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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수 그리스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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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
예수는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창시자로, 해당 종교에서 삼위일체 유일신 야훼의 세 위격 가운데 하나로 숭배받는 인물이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내려온 구세주(메시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 부르기도 하며, 출신 지역의 이름을 따서 나사렛(나자렛) 예수라 부르기도 한다. 예수 자체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온 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서는 주장하는 원죄의 개념도 예수에게는 성립되지 않으며, 그 어떠한 죄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전 세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 중 하나이다. 무려 자신의 생일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 만들었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내려온 구세주(메시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 부르기도 하며, 출신 지역의 이름을 따서 나사렛(나자렛) 예수라 부르기도 한다. 예수 자체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온 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서는 주장하는 원죄의 개념도 예수에게는 성립되지 않으며, 그 어떠한 죄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전 세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 중 하나이다. 무려 자신의 생일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 만들었다.
2. 언어별 이름[편집]
2.1. 중동 및 서구권 언어[편집]
2.2. 한자문화권 언어[편집]
3. 예수에 대한 교리[편집]
3.1. 기독교[편집]
기독교에서의 예수는 완전한 유일신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신 신)이며, 성부,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 유일신을 이루는 세 위격 중 하나다.
3.2. 이슬람[편집]
이슬람에서의 예수는 신이 아닌 인간이지만 무함마드 이전에 활동했던 알라의 사도이자 예언자로서, 무함마드 다음으로 높은 위상을 가진 인물이다.
3.3. 유대교 및 기타 아브라함계 종교[편집]
유대교는 구약만을 인정하고 신약이나 쿠란의 권위는 부정하는 특성상 경전에서 예수 자체를 다루지 않으며, 가짜 예언자 내지는 자칭 신 정도로 보는 편이다.
4. 정체[편집]
그리스도교는 탄생 시점에는 일단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로 보았다. 하지만 이조차 기존 유대교의 메시아 관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유대교의 메시아는 세속적인 군주, 정확하게는 '유대 민족을 이끌 정치적인 지도자 혹은, 압제받는[25] 유대 민족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영웅'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세상의 종말 때 이 세상을 심판할 구세주의 개념으로 바라본 것. 이 때문에 초기부터 정통 유대교 신학과 마찰이 있었고, 사도 바울에 의해 헬레니즘 세계에 그리스도교가 퍼질 때는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기존 그리스 신화에서 흔히 나오는 반인반신과 혼동이 되어 또 마찰이 있었다. 심지어 "예수는 마리아와 로마 병사 판테라 사이에서 난 사생아다."라는 주장 역시 그때 생긴 주장이다. 어쨌건 그에 따라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다구리를 맞았고, 예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받았다. 이를 희랍 철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한 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26]
그리스도교에 의하면 온 인류의 구세주이자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persona)이되 본질(essence) 및 본성(nature)은 같은 자로, 그의 실체(substance)는 하느님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100% 거짓 없는 하느님이면서 또한 거짓 없는 인간이며, 창조되지 않은 자,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한 자이다. 그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었고, 재림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 물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파와 같이 초기 그리스도교 종파들도 존재했지만, 이들은 일찍이 사라졌다.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서방의 가톨릭이든, 동방의 정교회이든, 이집트의 콥트 교회이든, 에티오피아 정교회이든,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예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이든 간에 구체적인 해석은 갈릴지언정, 삼위일체의 기본 개념, 즉 세 위격이 한 실체를 이룬다는 교리는 공유한다. 또한 이 기본 개념에 대한 정의도 콘스탄티누스 1세 때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밀한 정의가 늦게 나왔다는 뜻이지, 삼위일체 개념 자체가 갑툭튀한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성부와 동질성을 가진다고 해석될 구절이 많았고, 반대로 구분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도 많았다. 여기서 양극단[27]을 우선 쳐내고, 그리스 철학을 통해 복음서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한 결과물이 지금의 삼위일체 정의이다.
