했으나, 1066년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잉글랜드 국왕 해럴드 2세에게 패하여 하랄 3세 본인마저 전사하면서 노르웨이의 잉글랜드 정복 시도는 좌절되었다.[1]
12세기 초에 즉위한 시구르 1세는 이른바 '노르웨이 십자군'이라 불리는 십자군을 조직해 성지 예루살렘까지 원정하여 십자군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아이슬란드가 내분을 겪다가 노르웨이에 합병을 청원하면서 노르웨이령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아이슬란드인들이 노르웨이계 이민자들이 다수라 노르웨이와의 동질감이 강했던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4. 칼마르 연합[편집]
5. 덴마크-노르웨이[편집]
6.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편집]
1814년에 노르웨이 왕위가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가면서 노르웨이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노르웨이령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덴마크가 지배하던 지역인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페로 제도는 이때 스웨덴에 할양되지 않고 덴마크령이 되어 노르웨이와 영구적으로 분리되었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노르웨이령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덴마크가 지배하던 지역인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페로 제도는 이때 스웨덴에 할양되지 않고 덴마크령이 되어 노르웨이와 영구적으로 분리되었다.
7. 근현대 노르웨이 왕국[편집]
7.1. 독립 직후~전간기[편집]
1905년 노르웨이는 덴마크 왕자 출신 호콘 7세를 왕으로 옹립했는데, 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이기도 했기에 노르웨이는 유혈사태 없이 독립을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7.2. 나치 독일의 점령[편집]
1940년 노르웨이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를 설치하여 지배하다가, 1942년에는 비드쿤 크비슬링이 이끄는 노르웨이인 내각(크비슬링 정권)을 구성했으나, 크비슬링은 히틀러가 직접 임명한 국가판무관부에 종속되었기에 괴뢰 정권에 불과했다.
7.3. 현대 노르웨이 왕국[편집]
[1] 다만 같은 해에 일어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는 노르망디 공작 기욤 2세에게 패하여 전사하고, 기욤 2세가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1세로 즉위했기에,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는 결과적으로 윌리엄 1세가 어부지리를 본 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