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43 vs r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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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57 | ==== 서방: [[신성 로마 제국]]의 [[선거군주제|선출 황제]] ==== |
| 58 | 58 | 15세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로 선출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교황]]이 집전하는 [[대관식]] 이전까지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하던 관례를 깨고 선출 직후에 바로 황제를 칭했는데, 본거지인 [[오스트리아]] 외에도 저지대 국가(지금의 베네룩스)를 비롯한 여러 영지를 획득하며 기세를 올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세에 눌린 교황이 마지못해 이를 인정하여, 교황 집전 대관식 없이도 황제를 칭할 수 있게 되었고, 아예 [[신성 로마 황제]]의 공식 칭호가 '''선출된 로마 황제'''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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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막시밀리안 1세 사후에 선출된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대관받기는 했으나, 이는 황제로 즉위하고 수십년이 지난 1527년에 교황의 도시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교황에 대한 황제권의 우위를 확정지은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였으므로, 이때의 대관식은 오히려 교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했다. | |
| 60 | 막시밀리안 1세 사후에 선출된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대관받기는 했으나, 이는 황제로 즉위하고 수십년이 지난 1527년에 교황의 도시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교황에 대한 황제권의 우위를 확정지은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였으므로, 이때의 대관식은 오히려 교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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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62 | 카를 5세 이후의 황제들은 위와 같은 형식적인 대관식마저 치르지 않고 선거 직후에 바로 황제가 되었으며, 이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지속되었다. |
| 63 | 63 | ==== 동방 ==== |
| 64 | 64 | ===== [[오스만 제국]]의 카이세리 룸 ===== |
| 65 | 65 |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카이세리 룸)을 칭하고, 동로마의 국교였던 [[정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정교도 신민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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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이와 별도로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어로 '왕들의 주인' | |
| 67 | 이와 별도로 [[오스만 제국/군주|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어]]로 '[[왕]]([[샤]])들의 주인(파드)'를 뜻하는 중동식 황제 칭호인 [[오스만 파디샤|파디샤]] 역시 사용하고, 1517년부터는 [[이슬람]] 세계의 수장인 [[칼리파]] 칭호 역시 [[카이로]]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강탈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중근동]]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디샤이자 칼리파로서,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는 로마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두 거대 종교권에 걸친 제국을 유지했다. | |
| 68 | 68 | ===== [[전러시아의 황제]] ===== |
| 69 | 6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전러시아의 황제)] |
| 70 |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칭했으며, 이반 4세 시대부터는 공식 국호 역시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루스 차르국]]으로 변경했다. | |
| 70 |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칭했으며, [[이반 4세]] 시대부터는 공식 국호 역시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루스 차르국]]으로 변경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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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루스 차르국은 [[유럽]]의 주류 국가들과 이질적인 동방 국가인데다 칭호 역시 유럽의 국제어인 [[라틴어]]가 아닌 슬라브어 칭호인 차르고, 국력도 주변국들[* [[오스만 제국|오스만]],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 국제 사회에서 [[제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
| 72 | 루스 차르국은 [[유럽]]의 주류 국가들과 이질적인 동방 국가인데다 칭호 역시 유럽의 국제어인 [[라틴어]]가 아닌 슬라브어 칭호인 차르고, 국력도 주변국들[* [[오스만 제국|오스만]],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 국제 사회에서 [[제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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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개혁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대북방전쟁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가면서 열강을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1721년에 기존의 차르 칭호 대신 서구식 칭호인 '''[[전러시아의 황제|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황제)]]'''를 사용하며 명실상부한 [[황제국]]인 [[러시아 제국]]이 되었다. | |
