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현청 소재지 | 사가시 조나이1초메 1-59 | ||
하위 행정구역 | 10시 10정 | ||
지방 | |||
면적 | 2,440.68㎢ | ||
인구 | 777,114명[1] | ||
인구밀도 | 325명/㎢ | ||
GDP(명목) | 약 $282억(2018)[2] | ||
1인당 GDP | $34,502(2018) | ||
현지사 | 야마구치 요시노리 (山口祥義, 3선) | ||
27석 | |||
5석 | |||
2석 | |||
1석 | |||
2석 | |||
2석 | |||
2석 | |||
상징 | 현화 | ||
현목 | |||
현조 | |||
0952~0955 | |||
JP-41 | |||
1. 개요[편집]
2. 상징[편집]
심볼마크 |
1992년 심볼마크가 제정된 이후 현의 문장은 폐지되지는 않았으나 사용 빈도가 매우낮다.[3] 현의 공식 사이트에서도 심볼마크만 소개하고 있다.
3. 특징[편집]
특색 넘치는 규슈의 현들 가운데에서 상당히 존재감이 없는 곳이다. 규슈의 7개 현 중 인구나 면적이 가장 작을뿐만 아니라 전국 47개 도도부현 중 인구규모와 면적 모두 42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 규슈의 다른 현들은 적어도 하나쯤은 전 일본다운 것이 알려질 만한 요소가 있다. 규슈의 수도이자 일본에서 4번째로 큰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고 하카타 라멘으로도 전국에 유명한 후쿠오카현이나, 네덜란드와의 역사적 거류지 및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 쓰시마섬, 그리고 나가사키 짬뽕과 카스테라 등으로 알려진 나가사키현, 온천이 유명하며 스즈메의 문단속의 배경이 된 오이타현[4], 구마모토 성과 아소산, 쿠마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구마모토현, 사츠마 군벌의 발상지이자 규슈 최남단의 현으로 사쿠라지마 화산과 흑돼지고기로 유명한 가고시마현, 과거 신혼여행의 명소이자 다카치호로 알려진 미야자키현 등에 비해서 딱히 내세울 만한 전국구급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규슈의 7개 현을 꼽아보라고 할 때 사가현을 얼른 떠올리지 못하고, 오키나와현을 규슈의 현으로 넣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실제로 오키나와도 넓은 범위에선 규슈로 넣기도 하니까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규슈'라는 지명 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규슈 지방'이라는 범위 안에는 포함된다고 교육을 받는 듯 하다.[5]
낮은 존재감 때문에 사가현 출신 가수 겸 게닌 하나와가 2003년에 '사가현'이라는 자학송을 냈는데, 노래 내용인즉 "학교에서 반 학생의 절반이 같은 이발소에 다니고 절반은 엄마한테 깎는다고, 사가현에도 규동집이 생겼는데 이름이 요시다야, 일본의 규동집 체인 요시노야의 짝퉁이라는 것. 사가현 출신 연예인(마츠유키 야스코, 마키세 리호)들은 사가현 출신이라는 것을 공표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는데 한쪽에 논밖에 없는 게 마치 야요이 시대, 민가 이외의 건물이 없어서 버스정류장 이름이 '야마시타씨 집 앞'[6]..." 이 노래가 굉장히 히트쳐서 하나와가 그 해 말에 열린 제54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했다.그러나 노래가 히트해서 사가현의 인지도는 올라갔지만, 사가현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지는 않았다고
게다가 전국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여행한 적이 없는 현'을 조사한 결과 사가현이 여행한 적이 없는 현 1위에 올랐다. #
하지만 사가에도 찾아보면 뭐가 없는 동네는 아니다. 먼저 일본 3대 미인천이라 불리는 우레시노 온천이 있으며, 이 북쪽 지역에 또 다른 온천지역인 다케오 온천이 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카라츠성과 긴 소나무 숲 '니지노마츠바라' 등, 소소한 관광스폿도 있고,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 같은 역사적 관광지도 있다. 먹거리 또한, 규슈에서도 유명한 쇠고기 '사가규'와 '이마리규' 브랜드를 가지고있고, 우레시노지역은 두부요리가 특산품이다. 다만, 사가 지역 자체가 교통이 다른 지역보다 불편하고 관광지 규모도 작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 "사가현"이라고 하면 그거 간사이 아님?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시가현도 만만찮은 동네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긴 비와호(일본 최대의 호수) 때문에 나름 존재감은 있으니…
