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에페소스 공의회는 431년 동로마 제국 소아시아의 에페소스[1]에서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소집된 기독교 보편공의회로, 에페수스 공의회, 에페소 공의회, 에베소 공의회라고도 한다.
삼위일체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거쳐 정통 교리로 확립된 이후, 삼위일체의 한 위격(성자)인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놓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립이 격화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가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므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예수의 인성을 낳은 어머니일 뿐이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크리스토토코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전자를 대표하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가 후자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를 논박하여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성공하면서, 키릴로스의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정통으로 인정받고 네스토리우스를 비롯한 안티오키아 학파(네스토리우스파)는 로마 제국에서 추방되었다.
삼위일체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거쳐 정통 교리로 확립된 이후, 삼위일체의 한 위격(성자)인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놓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립이 격화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가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므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예수의 인성을 낳은 어머니일 뿐이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크리스토토코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전자를 대표하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가 후자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를 논박하여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성공하면서, 키릴로스의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정통으로 인정받고 네스토리우스를 비롯한 안티오키아 학파(네스토리우스파)는 로마 제국에서 추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