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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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 日本共産党|Japanese Communist Party | |
정식 명칭 | |
영어: Japanese Communist Party | |
한국어: 일본공산당 | |
약칭 | |
영어: JCP | |
의장[6] | 시이 가즈오 |
위원장[7] | 다무라 도모코 |
고이케 아키라 | |
이념 | |
스펙트럼 | |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 | |
일본민주청년동맹[10] | |
기관지 | 신문 아카하타 |
공식 사이트 |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일본 제국 시대[편집]
2.2. 2차 대전 이후[편집]
3. 이념 및 성향[편집]
3.1. 천황제에 대한 입장[편집]
계급 철폐를 추구하는 공산주의 정당인 특성상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의 군주제(천황제)에 대한 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이다.
다만 구체적인 노선은 시간이 갈수록 온건해졌는데, 제국 시대부터 1955년까지는 폭력 혁명을 통한 천황제 타도 및 일본인민공화국 수립을 추구했으나, 1955년 일본공산당 제6회 전국협의회(6전협) 이후부터는 국민투표를 통한 평화적인 천황제 폐지와 민주공화국 수립을 추구했고, 2000년대부터는 재무장을 추구하는 우익 세력 주도하의 개헌에 맞서기 위해 천황제를 규정한 현행 헌법을 묵인하는 호헌 노선을 채택했다.
다만 구체적인 노선은 시간이 갈수록 온건해졌는데, 제국 시대부터 1955년까지는 폭력 혁명을 통한 천황제 타도 및 일본인민공화국 수립을 추구했으나, 1955년 일본공산당 제6회 전국협의회(6전협) 이후부터는 국민투표를 통한 평화적인 천황제 폐지와 민주공화국 수립을 추구했고, 2000년대부터는 재무장을 추구하는 우익 세력 주도하의 개헌에 맞서기 위해 천황제를 규정한 현행 헌법을 묵인하는 호헌 노선을 채택했다.
3.2. 한국 및 독도 관련[편집]
[1] 발음: にほんきょうさんとう(니혼쿄-산토-).[2] 일본 현지에서 주로 쓰는 약칭들만 서술.[3] 일본어 발음: きょうさんとう(쿄-산토-).
한국 한자음: 공산당.[4] 일본어 발음: きょうさん(쿄-산).
한국 한자음: 공산.[5] 일본어 발음: きょう(쿄-).
한국 한자음: 공.[6] 정식 명칭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의장.
명목상 당수에 해당되는 직위다.[7] 정식 명칭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위원장.
실질적 당수에 해당되는 직위다.[8] 정식 명칭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실질적 당수 역할을 하는 다른 공산당들의 서기장들과 달리, 일본공산당의 서기국장은 일반적인 정당의 사무총장에 가깝다.[9] 지금은 폭력 혁명 노선을 포기하고 온건해져서 단순 좌익 성향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국회 원내정당 중에서는 가장 좌측에 있는 정당이라서 극좌로 분류되기도 한다.[10] 약칭: 일본민청.[11] 대정익찬회의 주류는 극우파였지만 당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거의 모든 정당들을 강제로 합치면서 만들어졌기에 극우와는 거리가 먼 정당들도 흡수되었다.[12] 합법 사회주의 정당들의 계보는 대정익찬회가 존속하던 기간(1940~1945) 동안 끊어졌다가, 1945년 일본사회당 창당으로 부활하긴 했으나, 일본사회당처럼 전후에 새로 생긴 혁신정당까지 무산정당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한국 한자음: 공산당.[4] 일본어 발음: きょうさん(쿄-산).
한국 한자음: 공산.[5] 일본어 발음: きょう(쿄-).
한국 한자음: 공.[6] 정식 명칭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의장.
명목상 당수에 해당되는 직위다.[7] 정식 명칭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위원장.
실질적 당수에 해당되는 직위다.[8] 정식 명칭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실질적 당수 역할을 하는 다른 공산당들의 서기장들과 달리, 일본공산당의 서기국장은 일반적인 정당의 사무총장에 가깝다.[9] 지금은 폭력 혁명 노선을 포기하고 온건해져서 단순 좌익 성향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국회 원내정당 중에서는 가장 좌측에 있는 정당이라서 극좌로 분류되기도 한다.[10] 약칭: 일본민청.[11] 대정익찬회의 주류는 극우파였지만 당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거의 모든 정당들을 강제로 합치면서 만들어졌기에 극우와는 거리가 먼 정당들도 흡수되었다.[12] 합법 사회주의 정당들의 계보는 대정익찬회가 존속하던 기간(1940~1945) 동안 끊어졌다가, 1945년 일본사회당 창당으로 부활하긴 했으나, 일본사회당처럼 전후에 새로 생긴 혁신정당까지 무산정당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