물론 현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지역을 알리고 보자'는 목적으로 사가프라이즈!(サガプライズ!) 프로젝트를 세워 적극적으로 다양한 메이커 및 기업과 협연하여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과회사인 모리나가나 일본 내에서 유명한 잡지인 젝시부터, 게임 및 애니메이션까지 분야도 다양한 편. 후자의 케이스로는 로맨싱 사가, 스플래툰, 오소마츠 상,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사가트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유리!!! on ICE, 좀비 랜드 사가 시리즈와 콜라보레이션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그나마 일부 알려진 건 좀비 랜드 사가 시리즈 덕인데, 이니셜D 덕에 알려진 군마현과 비슷한 케이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왜군 침략의 거점으로 쓰였던 나고야(名護屋) 성은 지금의 나고야(名古屋)가 아니라 이 현의 카라츠시(唐津市[7])에 있는 성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상태.
낮은 존재감 때문에 사가현 출신 가수 겸 게닌 하나와가 2003년에 '사가현'이라는 자학송을 냈는데, 노래 내용인즉 "학교에서 반 학생의 절반이 같은 이발소에 다니고 절반은 엄마한테 깎는다고, 사가현에도 규동집이 생겼는데 이름이 요시다야, 일본의 규동집 체인 요시노야의 짝퉁이라는 것. 사가현 출신 연예인(마츠유키 야스코, 마키세 리호)들은 사가현 출신이라는 것을 공표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는데 한쪽에 논밖에 없는 게 마치 야요이 시대, 민가 이외의 건물이 없어서 버스정류장 이름이 '야마시타씨 집 앞'[6]..." 이 노래가 굉장히 히트쳐서 하나와가 그 해 말에 열린 제54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했다.
게다가 전국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여행한 적이 없는 현'을 조사한 결과 사가현이 여행한 적이 없는 현 1위에 올랐다. #
하지만 사가에도 찾아보면 뭐가 없는 동네는 아니다. 먼저 일본 3대 미인천이라 불리는 우레시노 온천이 있으며, 이 북쪽 지역에 또 다른 온천지역인 다케오 온천이 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카라츠성과 긴 소나무 숲 '니지노마츠바라' 등, 소소한 관광스폿도 있고,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 같은 역사적 관광지도 있다. 먹거리 또한, 규슈에서도 유명한 쇠고기 '사가규'와 '이마리규' 브랜드를 가지고있고, 우레시노지역은 두부요리가 특산품이다. 다만, 사가 지역 자체가 교통이 다른 지역보다 불편하고 관광지 규모도 작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 "사가현"이라고 하면 그거 간사이 아님?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시가현도 만만찮은 동네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긴 비와호(일본 최대의 호수) 때문에 나름 존재감은 있으니…
물론 현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지역을 알리고 보자'는 목적으로 사가프라이즈!(サガプライズ!) 프로젝트를 세워 적극적으로 다양한 메이커 및 기업과 협연하여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과회사인 모리나가나 일본 내에서 유명한 잡지인 젝시부터, 게임 및 애니메이션까지 분야도 다양한 편. 후자의 케이스로는 로맨싱 사가, 스플래툰, 오소마츠 상,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사가트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유리!!! on ICE, 좀비 랜드 사가 시리즈와 콜라보레이션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그나마 일부 알려진 건 좀비 랜드 사가 시리즈 덕인데, 이니셜D 덕에 알려진 군마현과 비슷한 케이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왜군 침략의 거점으로 쓰였던 나고야(名護屋) 성은 지금의 나고야(名古屋)가 아니라 이 현의 카라츠시(唐津市[7])에 있는 성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상태.