그리스도교에 의하면 온 인류의 구세주이자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persona)이되 본질(essence) 및 본성(nature)은 같은 자로, 그의 실체(substance)는 하느님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100% 거짓 없는 하느님이면서 또한 거짓 없는 인간이며, 창조되지 않은 자,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한 자이다. 그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었고, 재림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 물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파와 같이 초기 그리스도교 종파들도 존재했지만, 이들은 일찍이 사라졌다.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서방의 가톨릭이든, 동방의 정교회이든, 이집트의 콥트 교회이든, 에티오피아 정교회이든,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예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이든 간에 구체적인 해석은 갈릴지언정, 삼위일체의 기본 개념, 즉 세 위격이 한 실체를 이룬다는 교리는 공유한다. 또한 이 기본 개념에 대한 정의도 콘스탄티누스 1세 때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밀한 정의가 늦게 나왔다는 뜻이지, 삼위일체 개념 자체가 갑툭튀한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성부와 동질성을 가진다고 해석될 구절이 많았고, 반대로 구분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도 많았다. 여기서 양극단[27]을 우선 쳐내고, 그리스 철학을 통해 복음서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한 결과물이 지금의 삼위일체 정의이다.
교부(敎父)들을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일치 안에서 한 분이시며 같은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데, 그는 신성(神性)에 완전하시며, 동시에 인성(人性)도 완전한 분이시고, 참으로 하느님이심과 동시에 참으로 인간이시며, 또한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계시며, 그의 신성은 성부와 같은 본질을 지니고 계시며, 그의 인격은 우리와 같은 본질을 지니고 계시는데, 죄로부터는 떨어져 있으나 모든 측면에서 우리와 같으시고, 그의 신성에 관해서는 역사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출생하셨고, 그러나 그의 인간적 출생에 관해서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한 분이시고 동일한 그리스도, 성자, 주님,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그는 2가지 본성으로 인식되는 바, 혼돈 없이, 변화 없이, 구분 없이, 분리 없이 계신 분이며, 본성들의 차이는 결합으로 인해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오히려 각 본성의 특징들은 보존되고, 한 위격과 생존을 형성하기 위하여 함께 오며, 두 위격으로 분리되거나 나눠짐 없이 한 분 같은 성자요 독생자이시며, 말씀, 하느님,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이와 같은 사실은 심지어 가장 최초의 예언자도 그에 관하여 말씀하셨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교부들의 신조로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28] 칼게돈 신조 |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중 |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 1장 1-14절 |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립보 2장 6-8절. |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예수의 정체를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은 요한복음이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는 한처음에[29] 하느님과 같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예수는 하느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30]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말로, 예수가 인간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요한 복음서의 이 구절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100% 인간이면서[31] 또한 100% 하느님이라고 본다. 또한 예수가 하느님이면, 그리스도교가 어째서 유일신교가 되냐는 의문이 나오자 삼위일체론으로 이것을 설명했다. 즉 성부는 하느님이고, 예수도 하느님이며, 성령도 하느님이지만, 성부 = 예수 = 성령은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한 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다음 구절들을 보면 이 뜻은 더 명확해진다.[32]
출애굽기탈출기 3장 1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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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요한복음 8장 23-3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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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생[편집]
5.1. 기독교 성경 속 예수의 행적[편집]
5.2. 이슬람 쿠란 속 예수의 행적[편집]
5.3. 역사적 예수[편집]
성경 속 구세주 또는 쿠란 속 예언자로서의 예수가 아닌, 실제 역사 인물로서의 예수의 일생.
