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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유럽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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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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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nopad> [[파일:아우구스투스.webp|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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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 초대 [[로마 황제]]이자 '''[[유럽]] 최초의 황제'''[br]'''[[아우구스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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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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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clearf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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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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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유럽식 [[황제]] 칭호는 [[로마 황제]]에서 비롯되었으며, 관례상 황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지만 그 구체적인 정의와 존재 양상을 보면 [[황제/한자문화권|한자문화권의 황제]] 칭호와 무작정 일대일 대응시키긴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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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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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고대 로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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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7
| 12 | ==== [[로마 제국]]의 [[로마 황제|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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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include(틀: 상세 내용, 문서명=로마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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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14 | [[유럽]]의 [[황제]] 칭호는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황제/한자문화권|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와 달리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여 공화정 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독재]]를 구축하려는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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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16 | 그래서 [[로마 제국]]의 초기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고대 로마인|시민]]의 대표인 [[프린켑스]](Princeps)가 다스리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주]]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세습까지 가능한 [[군주제|제정]]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이른바 [[원수정]]([[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체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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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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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치제|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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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22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밀라노 칙령|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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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23 | ==== 번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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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 3세기의 자칭 독립 제국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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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3
| 25 |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의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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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1
| 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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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1
| 27 | 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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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1
| 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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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3
| 29 |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고대 로마인|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Carausius)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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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2
| 30 | ===== [[로마 제국|로마]]와 [[이란]] [[왕중왕]]의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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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31 | 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 왕국|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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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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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3
| 33 | 두 제국은 로마와 파르티아가 처음 충돌한 기원전 1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에 의해 멸망하는 기원후 7세기까지 [[로마-페르시아 전쟁|700여년에 걸쳐 중근동 세계의 패권을 겨룬]] 숙명의 [[라이벌]]이었으나, 서로의 황제위에 대한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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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2
| 35 | 이는 양국 황제 칭호의 기원이 달랐기 때문인데[* 로마 황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면서 형성되었고, 이란의 왕중왕은 아시리아의 군주가 일반적인 왕(샤르)보다 높은 왕중왕(샤르 샤라니)를 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로마 황제나 이란 왕중왕이나 둘다 한자어 황제, [[영어]] Emperor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대인들은 각자 상대국의 지배자가 쓰는 별개의 칭호로 인식했기에, 로마인들이나 이란인들이나 서로의 황제 칭호가 자국 황제 칭호의 정통성과 충돌한다는 의식은 갖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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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
| 36 | === 중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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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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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국의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은 굳건하게 유일한 황제국으로서 존재했고, 서방 국가들도 그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좋든 싫든 유럽에서 황제는 곧 [[로마 황제]]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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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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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40 | 따라서 동로마에 맞서 황제를 칭하려는 이민족 국가들도 좋든 싫든 로마의 정통성을 가져다가 황제를 칭해야만 했고, 처음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가 800년에 [[로마인의 황제]]를 칭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황제를 칭한 이민족 국가들은 국호에 로마를 집어넣거나[* [[신성 로마 제국]], [[로마니아 제국]]([[라틴 제국]]).], 로마와 관련된 명칭이 들어간 황제 칭호[*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등]를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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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 서방 세계의 부가적 요건: [[교회]]의 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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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는 이와 별도로 교회의 인정, 정확히는 [[교황]]의 인정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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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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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고대 로마]]에서 직접 이어지는 제국이라 굳이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로마 제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방 가톨릭 세계의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은 태생부터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에게 [[대관식|관을 씌워주며]] 시작되었기에 교회의 인정이 곧 제국의 존립 그 자체를 보증해주는 필수요소였으며, [[신성 로마 황제]]들은 황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교황으로부터 대관받기 이전까지는 왕을 칭해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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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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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46 |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이 여러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가 되어 유명무실해지는 계기가 된 건 가톨릭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개신교]]가 제국 북부를 휩쓴 16~17세기 종교 개혁이었으니, 말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가톨릭 교회의 인정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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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 번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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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7