| 74 |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개혁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대북방전쟁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가면서 열강을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1721년에 기존의 차르 칭호 대신 서구식 칭호인 '''[[전러시아의 황제|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황제)]]'''를 사용하며 명실상부한 [[황제국]]인 [[러시아 제국]]이 되었다. | |
| 75 | 75 | ==== 번외: 근세 유럽인들과 다른 문화권의 황제 ==== |
| 76 | 76 |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어 유럽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유럽인들이 존재를 인식하는 다른 문화권의 황제들도 늘어났고, 유럽인들은 그들의 존재 역시 해당 문화권 내에서는 황제급 위상을 가진다고 인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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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유럽 기독교 제국들과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 칭호는 인정받지 못해도 이슬람 세계의 황제급 칭호인 파디샤(왕들의 주인)과 [[칼리파]]는 인정받았고, 그 라이벌인 이란계 제국[*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왕중왕]](샤한샤),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제국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의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와 머나먼 동방의 거대 제국인 명청시대 [[중화제국|중국]]의 [[천자]], [[인도]] [[무굴 제국]]의 파디샤 등도 해당 문화권을 대표하는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 |
| 78 |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유럽]] [[기독교]] 제국들과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 칭호는 인정받지 못해도 이슬람 세계의 황제급 칭호인 [[파디샤]](왕들의 주인)과 [[칼리파]]는 인정받았고, 그 라이벌인 이란계 제국[*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왕중왕]](샤한샤),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제국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의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와 머나먼 동방의 거대 제국인 명청시대 [[중화제국|중국]]의 [[천자]], [[인도]] [[무굴 제국]]의 파디샤 등도 해당 문화권을 대표하는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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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그러나 오늘날 제국이라 불리는 모든 문화권 황제국들이 이러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는데, 대항해시대 초기에 콩키스타도르에게 무너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그냥 힘 좀 쓰는 왕국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 |
| 80 | 그러나 오늘날 제국이라 불리는 모든 문화권 황제국들이 이러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는데, [[대항해시대]] 초기에 콩키스타도르에게 무너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그냥 힘 좀 쓰는 [[왕국]]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 |
| 81 | 81 | === 근대 === |
| 82 | 82 | ==== [[나폴레옹]]의 칭제와 19세기의 변화 ==== |
| 83 | 83 | 1804년 나폴레옹이 [[교황]]을 [[파리(프랑스)|파리]]로 끌고 와서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면서 유럽의 황제위 계승론에도 변화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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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90 | ==== 다른 문화권을 이용한 편법 칭제 ==== |
| 91 | 91 | 19~20세기에는 기존의 유럽 황제국들과 달리 자국 본토에서는 계속 [[왕]]을 칭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하는 동군연합을 통해 황제가 되는 신박한 편법마저 등장했는데, 이는 다른 문화권에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기에 가능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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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우선 [[영국]]은 1857년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폐위시키며 자신들이 없애버렸던 '[[인도 황제]]' 칭호를 20여년만인 1876년에 부활시키는 꼼수를 두며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은 1936년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점령]]한 후 [[이탈리아 국왕|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왕중왕|에티오피아 황제위]]를 바쳤다.[* [[로마 제국]]의 본토였던 이탈리아 반도를 보유한 왕국이 직접 제국을 칭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한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국내외 정세는 쉽게 자국을 황제국으로 격상시킬 여력이 없었다. 우선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고, 1870년에는 로마를 병합하긴 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교황]]을 압박하여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여력이 없었으며, [[교황청]]과의 관계도 험악했다. 또한 입헌군주제라 군주의 입맛대로 칭호 격상 및 국호 변경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일당독재 정권을 구축하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교황청과의 관계도 개선한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기에는 이전에 비해 칭제 난이도가 내려갔지만, 그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탈리아 제국 선포를 시도하진 않았다. 정작 꼼수를 쓰면서 황제 칭호를 가져온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합병]]이 단순 칭제보다 더 큰 반발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한 게 함정이자만(...)] | |