4. 역사[편집]
옛 이름은 히젠으로, 센고쿠 시대에는 큐슈 3대 세력 중 하나였던 류조지 다카노부의 류조지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다카노부 사후 가신이었던 나베시마 가문으로 다이묘 자리가 넘어가게 된다. 나베시마 가문은 에도 막부 내내 히젠 사가 번의 다이묘(번주)를 지냈다. 그래도 류조지 가문의 후손들은 나베시마 친족에 준하게 대우받는 등 그럭저럭 가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가 번은 에도 시대 기준으로도 유독 여러 분가 및 방계, 막부 직할령 등으로 영토가 쪼개져서 관리된 것으로 유명하다. 3대 지번인 오기, 하스노이케, 가시마 번뿐만 아니라 다른 나베시마 분가들, 류조지 분가들이 각자의 영지를 관리했으며, 이 때문에 영지의 크기에 비해 번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에도 막부 말기 사가 번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번정을 개혁하여 웅번 중 하나로 떠올랐고, 사쓰마, 조슈, 도사와 함께 도막파의 4대 주요 번으로 메이지 유신에 공헌했다[8]. 하지만 보신 전쟁에 늦게 참전했기에 사쓰마, 조슈에 비해서는 대우가 좋지 않았고, 메이지 6년의 정변에서 사가 번사들은 사이고 다카모리, 도사 번사들과 함께 정쟁에서 패해 낙향해야 했다. 1874년 에토 신페이[9]를 중심으로 하여 불평 사족들이 사가의 난을 일으켰지만 빠르게 진압되었고, 이후 일본 중앙 정치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가의 난에 가담하지 않은 오쿠마 시게노부, 소에지마 다네오미 등이 민권운동파와 삿초 번벌 사이를 오가며 총리 등 각종 요직에 올라 활약하기도 했다.
폐번치현 후 나베시마 가문은 화족이 되었고, 명문 화족 및 황족 가문과 사돈을 맺었다. 특히 이방자 비의 외가로 유명하다. 또한 매우 부유하여, 이방자 비의 어머니 이츠코(伊都子)[10]를 방계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 왕에게 시집보낼 때는 거액의 혼수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사가 번은 에도 시대 기준으로도 유독 여러 분가 및 방계, 막부 직할령 등으로 영토가 쪼개져서 관리된 것으로 유명하다. 3대 지번인 오기, 하스노이케, 가시마 번뿐만 아니라 다른 나베시마 분가들, 류조지 분가들이 각자의 영지를 관리했으며, 이 때문에 영지의 크기에 비해 번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에도 막부 말기 사가 번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번정을 개혁하여 웅번 중 하나로 떠올랐고, 사쓰마, 조슈, 도사와 함께 도막파의 4대 주요 번으로 메이지 유신에 공헌했다[8]. 하지만 보신 전쟁에 늦게 참전했기에 사쓰마, 조슈에 비해서는 대우가 좋지 않았고, 메이지 6년의 정변에서 사가 번사들은 사이고 다카모리, 도사 번사들과 함께 정쟁에서 패해 낙향해야 했다. 1874년 에토 신페이[9]를 중심으로 하여 불평 사족들이 사가의 난을 일으켰지만 빠르게 진압되었고, 이후 일본 중앙 정치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가의 난에 가담하지 않은 오쿠마 시게노부, 소에지마 다네오미 등이 민권운동파와 삿초 번벌 사이를 오가며 총리 등 각종 요직에 올라 활약하기도 했다.