| 48 | ===== 중세 [[스페인]]의 자칭 황제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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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레콩키스타가 진행 중이던 중세 스페인에서는 여러 [[가톨릭]] [[왕국]]의 [[군주]]들이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를 칭했으나, 이들은 억지로라도 [[로마 제국|로마]]와의 연관성을 찾아서 칭제한 나라들과 달리 [[로마 제국 계승론|로마 제위 계승]]과 무관하게 칭제한 것이기에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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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50 | ===== 중세 유럽인들과 다른 문화권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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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중세 유럽인들은 위와 같이 제위 계승에 있어서 [[로마 제국]]과 연결되는 정통성을 극도로 중시했으나, 이슬람 세계의 칼리파, 유라시아 대초원의 카간(대칸) 등 다른 문화권의 황제급 칭호들에 대해서는 그냥 '아,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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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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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이는 중세 유럽의 봉건적 관습에서 작위는 토지와 직결되기에 유럽에는 [[로마 황제]]만이 존재할 수 있어도 다른 대륙에는 다른 황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대 로마인]]들이 이란 [[왕중왕]]에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견해, 즉 '''기원이 다른 칭호면 로마 황제와 무관한 별개의 칭호'''라는 인식이 더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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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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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그래서 아예 다른 대륙에 있던 제국들은 물론이고 로마의 속주였던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진 코르도바 칼리파국도 [[이슬람]]이라는 종교 때문에 이교도라고 욕을 먹을 지언정, 로마의 정통성과 연계해서 물고 늘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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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 근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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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65
| 57 | ==== 서방: [[신성 로마 제국]]의 [[선거군주제|선출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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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2
| 58 | 15세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로 선출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교황]]이 집전하는 [[대관식]] 이전까지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하던 관례를 깨고 선출 직후에 바로 황제를 칭했는데, 본거지인 [[오스트리아]] 외에도 저지대 국가(지금의 베네룩스)를 비롯한 여러 영지를 획득하며 기세를 올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세에 눌린 교황이 마지못해 이를 인정하여, 교황 집전 대관식 없이도 황제를 칭할 수 있게 되었고, 아예 [[신성 로마 황제]]의 공식 칭호가 '''선출된 로마 황제'''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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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
| 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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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60 | 막시밀리안 1세 사후에 선출된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대관받기는 했으나, 이는 황제로 즉위하고 수십년이 지난 1527년에 교황의 도시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교황에 대한 황제권의 우위를 확정지은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였으므로, 이때의 대관식은 오히려 교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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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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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카를 5세 이후의 황제들은 위와 같은 형식적인 대관식마저 치르지 않고 선거 직후에 바로 황제가 되었으며, 이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지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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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 동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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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8
| 64 | ===== [[오스만 제국]]의 카이세리 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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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카이세리 룸)을 칭하고, 동로마의 국교였던 [[정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정교도 신민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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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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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이와 별도로 [[오스만 제국/군주|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어]]로 '[[왕]]([[샤]])들의 주인(파드)'를 뜻하는 중동식 황제 칭호인 [[오스만 파디샤|파디샤]] 역시 사용하고, 1517년부터는 [[이슬람]] 세계의 수장인 [[칼리파]] 칭호 역시 [[카이로]]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강탈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중근동]]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디샤이자 칼리파로서,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는 로마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두 거대 종교권에 걸친 제국을 유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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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0
| 68 | ===== [[전러시아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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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8
| 6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전러시아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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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70 |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칭했으며, [[이반 4세]] 시대부터는 공식 국호 역시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루스 차르국]]으로 변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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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7
| 7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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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72 | 루스 차르국은 [[유럽]]의 주류 국가들과 이질적인 동방 국가인데다 칭호 역시 유럽의 국제어인 [[라틴어]]가 아닌 슬라브어 칭호인 차르고, 국력도 주변국들[* [[오스만 제국|오스만]],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 국제 사회에서 [[제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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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7
| 7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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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74 |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개혁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대북방전쟁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가면서 열강을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1721년에 기존의 차르 칭호 대신 서구식 칭호인 '''[[전러시아의 황제|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황제)]]'''를 사용하며 명실상부한 [[황제국]]인 [[러시아 제국]]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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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75 | ==== 번외: 근세 유럽인들과 다른 문화권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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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4