| 93 | 우선 [[영국]]은 1857년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폐위시키며 자신들이 없애버렸던 '[[인도 황제]]' 칭호를 20여년만인 1876년에 부활시키는 꼼수를 두며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은 1936년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점령]]한 후 [[이탈리아 국왕|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왕중왕|에티오피아 황제위]]를 바쳤다.[* [[로마 제국]]의 본토였던 이탈리아 반도를 보유한 왕국이 직접 제국을 칭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한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국내외 정세는 쉽게 자국을 황제국으로 격상시킬 여력이 없었다. 우선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고, 1870년에는 로마를 병합하긴 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교황]]을 압박하여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여력이 없었으며, [[교황청]]과의 관계도 험악했다. 또한 입헌군주제라 군주의 입맛대로 칭호 격상 및 국호 변경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일당독재 정권을 구축하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교황청과의 관계도 개선한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기에는 이전에 비해 칭제 난이도가 내려갔지만, 그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탈리아 제국 선포를 시도하진 않았다. 정작 꼼수를 쓰면서 황제 칭호를 가져온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합병]]이 단순 칭제보다 더 큰 반발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한 게 함정이자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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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95 | 한편 [[아메리카]]에서는 유럽 식민제국에서 독립한 신생국들이 유럽식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아이티 제국]][* [[근대]] 아메리카에서 [[미국]] 다음으로 독립을 달성했으며,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인의 황제|황제]]를 칭하자 아이티 독립군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은 자국이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와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황제 자크 1세로 즉위하며 [[아이티 제1제국]]을 수립했다.][* [[아이티 제2제국]]은 [[아이티 제1공화국|아이티 공화국]] 제7대 대통령이었던 포스탱 엘리 술루크가 황제 포스탱 1세로 즉위하여 다스렸다.], [[멕시코 제국]][* 독립군 지도자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멕시코 황제]] 아구스틴 1세를 칭하며 [[멕시코 제1제국]]을 수립했다.][* [[멕시코 제2제국]]은 [[프랑스 제2제국]]의 괴뢰국이었다.], [[브라질 제국]][* 제국을 선포한 주체가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왕세자 페드루였지만, 브라질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본국에 반기를 들고 [[브라질 황제]] 페드루 1세로 즉위했으며, 부왕 주앙 6세의 [[포르투갈 국왕|포르투갈 왕위]]를 일시적으로 승계하기도 했으나 딸 마리아 2세에게 포르투갈 왕위를 넘겨서 포르투갈 왕국과 브라질 제국의 동군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등이 수립되었는데, 이들은 신대륙에 위치했던만큼 [[로마 제국 계승론|로마 계승]]과는 아예 무관했고 기존의 현지 제국을 계승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런 칭호도 없는 빈 땅에 새로운 황제 칭호를 창조해내는 것도 칭호와 영지가 직결된다는 관점에 따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
| 96 | 96 | ==== 20세기: 황제국의 종말 ==== |
| 97 | 97 |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로마 계승을 주장하며 황제를 칭한 제국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며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렸다. |
| 98 | 98 | |
| 99 | 우선 [[러시아 제국]]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가장 먼저 붕괴되었고, 1918년에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제가 퇴위하고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폐지되었으며, 그나마 [[오스만 제국]]이 패전 이후에도 제정을 유지하며 버텼으나 연합국에게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실권을 장악한 전쟁영웅 [[무스타파 케말]]이 1922년에 마지막 황제 메흐메트 6세를 폐위시키며 유럽에서 로마 계승을 표방하며 칭제한 국가들은 모두 멸망했다. | |
| 99 | 우선 [[러시아 제국]]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가장 먼저 붕괴되었고, 1918년에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제가 퇴위하고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폐지되었으며, 그나마 [[오스만 제국]]이 패전 이후에도 제정을 유지하며 버텼으나 연합국에게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실권을 장악한 전쟁영웅 [[무스타파 케말]]이 1922년에 마지막 [[오스만 황제|황제]] 메흐메트 6세를 폐위시키며 유럽에서 로마 계승을 표방하며 칭제한 국가들은 모두 멸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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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 101 | 그리고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가 1936년부터 1941년까지 겸임하던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황제위]]를 [[영국]]에게 패하여 토해내고, 그 영국도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승인하며 [[인도 황제|인도 황제위]] 겸임을 포기함으로써, 동군연합이라는 편법으로나마 제위를 유지하던 나라들마저 사라지고 유럽에는 더이상 황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 102 | 102 | == 유럽 문화권의 황제국 및 칭호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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