폐번치현 후 나베시마 가문은 화족이 되었고, 명문 화족 및 황족 가문과 사돈을 맺었다. 특히 이방자 비의 외가로 유명하다. 또한 매우 부유하여, 이방자 비의 어머니 이츠코(伊都子)[10]를 방계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 왕에게 시집보낼 때는 거액의 혼수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5. 관광[편집]
한국은 티웨이항공이 사가 공항에 취항해 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볼 게 없는 현이지만 항공편이 다니므로 한국인 관광객은 좀 있는 편이다. 사가 공항에 직항편이 인천 직항 노선이 유일하기 때문에 그 이외에는 후쿠오카 공항을 잇는 직항편(인천, 부산, 제주, 대구, 청주 등)을 통해 갈 수 있다.
꽤 큰 행사로 매년 11월에 열리는 열기구 축제인 국제 사가 벌룬 페스티벌이 있다. 이때는 행사장 바로 근처에 있는 벌룬 사가 역이라는 임시승강장까지 임시열차편이 운행된다. 제주 올레를 본 딴 타케오 올레가 이 지역 타케오 온센역에 있다. 제주 올레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탄생했는데, 그 덕분인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그외에도 일본식 성도 있으며, 우레시노 온천도 있고, 오오우오 바다 신사를 비롯해 유토쿠이나리 신사라는 큰 신사도 있고 프리미엄 아울렛도 있다. 일본인이 보기에는 다른 지역에 더 상위호환[11]이 있어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갈 필요 없는 지역이란 선입견이 있지만 외국인들이 일본 소도시 관광하기에는 컴팩트하게 일본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가현도 어차피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 본토의 관광객을 교통편도 불편한 (오사카-사가행이 인천-사가행 비행기보다 월등히 비싸다) 사가현에 유치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그나마 가까운 한국관광객에 대한 텃세도 없고 매우 친절한 편이다.
도자기로 유명한 이마리, 아리타 및 1300년의 역사적인 온천휴양지인 우레시노 온천 등의 명승지가 존재한다. 참고로 우레시노에는 히젠유메카이도(肥前夢街道)라고 하는 닌자 마을이 테마파크화 되어 운영 중인 듯 하다. 놀러갈 때 참고해보자. 테마파크의 테마곡
카시마시에서는 갯벌을 관광자원으로 써먹고 있으며, 갯벌 축제인 '카시마 가타림픽(鹿島ガタリンピック)'을 개최하고 있다. 카시마 가타림픽은 보령 머드축제처럼 갯벌을 이용한 다양한 경기가 열린다. 갯벌이 일본에는 흔하지 않을 뿐더러 온 몸에 진흙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일본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로 신청 경쟁도 치열하다.
사가현에도 스키장이 있어 후쿠오카와 나가사키의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 대신 남쪽이라 개장 일수도 적다.
2019년 일본 불매운동 당시 관광업계가 심하게 타격을 받은 현 중 하나다. 도쿄나 오사카에서 거리도 멀고, 교통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자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도 힘들다. 한국인이나 가는 거지 일본인 입장에서는 볼 것 없는 자국 시골을 굳이 비싼 돈 내고 갈 이유가 없다. 한국 역시 관광지가 없는 시골 여행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한국인을 제외한 해외 관광객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8년 4분기 사가현을 배경으로 한 좀비 랜드 사가가 초대박을 터뜨렸음에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성지순례하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었다. 신칸센마저도 사가현 변두리에 있다. 야마구치 요시노리 지사가 "솔직히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고 실토했을 정도. # 코로나19가 끝난 이후부터 다시 한국인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만에서도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오는 편.
일본 내에서 단순히 규슈의 타 지역으로 갈 때 거쳐가는 경유지 혹은 상당한 노잼 지역으로 여기다보니, 국내 관광객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다고 한다.박가네의 영상[12] 그래서인지 한국인 관광객을 상당히 반긴다고 한다. 사가현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높은 관광지인 이유는 우선 한국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 소도시 중에서 에히메현 마츠야마시(松山市)와 함께 한국관광객 유치에 매우 적극적인 일본의 두 소도시이다.
