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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808년 예니체리의 반란과 혼란 속에서 사촌 형 무스타파 4세를 몰아내고 즉위했다. 즉위 초기에는 보수적인 예니체리와 지방 세력인 아얀(Ayan)의 눈치를 보며 힘을 갉아먹었으나, 1826년 이른바 '행운의 사건'(Vaka-i Hayriye)을 통해 예니체리 군단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며 개혁의 물꼬를 텄다. 이후 유럽식 군복과 페스(Fez)를 도입하고 의무 교육, 행정 조직 개편 등 광범위한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1839년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비보를 접하기 직전, 폐결핵으로 이스탄불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