근대 계몽주의 시대 이래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 예수의 삶에 대한 연구가 역사학계에서 진행되었고, 덕분에 종교적 입장을 떠나서 예수라는 인물의 실존성 자체는 검증되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삶의 궤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 이래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 예수의 삶에 대한 연구가 역사학계에서 진행되었고, 덕분에 종교적 입장을 떠나서 예수라는 인물의 실존성 자체는 검증되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삶의 궤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6. 기념일[편집]
7. 기년법[편집]
8. 창작물에서의 예수[편집]
예수가 직접적, 간접적인 등장이 확실시 된 때에만 서술함 |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스틸 볼 런
- 마음의 소리
- 맨 프롬 어스
- TYPE-MOON
- <왕중왕>
[1] 서력기원의 정의에 따르면 AD 원년(1년)이어야겠지만, 서력기원이 원년을 정의할 때 오차가 있었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출생 연도는 기원전 4년이다. 학자들에 따라, 어떤 기록을 사용하냐에 따라 생년이 들쭉날쭉하는데, 이는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크게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2] 마태오/루가 복음서에선 베들레헴을 지목하지만, 역사학적 신빙성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결론(나자렛 출생)이 역사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현재로서는 어느 쪽 주장이든 확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상황이며, 베들레헴 탄생 전승은 현재 복음서들의 문맥보다 더 오래된 것은 맞다.(참고: Raymond E. Brown., 『메시아의 탄생』The Birth of the Messiah: A commentary of the Infancy Narratives in the Gospels of Matthew and Luke (11993, 1999) , 이옥용 옮김, 2014, CLC, pp.839-844.)[3] 가장 유력한 가설[4] 기독교에서는 이후 부활 및 승천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 두 날을 주님 부활 대축일(부활절) 및 주님 승천 대축일로 기념한다.[5] 기독교에서는 복음서의 서술에 따라 사망 후 서기 30년 4월 10일 혹은 서기 33년 4월 6일에 예루살렘 정원 무덤(현재 성묘 교회,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음.)에서 부활했고 서기 30년 5월 19일 혹은 서기 33년 5월 15일에 예루살렘 감람산에서 승천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역사적 예수의 서술에서는 제외된다.[6] 팔레스타인이 영유권 주장,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 중.[7] 마태오 복음서의 서두와 루카의 복음서 3장 23-37절은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이어지는 부계 계보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족보는 상호 모순이 존재한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역사학계와 일부 성서비평학계에서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예언을 만족시키기 위해 창작된 족보로 보고 있다.[8] 기독교의 관점에서 나자렛의 요셉은 예수의 양아버지이고, 예수는 본성(natura)적으로 하느님의 외아들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을 하느님의 자녀라고 부를 때에는 은총(gratia)에 의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 4)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바로 이 때문에 '말씀'은 인간이 되시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과 친교를 맺고, 자녀 됨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셨다.”(성 이레네오, 이단 반박, 3, 19, 1)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성 아타나시오, 육화론, 54, 3)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성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성무일도 제2독서: Opera omnia, 29권(파리, 1876), 336면.)」
-가톨릭 교리서 제460항
또한 예수가 하느님의 외아들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자렛의 요셉과의 가족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루가 복음서 2장 33절에서는 요셉을 아버지(patēr)라 명시하고 있으며, 신약이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도 예수와 요셉의 가족 관계를 전제할 때 성립된다.[논란] 동복동생인지, 이복동생인지, 혹은 형제라 불릴 정도로 친밀한 친족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성경에서는 이들은 형제자매라는 표현으로 수식된다. 성모의 평생동정 전승을 인정하는 가톨릭과 정교회는 전승과 당대 유대인들의 언어 습관, 그리고 죽어가는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 성모를 이들이 아닌 사도 요한에게 부탁한 점을 근거로 이들을 의형제나 친척# 혹은 아주 친밀한 사이(속칭 형동생 하는)로 간주한다. 