꽤 큰 행사로 매년 11월에 열리는 열기구 축제인 국제 사가 벌룬 페스티벌이 있다. 이때는 행사장 바로 근처에 있는 벌룬 사가 역이라는 임시승강장까지 임시열차편이 운행된다. 제주 올레를 본 딴 타케오 올레가 이 지역 타케오 온센역에 있다. 제주 올레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탄생했는데, 그 덕분인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그외에도 일본식 성도 있으며, 우레시노 온천도 있고, 오오우오 바다 신사를 비롯해 유토쿠이나리 신사라는 큰 신사도 있고 프리미엄 아울렛도 있다. 일본인이 보기에는 다른 지역에 더 상위호환[11]이 있어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갈 필요 없는 지역이란 선입견이 있지만 외국인들이 일본 소도시 관광하기에는 컴팩트하게 일본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가현도 어차피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 본토의 관광객을 교통편도 불편한 (오사카-사가행이 인천-사가행 비행기보다 월등히 비싸다) 사가현에 유치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그나마 가까운 한국관광객에 대한 텃세도 없고 매우 친절한 편이다.
도자기로 유명한 이마리, 아리타 및 1300년의 역사적인 온천휴양지인 우레시노 온천 등의 명승지가 존재한다. 참고로 우레시노에는 히젠유메카이도(肥前夢街道)라고 하는 닌자 마을이 테마파크화 되어 운영 중인 듯 하다. 놀러갈 때 참고해보자. 테마파크의 테마곡
카시마시에서는 갯벌을 관광자원으로 써먹고 있으며, 갯벌 축제인 '카시마 가타림픽(鹿島ガタリンピック)'을 개최하고 있다. 카시마 가타림픽은 보령 머드축제처럼 갯벌을 이용한 다양한 경기가 열린다. 갯벌이 일본에는 흔하지 않을 뿐더러 온 몸에 진흙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일본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로 신청 경쟁도 치열하다.
사가현에도 스키장이 있어 후쿠오카와 나가사키의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 대신 남쪽이라 개장 일수도 적다.
2019년 일본 불매운동 당시 관광업계가 심하게 타격을 받은 현 중 하나다. 도쿄나 오사카에서 거리도 멀고, 교통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자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도 힘들다. 한국인이나 가는 거지 일본인 입장에서는 볼 것 없는 자국 시골을 굳이 비싼 돈 내고 갈 이유가 없다. 한국 역시 관광지가 없는 시골 여행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한국인을 제외한 해외 관광객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8년 4분기 사가현을 배경으로 한 좀비 랜드 사가가 초대박을 터뜨렸음에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성지순례하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었다. 신칸센마저도 사가현 변두리에 있다. 야마구치 요시노리 지사가 "솔직히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고 실토했을 정도. # 코로나19가 끝난 이후부터 다시 한국인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만에서도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오는 편.
일본 내에서 단순히 규슈의 타 지역으로 갈 때 거쳐가는 경유지 혹은 상당한 노잼 지역으로 여기다보니, 국내 관광객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다고 한다.박가네의 영상[12] 그래서인지 한국인 관광객을 상당히 반긴다고 한다. 사가현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높은 관광지인 이유는 우선 한국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 소도시 중에서 에히메현 마츠야마시(松山市)와 함께 한국관광객 유치에 매우 적극적인 일본의 두 소도시이다.
6. 하위 행정구역[편집]
촌은 존재하지 않는다.
