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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1519년 4월 13일 ~ 1589년 1월 5일)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왕비이자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 세 국왕의 어머니이다. 이탈리아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남편 사후 어린 아들들을 대신해 섭정하며 30년 넘게 프랑스의 실권을 장악했다. 위그노 전쟁이라는 혼란기 속에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배후로 지목되며 '검은 왕비'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동시에 요리, 에티켓, 예술 등 이탈리아의 선진 문화를 프랑스 궁정에 이식하여 프랑스 르네상스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519년 피렌체에서 우르비노 공작 로렌초 2세의 딸로 태어났다. 1533년 프랑스의 앙리 2세와 정략결혼했으나, 남편의 정부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밀려 오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1559년 앙리 2세가 마상 창시합 사고로 급사하자, 그녀는 정치적 전면에 나섰다. 종교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 세력을 키우던 신교도들을 견제하기 위해 중도 노선을 걷기도 했으나 결국 학살 사건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말년에는 아들 앙리 3세와의 갈등과 가문의 몰락을 지켜보며 1589년 블루아 성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