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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4 | 유럽식 [[황제]] 칭호는 [[로마 황제]]에서 비롯되었으며, 관례상 황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지만 그 구체적인 정의와 존재 양상을 보면 한자문화권의 황제 칭호와 무작정 일대일 대응시키긴 힘들다. |
| 5 | 5 | == 역사 == |
| 6 | 6 | === [[고대 로마]] === |
| 7 | ==== [[로마 제국]]의 황제 ==== | |
| 7 | 8 | [include(틀: 상세 내용, 문서명=로마 황제)] |
| 8 | 9 | 유럽의 황제 칭호는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와 달리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여 공화정 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독재를 구축하려는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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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15 |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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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17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
| 18 | ==== 번외: 3세기의 자칭 독립 제국들 ==== | |
| 19 |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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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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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 |
| 17 | 24 | === 중세 === |
| 18 | 25 | ====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 ==== |
| 19 | 26 |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국의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은 굳건하게 유일한 황제국으로서 존재했고, 서방 국가들도 그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좋든 싫든 유럽에서 황제는 곧 [[로마 황제]]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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