6.1. 도시고용권[편집]
7. 정치[편집]
사가현의 국회의원 | ||
선거구 | 정당 | 의원명 |
2028년 개선 | ||
2031년 개선 | ||
야마시타 유헤이 | ||
선거구 | 정당 | 의원명 |
이와타 가즈치카 | ||
후루카와 야스시 | ||
일본 정계에서 상당히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 지역 중 하나로, 참의원 선거에서는 보수왕국이라고 지역 언론에서 말할 정도로 자민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나[13] 중의원 선거에서는 인물론이 상당히 강하게 작용해 자민당과 민주당의 경합 지역이다.[14]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규슈대학이 연구를 하였는데 1구는 현청 소재지인 사가시가 속해 있어 무당파층이 많은 탓에 경합지이고, 現 2구[15]의 경우에는 예전 사가현 제3구 지역의 강력한 보수 지지세가 자민당에 대한 지지라기 보다는 호리 고스케라는 개인을 지지하는 양상이었기에 고스케의 은퇴 이후 출마한 후루카와 야스시 전 사가현지사가 그의 지지세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여 2구 역시 경합지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1구의 하라구치와 2구의 오구시는 같은 입헌민주당 소속이어도 성향이 좀 달랐고,[16] 결국 입민당에 끝까지 남아 중도개혁연합 창당에 참여한 오구시와는 달리 하라구치는 중도개혁연합 합류에 거부 의사를 보이며 입헌과 결별하고 비슷한 리버럴 보수 정당인 감세일본과 손을 잡았다.
8. 출신 인물[편집]
8.1. 실존 인물[편집]
8.2. 가상 인물[편집]
9. 치안[편집]
사가현 경찰청 휘하 사가현 전체의 경찰관의 숫자가 2천 명을 겨우 넘는다. 그나마 현장근무 직원은 1300여 명 수준. 경찰이 적다보니 경찰서 하나가 도시 2개를 맡기도 한다. 사가 현에 경찰이 많을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일본판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사가현 연쇄살인사건[23]이 벌어지면서 일본 열도를 충공깽에 몰아넣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동안 사가현에서 벌어진 미결 사건이 꽤 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10. 사가현이 배경인 작품[편집]
11. 기타[편집]
사가현은 한국에서 관광지 이외에도 다른 의미로도 유명한 곳인데 다름아닌 일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순위를 다퉈왔던[25] 손정의의 출신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친구가 적다의 이웃사촌부원들이 했던 '로맨싱 사가'라는 게임에서 거론된다. 은근히 사가현을 무시하는 경향에 게임 제작자가 나레이션을 빌려 푸념하는 것으로. 그리고 웬일인지 졸개부터 최종 보스까지 개소겡이다. 코다카는 그 개소겡을 무척 좋아했고 맛있게 먹었다면서 죽이지 말자고 애원하지만, 이웃사촌부원들은 매정하게도 죽여버린다.
간사이 지방에 있는 시가현과 많이 혼동된다. 뒤에 '가'짜도 賀[26]로 같아서 많이 혼동된다. 비슷한 사례로 미야기현과 미야자키현이 있다.
나는 친구가 적다의 이웃사촌부원들이 했던 '로맨싱 사가'라는 게임에서 거론된다. 은근히 사가현을 무시하는 경향에 게임 제작자가 나레이션을 빌려 푸념하는 것으로. 그리고 웬일인지 졸개부터 최종 보스까지 개소겡이다. 코다카는 그 개소겡을 무척 좋아했고 맛있게 먹었다면서 죽이지 말자고 애원하지만, 이웃사촌부원들은 매정하게도 죽여버린다.
간사이 지방에 있는 시가현과 많이 혼동된다. 뒤에 '가'짜도 賀[26]로 같아서 많이 혼동된다. 비슷한 사례로 미야기현과 미야자키현이 있다.
