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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니 여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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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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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제국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아테네의 이리니[1] 또는 이리니 여제는 797년부터 802년까지 재위한 동로마 제국 이사브리아 왕조여제로, 로마 제국 역사상 최초의 여제였다.

2. 생애[편집]

'아테네의'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아테네 출신이었던 이리니는 황제 레온 4세와 결혼하여 황후가 되었고, 그의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의 재위 기간에는 섭정 황태후를 역임했다.

섭정 기간 동안 이리니는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상 파괴주의이단으로 정죄하여 제1차 성상 파괴 운동을 종식시켰으나, 이는 성상 파괴주의를 신봉하는 그의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와 사이가 틀어지는 원인이 되었고 끝내 아들을 폐위하고 여제로 즉위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의 여성형인 아우구스타(Augusta) 칭호를 보유하며 황제나 다름 없는 실권을 행사한 여성 황족들은 여럿 있었으나, 남성 황제 없이 아우구스타가 단독으로 제국을 통치하는 여제가 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이는 제국 국내외에서 극한 반발을 불러와 800년에는 로마 교황이 황제위가 공석이라 주장하며 프랑크 왕국카롤루스서로마 황제로 추대하기까지 했다.

이리니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카롤루스와 정략결혼을 시도하기까지 했으나, 제국민들에게 야만인으로 간주되던 프랑크인의 왕이 여제와의 결혼을 통해 정통 황제의 자리까지 차지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고, 결국 이리니는 니키포로스 1세의 쿠데타로 폐위당한 후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1] 중세 그리스어: 이리니 이 아시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