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조차(租借, concession)는 특별한 합의에 따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빌려 일정한 기간 동안 통치하는 행위[1]이다. 영토권은 빌려준 나라에 속하지만, 통치권은 빌린 나라에 속한다. 조차와 할양을 묶어서 할양이라 하는 때가 있는데, 이때의 경우 조차는 가장된 할양, 할양은 영구 할양이라고 한다.
조차지(租借地, leased territory)는 조차의 대상이 되는 영토이다. 조차지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편전쟁 이후 난징 조약으로 청나라가 영국에 홍콩을 내어 준 것이다. 영구히 임대해 주거나, 임대 계약(보통 99년)을 갱신하는 형태로 운영된다.[2]
한편, 조계는 조차지의 특수한 형태로, 영토에 대한 법적 권리를 완전히 임대하지 않는 하위 개념이다. 할양과의 차이점은 조차의 경우 어디까지나 명목상 임대이기 때문에 조차를 받은 국가가 우선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거나 조차포기를 선언하면 다시 조차를 해준 국가에 자동으로 귀속된다. 그러나 할양의 경우 임대가 아니라 아예 영토를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할양을 받은 국가의 영토로 편입되며, 영토를 포기할 경우에도 이전 국가로 재양도되지 않으면 무주지가 된다.
조차지(租借地, leased territory)는 조차의 대상이 되는 영토이다. 조차지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편전쟁 이후 난징 조약으로 청나라가 영국에 홍콩을 내어 준 것이다. 영구히 임대해 주거나, 임대 계약(보통 99년)을 갱신하는 형태로 운영된다.[2]
한편, 조계는 조차지의 특수한 형태로, 영토에 대한 법적 권리를 완전히 임대하지 않는 하위 개념이다. 할양과의 차이점은 조차의 경우 어디까지나 명목상 임대이기 때문에 조차를 받은 국가가 우선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거나 조차포기를 선언하면 다시 조차를 해준 국가에 자동으로 귀속된다. 그러나 할양의 경우 임대가 아니라 아예 영토를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할양을 받은 국가의 영토로 편입되며, 영토를 포기할 경우에도 이전 국가로 재양도되지 않으면 무주지가 된다.
2. 주요 조차지 목록[편집]
3. 여담[편집]
4. 같이보기[편집]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인용.[2] 99년인 이유는 과거 영미법 관습상 임대차 계약 기간이 최대 99년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오래된 관습법을 존중하는 특유의 법문화가 있으며, 영국이 세계 각지로 진출한 뒤에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도 이런 계약 관습이 널리 전파되어 국제관습법화 되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99년 리스로 사는 경우가 있다.[3] 2차부터는 명시된 조약으로 승계받은 경우에만 기술. 단순 국가 체제의 변경인 경우 각주에 기술.[4] 요동반도 남쪽 끝인 다롄, 뤼순 일대[5] 포츠머스 조약으로 승계, 만주국 건국 이후 만주국과 재계약했다.[6] 1945년 조차 조약 새로 체결[7] 쿠바가 미국에 우호적이었을 때 조차하여 문제가 없었지만 쿠바 혁명 이후 쿠바 정부는 관타나모 만 조차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미국의 불법점유라 주장하고 있다[8] 영국령 홍콩의 일부가 되었지만 영국에 영구할양되었던 홍콩 섬과 구룡반도와는 달리 99년간 조차된 조차지였다.[9]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일본의 점령을 겪었다.(홍콩일치시기)[10]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제1공화국→포르투갈 제2공화국→포르투갈 제3공화국[A] 11.1 11.2 베르사유 조약 조항의 후속조치로 99년간 임대.[12]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13] 체코슬로바키아 분할 당시 슬로바키아와의 협의로 승계[15]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16] 2028년까지 조차 예정이었으나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집요한 방해를 받아 포기하였다.[17] 도중에 핀란드의 침공을 맞아 점거되었다 44년에 다시 받았다.[18] 원래 99년간 조차되어 조차 만기 기한은 1990년까지였으나 신드 지역에 잇다른 침식피해로 항만으로서 역할이 불가능해지는 한편 영국령 중앙아프리카를 잇는다는 기존의 존재이유 또한 철도 연결이 생긴 베이라가 대체하면서 1922년 사이클론 강타로 파괴 이후 반환한다.[19] 청나라가 영국에 조차한 이래 영국 영사관으로 쓰였다. 이후 일본에서 대만을 식민지화하자 1912년에 일본과 조차협정을 갱신했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일본 측에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점령했다. 1945년 중화민국에서 대만을 반환받은 이후로도 조차는 계속 이어졌다. 1950년 영국-중화민국 단교 이후에도 영사관으로 쓰였고, 1972년 영국-중화인민공화국 수교로 인해 완전히 철수했다. 그 뒤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등에서 관리를 대신하였고, 1980년 중화민국(대만)에 반환되었다.[20] 1965년 차고스 제도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영국은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 식민지에서 분리시켜 영국령 인도양 지역이라는 이름의 속령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섬인 디에고 가르시아에서 거주했던 원주민인 차고스인들을 전부 모리셔스로 추방하고, 미군과 공동으로 주둔하는 군사기지를 세웠다.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모리셔스 측에서는 원래 자국의 일부였던 차고스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수십 년 동안 영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결국 2024년 영국과 모리셔스 양국은 2025년 3월 21일까지 영국이 차고스 제도의 주권을 모리셔스에게 반환하고 차고스인들의 귀환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디에고가르시아는 99년간 조차하는 형태로 영국이 그대로 보유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일정이 미뤄져 5월 22일에 협정이 체결되었다. # 그러나 99년 조차기한이 만료된 후 추가로 조차기한을 40년 더 연장하는 연장 조항이 있어 반환 시점은 이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