12. 둘러보기[편집]
[1] 2026년 5월 1일 기준 추계 인구.[2] 2021년 8월 내각부 확정치#[3] 문장이 아닌 심볼을 상징물로서 사용중인 도쿄도, 니가타현, 가고시마현보다도 문장의 사용 빈도가 낮다.[4] 벳푸, 유후인 등이 이 현 소재.[5]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에도 경상남도 창녕군이 경남인데도 법령에서 정한 대도시권 중 '대구권역'에 버젓히 포함이 되어 있다.[6] 똑같은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동 '권춘섭집앞' 정류장.[7] 대한민국의 충청남도 당진시와 한자가 같으며, 이름의 유래도 같다.[8] 이른바 삿쵸토비(사쓰마, 조슈, 토사, 히젠(사가))[9] 유신십걸(維新の十傑)이라고 불리는 메이지 유신의 최대 공로자 10명 중 유일한 사가 번 출신이다.[10] 이탈리아(伊)의 수도(都)에서 태어난 아이(子)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쓰코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귀국자녀이다.[11] 예를 들어 전통사찰 같은건 교토에 더 큰 기요미즈데라가 있고, 바다 신사는 이츠쿠시마가 더 유명하고, 온천은 일본 전국에 널려있고, 성은 히메지 성 같은델 가지 사가에 올 필요가 없다.[12] 심지어 일본 국내선보다 국제선이 더 많으며(...) 일본 내에서 여행을 한번도 가지 않은 도도부현 순위 중 대략 80%로 1위를 차지하였다.[13] 21회 참원선을 제외하고 전부 자민당에서만 당선자가 나왔다. #[14] 비슷한 지역으로는 야마가타현이 있는데, 이 쪽은 정반대로 중의원 지역구는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우세를 보이지만 참의원 지역구는 국민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우세를 보인다.[15] 2014년에 폐지된 사가현 제3구 전체가 2구에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16] 오구시가 입헌민주당 평균에 가까운 리버럴 의원이라면 하라구치는 현 국민민주당과 가까운 리버럴 보수였기에 성향이 맞지 않음에도 오랜 인연 겸 의리 때문에 잔류했던 셈이다.[17] 잠시 오사카에서 산 적도 있었다.[18] 일명 사가현의 수치. 저 위에 있는 하나와의 노래 사가현에서도 디스했다.[19] 정부의 책임을 지는 현시대 국무위원과 같은 역할[20] 대한민국으로 치면 법무부장관 직. 1885년 내각제 수립 이후 사법대신(司法大臣)으로 개칭되었고, 현재 일본 정부에서는 법무대신과 같다.[21] 출생은 다른 곳이었지만, 초2 이후로 사가현으로 이사와서 자기 노래에서 고향이 사가현이라고 하고 있다.[22] 친동생 하나와 노부유키(塙宣之)도 게닌으로, 츠치야 노부유키(土屋伸之)와 나이츠(ナイツ)라는 만담 콤비로 활동 중이다.[23] 아직도 미결사건이다. 밝혀진 희생자는 7명, 더구나 그중 2명은 집에 있다가 없어졌다. 또한 시체 3구가 한꺼번에 야산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4명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소멸한 상황이다.[24] 기획을 주도한 Cygames의 창업자 와타나베 코이치(渡邊耕一)가 사가 출신이어서 사옥을 사가로 신축이전한 것을 계기로 지역협력과 홍보를 겸해서 만든 작품으로 걸즈 앤 판처와 러브라이브 선샤인과 함께 지역홍보물로 크게 성공한 사례. 사실 기획자는 타케나카 노부히로라는 프로듀서이며 원래는 사가현이 배경이 아니었다. 타케나카가 "좀비 아이돌 애니메이션을 내면 히트합니다." 라고 헛소리를 하길래 와타나베 코이치가 "그러면 내 고향 사가가 배경으로 나오게 기획을 해라."라고 무리한 요구를 해놓고 "이쯤되면 저놈도 포기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타케나카가 정말 그런 기획서를 써왔다고 한다. 그 끈기에 질려버려서 포기하고 네 맘대로 하라고 했더니 히트했다고.[25] 이 순위에서 한동안 손정의가 1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가 몇 년째 줄곧 1위를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연이은 투자 실패 등으로 손정의 본인의 자산이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손정의가 야나이에게 밀린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부터 야나이 혼자가 아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의 자산이 모두 합쳐져 야나이의 것으로 집계되기 시작되어서 그렇다.[26] 하례할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