| 76 |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어 유럽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유럽인들이 존재를 인식하는 다른 문화권의 황제들도 늘어났고, 유럽인들은 그들의 존재 역시 해당 문화권 내에서는 황제급 위상을 가진다고 인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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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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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78 |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유럽]] [[기독교]] 제국들과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 칭호는 인정받지 못해도 이슬람 세계의 황제급 칭호인 [[파디샤]](왕들의 주인)과 [[칼리파]]는 인정받았고, 그 라이벌인 이란계 제국[*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왕중왕]](샤한샤),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제국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의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와 머나먼 동방의 거대 제국인 명청시대 [[중화제국|중국]]의 [[천자]], [[인도]] [[무굴 제국]]의 파디샤 등도 해당 문화권을 대표하는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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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7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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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80 | 그러나 오늘날 제국이라 불리는 모든 문화권 황제국들이 이러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는데, [[대항해시대]] 초기에 콩키스타도르에게 무너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그냥 힘 좀 쓰는 [[왕국]]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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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 81 | === 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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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6
| 82 | ==== [[나폴레옹]]의 칭제와 19세기의 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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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7
| 83 | 1804년 나폴레옹이 [[교황]]을 [[파리(프랑스)|파리]]로 끌고 와서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면서 유럽의 황제위 계승론에도 변화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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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8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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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2
| 85 | 우선 [[신성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하는 [[프랑스 제1제국|별개의 가톨릭 제국]]을 다름아닌 교황이 [[대관식]]을 집전하여[* 단, 나폴레옹은 교황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관을 머리에 썼다.] 인정함으로써 [[가톨릭]] 세계에는 하나의 제국만이 존재한다는 중세적 관념이 붕괴되었고, 신성 로마 황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오스트리아 황제]] 칭호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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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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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8
| 87 | 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 - 위그 카페 - 나폴레옹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억지로나마 로마 계승을 표방하긴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 본인이었으니 [[로마 제국 계승론]]에 입각한 황제위 계승 논리가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칭제에 필요한 명분과 대내외적 여건이 크게 완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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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8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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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5
| 89 | 그리고 1871년에 이르러선 로마 계승과 무관해보였던 [[개신교]] 국가 [[프로이센 왕국]]마저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독일 제국]][* 이후에도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제국의 구성국으로서 존속했다.]을 선포하고 [[독일 황제|황제]]를 칭하며 이와 같은 칭제 릴레이에 동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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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90 | ==== 다른 문화권을 이용한 편법 칭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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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7
| 91 | 19~20세기에는 기존의 유럽 황제국들과 달리 자국 본토에서는 계속 [[왕]]을 칭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하는 동군연합을 통해 황제가 되는 신박한 편법마저 등장했는데, 이는 다른 문화권에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기에 가능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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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9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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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93 | 우선 [[영국]]은 1857년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폐위시키며 자신들이 없애버렸던 '[[인도 황제]]' 칭호를 20여년만인 1876년에 부활시키는 꼼수를 두며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은 1936년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점령]]한 후 [[이탈리아 국왕|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왕중왕|에티오피아 황제위]]를 바쳤다.[* [[로마 제국]]의 본토였던 이탈리아 반도를 보유한 왕국이 직접 제국을 칭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한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국내외 정세는 쉽게 자국을 황제국으로 격상시킬 여력이 없었다. 우선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고, 1870년에는 로마를 병합하긴 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교황]]을 압박하여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여력이 없었으며, [[교황청]]과의 관계도 험악했다. 또한 입헌군주제라 군주의 입맛대로 칭호 격상 및 국호 변경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일당독재 정권을 구축하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교황청과의 관계도 개선한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기에는 이전에 비해 칭제 난이도가 내려갔지만, 그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탈리아 제국 선포를 시도하진 않았다. 정작 꼼수를 쓰면서 황제 칭호를 가져온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합병]]이 단순 칭제보다 더 큰 반발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한 게 함정이자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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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5
| 9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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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4
| 95 | 한편 [[아메리카]]에서는 유럽 식민제국에서 독립한 신생국들이 유럽식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아이티 제국]][* [[근대]] 아메리카에서 [[미국]] 다음으로 독립을 달성했으며,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인의 황제|황제]]를 칭하자 아이티 독립군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은 자국이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와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황제 자크 1세로 즉위하며 [[아이티 제1제국]]을 수립했다.][* [[아이티 제2제국]]은 [[아이티 제1공화국|아이티 공화국]] 제7대 대통령이었던 포스탱 엘리 술루크가 황제 포스탱 1세로 즉위하여 다스렸다.], [[멕시코 제국]][* 독립군 지도자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멕시코 황제]] 아구스틴 1세를 칭하며 [[멕시코 제1제국]]을 수립했다.][* [[멕시코 제2제국]]은 [[프랑스 제2제국]]의 괴뢰국이었다.], [[브라질 제국]][* 제국을 선포한 주체가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왕세자 페드루였지만, 브라질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본국에 반기를 들고 [[브라질 황제]] 페드루 1세로 즉위했으며, 부왕 주앙 6세의 [[포르투갈 국왕|포르투갈 왕위]]를 일시적으로 승계하기도 했으나 딸 마리아 2세에게 포르투갈 왕위를 넘겨서 포르투갈 왕국과 브라질 제국의 동군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등이 수립되었는데, 이들은 신대륙에 위치했던만큼 [[로마 제국 계승론|로마 계승]]과는 아예 무관했고 기존의 현지 제국을 계승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런 칭호도 없는 빈 땅에 새로운 황제 칭호를 창조해내는 것도 칭호와 영지가 직결된다는 관점에 따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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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9
| 96 | ==== 20세기: 황제국의 종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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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2
| 97 |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로마 계승을 주장하며 황제를 칭한 제국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며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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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4
| 99 | 우선 [[러시아 제국]]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가장 먼저 붕괴되었고, 1918년에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제가 퇴위하고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폐지되었으며, 그나마 [[오스만 제국]]이 패전 이후에도 제정을 유지하며 버텼으나 연합국에게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실권을 장악한 전쟁영웅 [[무스타파 케말]]이 1922년에 마지막 [[오스만 황제|황제]] 메흐메트 6세를 폐위시키며 유럽에서 로마 계승을 표방하며 칭제한 국가들은 모두 멸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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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6
| 101 | 그리고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가 1936년부터 1941년까지 겸임하던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황제위]]를 [[영국]]에게 패하여 토해내고, 그 영국도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승인하며 [[인도 황제|인도 황제위]] 겸임을 포기함으로써, 동군연합이라는 편법으로나마 제위를 유지하던 나라들마저 사라지고 유럽에는 더이상 황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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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
| 102 | == 유럽 문화권의 황제국 및 칭호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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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4
