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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밀라노 칙령|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
| 23 | 23 | ==== 번외 ==== |
| 24 | 24 | ===== 3세기의 자칭 독립 제국들 ===== |
| 25 |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의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 |
| 25 |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의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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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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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고대 로마인|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Carausius)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 |
| 29 |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고대 로마인|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Carausius)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 |
| 30 | 30 | ===== [[로마 제국|로마]]와 [[이란]] [[왕중왕]]의 관계 ===== |
| 31 | 31 | 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 왕국|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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