특히 요한의 이야기를 결정적 근거로 보는데 장자로서 어머니를 부탁하는데 배제할 정도로 동생들을 믿지 못했다면 어떻게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수장의 자리를 얻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전승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는 예수의 형제가 예수의 사망 당시 믿음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단어 그대로 동복형제로 본다.[10] 전통적으로 소 야고보와 동일인물로 파악되었으나 이견이 있다. #[11] 예루살렘 교회의 첫 수장이며 따라서 후대에는 첫 예루살렘 총대주교로 간주된다.[12] 전승에 따르면 유다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12사도 중 유다 타대오나 예수를 배신한 유다 이스카리옷과는 동명이인이다.[13]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의 뒤를 이어 2대 예루살렘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이쪽도 사도 시몬, 베드로와 동명이인이다.[14] 당대 발음인 코이네 그리스어 기준으로 읽은 것이다. 현대 그리스어로는 이이수스 흐리스토스.[15] 구약성경 원문의 언어.[16] 예수 본인을 포함한 당시 유대 지방 사람들이 모국어로 사용했다고 유력시되는 언어.[17] 신약성경 원문의 언어.[18] 예수.[19] 예수스.[20] 예수스 크리스투스.[21] 헤수스.[22] 제주스.[23] 지져스.[24] 지져스 크라이스트.[25]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26] 다만 삼위일체에 대한 구체적 용어 정립은 후대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예수에 대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다신론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AD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던 생각이다. 자세한 건 아래의 '예수의 사상과 그리스도교' 부분 참조.[27] 동질성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는 아리우스파, 구별을 완전히 부정하는 단일신론파[28] 영어 번역본을 중역하되, 이 문서에서는 person(페르소나)은 위격으로, nature는 본성으로, essence는 본질로 번역했다.[29] '한처음'은 라틴어로 In principio. 창세기에서도 사용된 말로, 단순히 시간상으로 처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단순한 시간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정도의 의미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인 '한처음'이라는 요상한 말로 번역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30] 라틴어로 caro. 번역에 따라 이를 육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 가톨릭 번역판 성경. 그런데 라틴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말은 homo이고, 그렇기에 요한 복음서에서 굳이 homo 대신 caro를 택한 것은 꽤 주목할 만하다. 굳이 이 구절에서 복음서가 caro라는 말을 쓴 것은, 예수가 단순히 인간의 형상을 취한 것이 아니라, 나약한 육신을 지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었다는 뜻으로 적은 것이다. [31] 원죄가 없다는 점 때문에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은 원래 원죄가 없는데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원죄에 시달리는 것이다. 즉 예수가 원죄가 없다고 해서 그가 사람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32] 인용한 국역 성경과 영어 성경은 각각 가톨릭 성경과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새 미국 성경 개정판, NABRE)이다. I AM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역본들을 인용했다. 또한 NABRE에서 I AM을 대문자로 강조한 것도 그대로 인용했다.[33] I was가 자연스러운데, I am이라는 현재 시제로 자신이 신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불변의 진리는 반드시 현재형으로 서술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 때문에 이 발언 직후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 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 라면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으나, '있다'의 의도를 유대인들이 제대로 이해했고, 신성 모독으로 간주했기 때문. 한국어 가톨릭 번역에서는 과거형 시제를 써서 있'었'다라고 말하기에 덜 와닿을지도 모르지만, 영어 번역에서는 이 부분이 직역되어 있다.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 4)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바로 이 때문에 '말씀'은 인간이 되시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과 친교를 맺고, 자녀 됨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셨다.”(성 이레네오, 이단 반박, 3, 19, 1)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성 아타나시오, 육화론, 54, 3)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성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성무일도 제2독서: Opera omnia, 29권(파리, 1876), 336면.)」
-가톨릭 교리서 제460항