| 103 | * [[로마 제국]](BC 27 ~ AD 1453): [[로마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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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 [[서로마 제국]](395 ~ 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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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 [[동로마 제국]](395 ~ 1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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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 [[니케아 제국]](1204 ~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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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42
| 107 | * [[트라페준타 제국]](1204 ~ 1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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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44
| 108 | * [[테살로니키 제국]](1224 ~ 1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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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
| 109 | * 3세기 로마 제국의 지방정권[* 모두 로마계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이 아닌 독자적인 제국을 선포했다가 진압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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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0
| 110 | * [[갈리아 제국]]: 갈리아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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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 [[팔미라 제국]]: 팔미라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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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7
| 112 | * [[브리타니아 제국]]: [[브리타니아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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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 113 | * 서로마 계승 주장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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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0
| 114 | * [[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800[*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카롤루스 제국 성립).]/962[* 오토 대제의 대관식] ~ 1806): [[신성 로마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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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0
| 115 | * [[프랑스 제국]]: [[프랑스인의 황제]][* 그냥 [[프랑스 황제]]라 의역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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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7
| 116 | * [[프랑스 제1제국]](1804 ~ 1814, 1815[* 백일천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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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8
| 117 | * [[프랑스 제2제국]](1852 ~ 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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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5
| 118 | * [[오스트리아 제국]](1804 ~1867)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 ~1918): [[오스트리아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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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6
| 119 | * [[독일 제국]](1871~ 1918): [[독일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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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 120 | * 동로마 계승 주장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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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9
| 121 | * [[불가리아 제국]]: [[불가리아 차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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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7
| 122 | * [[불가리아 제1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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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8
| 123 | * [[불가리아 제2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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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4
| 124 | * [[라틴 제국]](1204 ~1261): [[라틴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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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5
| 125 | * [[세르비아 제국]]: [[세르비아 차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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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5
| 126 | * [[오스만 제국]](1453[*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메흐메트 2세의 칭제.] ~ 1922): 카이세리 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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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 * [[루스 차르국]]([[러시아 차르국]]): 루스 차르(러시아 차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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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1
| 128 | * [[러시아 제국]](1721 ~1917[* 러시아 혁명]): [[전러시아의 황제]][* 그냥 [[러시아 황제]]라 줄여부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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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 129 |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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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4
| 130 | * [[중세]] [[스페인]]: 전히스파니아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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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5
| 131 | * [[아이티 제국]]: 아이티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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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3
| 132 | * [[아이티 제1제국]](1804 ~1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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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4
| 133 | * [[아이티 제2제국]](1849 ~ 1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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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2
| 134 | * [[멕시코 제국]]: [[멕시코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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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26
| 135 | * [[멕시코 제1제국]](1821 ~ 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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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2
| 136 | * [[멕시코 제2제국]](1864 ~ 1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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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9
| 137 | * [[브라질 제국]](1822 ~ 1889): [[브라질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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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7
| 138 | * [[영국령 인도 제국]](1877[* [[빅토리아 여왕]]의 인도 여제 즉위. 영국 정부의 인도 직할 통치 자체는 1857년에 이미 시작되었다.] ~ 1947[* 인도 독립법 제정 및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인도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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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2
| 139 | *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 제국(1936 ~ 1941)[*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의 일부였다.]: [[왕중왕#s-2.3|에티오피아 황제]][* 이탈리아 왕국군이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에서 축출된 이후 원래 주인인 에티오피아 솔로몬 왕조가 되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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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8
| 140 | ==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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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1
| 141 | * [[유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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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8
| 142 | * [[로마 제국 계승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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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6
| 143 | * [[동로마 제국/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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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8
| 144 | * [[로마인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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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 [[두 황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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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 * [[제3의 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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