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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보츠와나는 남아프리카 내륙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19세기에 들어서도 백인들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한 땅이었다.
그러나 보어인 또는 아프리카너[2]라 불리는 백인들이 내륙으로의 대이주(그레이트 트렉)[3]을 감행하자 보츠와나 역시 그들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이때 영국이 츠와나족에게 접근하여 영국군의 주둔과 자원이용만 허락해주면 보어인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 약속했고, 1888년에 여러 츠와나 부족들과 공식적으로 보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국의 보호령인 베추아날랜드 보호령이 설립되었다.
이로써 보츠와나는 영국령이 되었지만 영국군과 영국 경찰의 주둔만이 이루어지고 내정에 있어서는 츠와나 족장들의 자치권이 보장되었다.
1895년에는 세실 로즈가 이끄는 식민회사인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가 동인도회사의 인도 지배처럼 베추아날랜드를 회사령으로 만들어 지배하려 했으나, 츠와나 3대 부족의 족장들인 바토엔 1세, 카마 3세, 세벨레 1세가 직접 런던을 방문하여 영국 정부에 항의하면서 무산되었다.
1910년 영국의 여러 남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남아프리카 연방[4]으로 통합되자, 베추아날랜드 역시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편입하는 것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1947년에는 츠와나 3대 부족 중 하나인 바망와토족의 왕자 세레체 카마[5]가 루스 윌리엄스라는 영국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당대 영국과 남아프리카 백인들은 물론이고[6] 동족인 츠와나족을 비롯한 흑인들의 반발까지 불러와[7], 세레체 카마는 베추아날랜드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세레체 카마는 지속적으로 추방의 부당함을 호소하여 1956년에 부족장 지위 계승을 포기하고 평민 신분으로 귀국한다는 조건하에 베추아날랜드로 돌아왔고, 1961년부터는 베추아날랜드 민주당[8]을 창당하여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65년 영국 치하에서 실시된 제헌의회 총선에서 베추아날랜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1966년 영국이 공식적으로 베추아날랜드의 독립을 승인함에 따라 세레체 카마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보츠와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보어인 또는 아프리카너[2]라 불리는 백인들이 내륙으로의 대이주(그레이트 트렉)[3]을 감행하자 보츠와나 역시 그들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이때 영국이 츠와나족에게 접근하여 영국군의 주둔과 자원이용만 허락해주면 보어인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 약속했고, 1888년에 여러 츠와나 부족들과 공식적으로 보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국의 보호령인 베추아날랜드 보호령이 설립되었다.
이로써 보츠와나는 영국령이 되었지만 영국군과 영국 경찰의 주둔만이 이루어지고 내정에 있어서는 츠와나 족장들의 자치권이 보장되었다.
1895년에는 세실 로즈가 이끄는 식민회사인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가 동인도회사의 인도 지배처럼 베추아날랜드를 회사령으로 만들어 지배하려 했으나, 츠와나 3대 부족의 족장들인 바토엔 1세, 카마 3세, 세벨레 1세가 직접 런던을 방문하여 영국 정부에 항의하면서 무산되었다.
1910년 영국의 여러 남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남아프리카 연방[4]으로 통합되자, 베추아날랜드 역시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편입하는 것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1947년에는 츠와나 3대 부족 중 하나인 바망와토족의 왕자 세레체 카마[5]가 루스 윌리엄스라는 영국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당대 영국과 남아프리카 백인들은 물론이고[6] 동족인 츠와나족을 비롯한 흑인들의 반발까지 불러와[7], 세레체 카마는 베추아날랜드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세레체 카마는 지속적으로 추방의 부당함을 호소하여 1956년에 부족장 지위 계승을 포기하고 평민 신분으로 귀국한다는 조건하에 베추아날랜드로 돌아왔고, 1961년부터는 베추아날랜드 민주당[8]을 창당하여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65년 영국 치하에서 실시된 제헌의회 총선에서 베추아날랜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1966년 영국이 공식적으로 베추아날랜드의 독립을 승인함에 따라 세레체 카마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보츠와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3. 관련 문서[편집]
[1] 츠와나족이 국가 이전의 부족사회에 머물고 있었기에, 당대에는 지리적 명칭일 뿐 국호는 아니었다.[2] 네덜란드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유럽계 이민자들이 네덜란드어 방언인 아프리칸스어를 모어로 사용하면서 형성된 민족.[3] 네덜란드령 케이프 식민지가 영국에 할양된 것이 발단이 되었다.[4]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5] 위에서 언급한 카마 3세의 손자였다.[6] 아직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하던 시절이었기에, 상당수의 백인들은 아무리 자기 부족 내에선 왕자라 해도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7] 세레체 카마는 단순한 흑인이 아니라 바망와토족의 족장 지위를 계승할 수 있는 신분이었기에, 그가 백인 여성과 결혼한 후 족장으로 즉위하면 훗날 백인 혈통을 물려받은 족장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루스 윌리엄스는 영국 귀족도 아닌 평민이었기에, 아무리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는 세상이라 해도 미천한 평민 여자가 왕자와 결혼하는 게 말이 되냐는 신분제에 찌든 꼰대논리를 내세워 반대하는 흑인들도 있었다.[8] 보츠와나 민주당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