또한 예수가 하느님의 외아들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자렛의 요셉과의 가족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루가 복음서 2장 33절에서는 요셉을 아버지(patēr)라 명시하고 있으며, 신약이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도 예수와 요셉의 가족 관계를 전제할 때 성립된다.[논란] 동복동생인지, 이복동생인지, 혹은 형제라 불릴 정도로 친밀한 친족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성경에서는 이들은 형제자매라는 표현으로 수식된다. 성모의 평생동정 전승을 인정하는 가톨릭과 정교회는 전승과 당대 유대인들의 언어 습관, 그리고 죽어가는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 성모를 이들이 아닌 사도 요한에게 부탁한 점을 근거로 이들을 의형제나 친척# 혹은 아주 친밀한 사이(속칭 형동생 하는)로 간주한다. 특히 요한의 이야기를 결정적 근거로 보는데 장자로서 어머니를 부탁하는데 배제할 정도로 동생들을 믿지 못했다면 어떻게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수장의 자리를 얻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전승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는 예수의 형제가 예수의 사망 당시 믿음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단어 그대로 동복형제로 본다.[10] 전통적으로 소 야고보와 동일인물로 파악되었으나 이견이 있다. #[11] 예루살렘 교회의 첫 수장이며 따라서 후대에는 첫 예루살렘 총대주교로 간주된다.[12] 전승에 따르면 유다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12사도 중 유다 타대오나 예수를 배신한 유다 이스카리옷과는 동명이인이다.[13]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의 뒤를 이어 2대 예루살렘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이쪽도 사도 시몬, 베드로와 동명이인이다.[14] 당대 발음인 코이네 그리스어 기준으로 읽은 것이다. 현대 그리스어로는 이이수스 흐리스토스.[15] 구약성경 원문의 언어.[16] 예수 본인을 포함한 당시 유대 지방 사람들이 모국어로 사용했다고 유력시되는 언어.[17] 신약성경 원문의 언어.[18] 예수.[19] 예수스.[20] 예수스 크리스투스.[21] 헤수스.[22] 제주스.[23] 지져스.[24] 지져스 크라이스트.[25]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26] 다만 삼위일체에 대한 구체적 용어 정립은 후대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예수에 대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다신론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AD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던 생각이다. 자세한 건 아래의 '예수의 사상과 그리스도교' 부분 참조.[27] 동질성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는 아리우스파, 구별을 완전히 부정하는 단일신론파[28] 영어 번역본을 중역하되, 이 문서에서는 person(페르소나)은 위격으로, nature는 본성으로, essence는 본질로 번역했다.[29] '한처음'은 라틴어로 In principio. 창세기에서도 사용된 말로, 단순히 시간상으로 처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단순한 시간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정도의 의미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인 '한처음'이라는 요상한 말로 번역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30] 라틴어로 caro. 번역에 따라 이를 육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 가톨릭 번역판 성경. 그런데 라틴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말은 homo이고, 그렇기에 요한 복음서에서 굳이 homo 대신 caro를 택한 것은 꽤 주목할 만하다. 굳이 이 구절에서 복음서가 caro라는 말을 쓴 것은, 예수가 단순히 인간의 형상을 취한 것이 아니라, 나약한 육신을 지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었다는 뜻으로 적은 것이다. [31] 원죄가 없다는 점 때문에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은 원래 원죄가 없는데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원죄에 시달리는 것이다. 즉 예수가 원죄가 없다고 해서 그가 사람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32] 인용한 국역 성경과 영어 성경은 각각 가톨릭 성경과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새 미국 성경 개정판, NABRE)이다. I AM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역본들을 인용했다. 또한 NABRE에서 I AM을 대문자로 강조한 것도 그대로 인용했다.[33] I was가 자연스러운데, I am이라는 현재 시제로 자신이 신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불변의 진리는 반드시 현재형으로 서술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 때문에 이 발언 직후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 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 라면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으나, '있다'의 의도를 유대인들이 제대로 이해했고, 신성 모독으로 간주했기 때문. 한국어 가톨릭 번역에서는 과거형 시제를 써서 있'었'다라고 말하기에 덜 와닿을지도 모르지만, 영어 번역에서는 이 부분이 직역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