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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역사 | 고대 |
1. 개요[편집]
2. 국호[편집]
'후삼국'이나 '통일신라'의 예와 같이, 본래 국호는 '고(古)'자가 없이 원래는 조선(朝鮮)이다. 따라서 1392년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우기 이전 시대의 기록에서 혹 '조선'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은 고조선이거나, 또는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평양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거나, 조선 민족, 곧 '한민족'과 '만주, 한반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17] 고려시대의 기록인《삼국유사》에서는 기자조선과 단군조선을 '고조선'으로, 위만조선을 '조선'으로 일컬었다. 때문에 더 이전에 존재한 국가에 '고'(古)를 붙이는 것은 잘못된 용법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삼국유사》의 사례처럼 이러한 용법의 유래 자체는 제법 깊다. 현대 한국 학계에서는 기자조선설을 부정하고, 위만조선을 기존의 고조선과 연속된 실체로 파악하려는 취지와, 14세기 말에 옛 조선의 국명을 가져다가 새로운 나라의 이름으로 삼았던 이성계의 조선 왕조와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조선을 쓰는 용법이 정착되었다.
3. 강역[편집]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 요서에서 출발하여 영토를 넓혔다 .
4. 논란[편집]
4.1. 고조선은 누구 역사??[편집]
5. 역사[편집]
[1] 본래 국호는 '朝鮮'(조선)이지만 14세기에 건국한 동명의 조선(대조선국)과 구분하기 위하여 '옛 고'(古)자를 붙인 것이다. 참고로 이씨 조선의 국명이 '조선'인 이유 역시 옛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상고한어 발음은 벡스터-사가르의 재구에 따르면 t<r>aw [s][a]r, 정장상팡의 재구에 따르면 ʔr'ew sen[2] 고조선의 동북쪽에 있던 부여(포자연 문화)의 전신인 서단산 문화는 요령식 비파형 동검 문화권 안에서 속했는데, 이들은 요동 지역의 미송리형 토기와 유사한 서단산형 토기를 사용했다. 서단산 문화는 지역적인 특색을 띠며 성장했는데, 이후 접변하고 있었던 초원계 문화가 혼입되어 이질적으로 변모했다. 참고로 해당 지도는 전성기인 기원전 5~4세기경의 강역을 나타낸 것으로 당대 국가치고는 꽤 큰 영역을 확보했지만 연맹왕국 특성상 상당수의 영역은 간접통치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청천강 남쪽의 경우, 고조선-연 전쟁 이전에는 고조선의 영역이 아니었다. 지도에는 평양 남부의 진번국 지역까지 고조선의 영역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진번이 고조선의 영토가 된 것은 위만조선대의 일이다.[3] 건국년도는 불명이며, 대략적인 추정도 견해가 갈린다.《동국통감》의 서술을 역법으로 환산하여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해당 서술은 정통성을 강조하는 목적의 신화적 묘사에 가깝다. 《동국통감》부터가 기원후 1430년대에 발간되어 교차검증은 아예 불가능하고, 단군조선 시대의 다른 기록이 없다. 기원전 2000년대 부근으로 잡는 움직임은 이미 고려시대때에도 있었으나 이에 대해 문헌학적인 논란이 적지 않다. 단군기원 참조.[4] 해당 시기의 관련 문화로 여겨지는 청동기 문화인 하가점 하층 문화(기원전 22세기경부터 발달)와의 연관성은 현재 연구중이며, 아직까지는 고고학적으로 유의미한 성과가 부족하다. 실증적으로는 기원전 9세기경의 십이대영자 문화를 고조선의 연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시기를 국가의 초기 형태를 다지기 시작한 연대로 보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유물은 2016년 11월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장신구 유물이며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13세기 유물로 판명되었다.[5] 기존 <단군 신화>에서는 이를 두고 아사달과 장당경을 평양, 오녀산성, 구월산 등으로 비정되곤 했지만 현재 고고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고조선은 요서에서 출발하여 요하, 평양 순으로 중심지를 옮겼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르면 아사달은 차오양, 장당경은 선양에 위치한 것으로 비정된다.[6] 고조선의 군주가 단군이라고 불렸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단군 신화>를 통해 유추한다. 그러나 이는 이병도를 위시한 현대 사학 극초기의 연구자들이 언급한 정도이며, 21세기 연구에서는 <단군 신화>가 청동기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는 연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7] <단군 신화>에도 언급되는 명칭이지만 왕검성(왕험성)이라는 지명에서도 추정할 수 있다.[8] 조선의 지도자를 중국에서는 '후'로 불렀다고 한다. 물론 주나라 왕실이 직접적으로 봉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전국시대 각국의 지배자인 제후들과 동등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왕(王)의 경우는 중국의 전국칠웅에 속하던 연나라를 따라 고조선의 군주(조선후)가 '후'(侯)에서 '왕'(王)을 칭했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연나라가 칭왕한 것이 기원전 323년 연역왕 대이므로 그 근처의 어느 시점 이전에는 후(侯)로, 그 이후에는 왕(王)으로 불린 것이 된다.[9] 부왕, 준왕의 경우, 그 성씨가 《한씨 족보》 등을 통해 전해지나, 실제로 해당 시대에 성씨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당시의 사서나 금석문 등의 증거는 없다. 고구려 초기까지도 당시 중국에서 사용되던 성의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준왕을 축출하고 왕이 된 위만조차도, 처음으로 언급되는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만'(滿)이라는 이름으로만 기록(朝鮮王滿, 故燕人也.)되어 있으며,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으로 인용한 《위략》이라는 역사서에서 최초로 '위만'(衛滿)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실재여부논란] 실재 여부에 논란이 있다.[11] 춘추전국시대와 진•한교체기, 위만조선 시기에 다수의 피난민이 유입되었고, 춘추전국시대의 양식과 비슷한 청동기가 발굴되었다.[12] 현대 한국 사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단군조선 다음은 위만조선으로 본다. 다만 정확하게 따지면 단군조선도 실체가 부정확하다. 단군은 신화 속 인물이지 실질적으로 입증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실증적 관점에서 보자면 토착계 조선 왕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13] 연소왕이 진개를 보내 조선을 침공한다.[14] 경기도 북부와 강화도 일대.[15]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일대.[16]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17] 약간은 다른 어휘로 신라의 수도 금성의 숲에서 유래하여 나중에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게 된 '계림' 등이 있다.[18]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