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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셀림 2세(Selim II, 1524년 5월 28일 ~ 1574년 12월 15일)
오스만 제국의 제11대 술탄.
위대한 정복 군주였던 쉴레이만 1세와 휴렘 술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부왕의 뒤를 이어 제국을 통치했다. 직접 전장을 누비던 선대 술탄들과 달리 궁전에 머물며 정사를 대리인에게 맡기는 스타일을 고수했기에 '금발왕(Sarı Selim)' 혹은 '주정뱅이(Sarhoş Selim)'라는 상반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치세는 제국의 행정 시스템이 술탄 개인의 역량보다는 관료 기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과도기적 시기로 평가받는다.
오스만 제국의 제11대 술탄.
위대한 정복 군주였던 쉴레이만 1세와 휴렘 술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부왕의 뒤를 이어 제국을 통치했다. 직접 전장을 누비던 선대 술탄들과 달리 궁전에 머물며 정사를 대리인에게 맡기는 스타일을 고수했기에 '금발왕(Sarı Selim)' 혹은 '주정뱅이(Sarhoş Selim)'라는 상반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치세는 제국의 행정 시스템이 술탄 개인의 역량보다는 관료 기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과도기적 시기로 평가받는다.
2. 생애[편집]
1524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태어난 셀림 2세는 형제들 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유일한 후계자로 살아남아 1566년 즉위했다. 군사적 재능은 부족했으나, 유능한 대재상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를 중용하여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그의 치세 중 가장 큰 사건은 1571년 발생한 레판토 해전으로, 기독교 연합군에게 패배하며 '무적함대'의 명성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함대를 재건하여 키프로스와 튜니스를 완전히 장악하는 등 지중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했다. 1574년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사망했으며, 이후 아들 무라트 3세가 뒤를 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