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칭호[편집]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흔히 술탄 또는 황제로 통칭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칭호가 사용되었고, 그 중 1453년부터 1922년까지 사용된 가장 널리 사용된 칭호는 페르시아어로 왕(샤)들의 주인(파드)를 뜻하는 파디샤였다.
- 술탄(Sultan, 1383년 ~ 1453년)
무라트 1세 시대부터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이전까지 주로 사용된 칭호.
이후에도 편의상 오스만 황제(파디샤)들을 술탄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군주가 아닌 황족이나 공신에게도 하사하는 칭호가 되었기에 1453년 이후 오스만 제국에서 술탄은 황제가 독점하는 칭호는 아니었다.
3. 명단[편집]
3.1. 건국 이전: 카이으 부족장[편집]
3.2. 역대 군주(1299 ~ 1922)[편집]
3.2.1. 베이(1299 ~ 1383)[편집]
3.2.2. 술탄(1383 ~ 1453 )[편집]
3.2.3. 파디샤(황제, 1453 ~ 1922)[편집]
대수 | 제호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7) | 1481년 5월 3일 | |||
8 | 1481년 5월 22일 | 1512년 4월 24일 | ||
9 | 1512년 4월 24일 | 1520년 9월 22일 | ||
10 | 1520년 9월 30일 | 1566년 9월 5일 | ||
11 | 1566년 9월 7일 | 1574년 12월 15일 | ||
12 | 1574년 12월 15일 | 1595년 1월 16일 | ||
13 | 1595년 1월 16일 | 1603년 12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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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복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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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
33 | ||||
34 | 1876년 8월 31일 | 1909년 5월 27일 | ||
35 | 1909년 4월 27일 | 1918년 7월 3일 | ||
36 | 1918년 7월 3일 | 1922년 11월 1일 |
3.3. 멸망 이후(1922 ~ 현재)[편집]
3.3.1. 칼리파(1922 ~ 1924)[편집]
3.3.2. 오스만 가문 수장(1922 ~ 현재)[편집]
[1] 중앙아시아에서 카이으 부족을 이끌다가 몽골 제국의 침공을 피해 서아시아로 이주하여 오스만 황실의 시조가 되었다.[2] 바예지트 1세 이을드름(뇌제).
티무르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옥사했다.[3] 바예지트 1세가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 제국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메흐메트 1세를 비롯한 바예지트의 네 아들들이 각자 술탄을 칭하며 내전을 벌였다.[4] 아들 메흐메트 2세에게 양위하며 자진 퇴위했다.[5] 아버지 무라트 2세에게 양위받았으나 2년만에 무라트 2세가 복위하면서 물러났다.[6] 1451년 무라트 2세가 사망하자 복위했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부터 파디샤(황제)를 칭했다.[7] 메흐메트 2세 파티흐(정복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정복한 업적으로 '파티흐(정복자)'라는 별명을 얻었다.[8] 1517년 아바스 칼리파 알 무타와킬 3세로부터 선양받으면서 칼리파 겸임을 시작했고, 후대 황제들도 1922년 제국 멸망 직전까지 계속 칼리파를 겸임했다.[9] 쉴레이만 대제.[10] 실질적으로 황제로서 실권을 행사했던 마지막 오스만 황제.[11] 청년 튀르크당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 황제.
재위 도중 청년 튀르크당 정권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선언했고, 1차 대전 말기에 사망했다.[12] 1918년 1차 대전 종전, 1920년 튀르키예 독립전쟁 발발, 1922년 제국 멸망.[13] 제국 멸망 이후에도 칼리파 지위는 잠깐이나마 유지했지만 결국 폐위된 후 영국령 몰타를 거쳐 이탈리아 산레모로 망명했다.[14]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사망했다.[15]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사망했는데, 당시 파리에서는 자유 프랑스군과 독일 국방군의 전투가 진행 중이었고, 사망 이틀 뒤인 1944년 8월 25일에 디트리히 폰 콜티츠가 이끄는 독일군이 자유 프랑스군에 항복하면서 파리 전체가 해방되었다.[16] 오스만 제국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오스만 가문 수장이자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마지막 오스만 가문 수장.[17] 최초로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에 태어난 오스만 가문 수장.
티무르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옥사했다.[3] 바예지트 1세가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 제국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메흐메트 1세를 비롯한 바예지트의 네 아들들이 각자 술탄을 칭하며 내전을 벌였다.[4] 아들 메흐메트 2세에게 양위하며 자진 퇴위했다.[5] 아버지 무라트 2세에게 양위받았으나 2년만에 무라트 2세가 복위하면서 물러났다.[6] 1451년 무라트 2세가 사망하자 복위했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부터 파디샤(황제)를 칭했다.[7] 메흐메트 2세 파티흐(정복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정복한 업적으로 '파티흐(정복자)'라는 별명을 얻었다.[8] 1517년 아바스 칼리파 알 무타와킬 3세로부터 선양받으면서 칼리파 겸임을 시작했고, 후대 황제들도 1922년 제국 멸망 직전까지 계속 칼리파를 겸임했다.[9] 쉴레이만 대제.[10] 실질적으로 황제로서 실권을 행사했던 마지막 오스만 황제.[11] 청년 튀르크당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 황제.
재위 도중 청년 튀르크당 정권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선언했고, 1차 대전 말기에 사망했다.[12] 1918년 1차 대전 종전, 1920년 튀르키예 독립전쟁 발발, 1922년 제국 멸망.[13] 제국 멸망 이후에도 칼리파 지위는 잠깐이나마 유지했지만 결국 폐위된 후 영국령 몰타를 거쳐 이탈리아 산레모로 망명했다.[14]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사망했다.[15]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사망했는데, 당시 파리에서는 자유 프랑스군과 독일 국방군의 전투가 진행 중이었고, 사망 이틀 뒤인 1944년 8월 25일에 디트리히 폰 콜티츠가 이끄는 독일군이 자유 프랑스군에 항복하면서 파리 전체가 해방되었다.[16] 오스만 제국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오스만 가문 수장이자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마지막 오스만 가문 수장.[17] 최초로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에 태어난 오스만 가문 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