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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7 vs r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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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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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제국]]의 [[로마 황제|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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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 상세 내용, 문서명=로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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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황제 칭호는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황제/한자문화권|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와 달리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여 공화정 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독재]]를 구축하려는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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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황제]] 칭호는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황제/한자문화권|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와 달리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여 공화정 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독재]]를 구축하려는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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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마 제국]]의 초기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고대 로마인|시민]]의 대표인 [[프린켑스]](Princeps)가 다스리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주]]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세습까지 가능한 제정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이른바 [[원수정]]([[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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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마 제국]]의 초기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고대 로마인|시민]]의 대표인 [[프린켑스]](Princeps)가 다스리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주]]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세습까지 가능한 [[군주|제]]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이른바 [[원수정]]([[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체제였다.
1616
17
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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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1818
19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19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치제|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2020
21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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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밀라노 칙령|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2222
==== 번외 ====
2323
===== 3세기의 자칭 독립 제국들 =====
24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의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24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의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2525
2626
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2727
28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Carausius)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28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고대 로마인|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Carausius)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2929
===== [[로마 제국|로마]]와 [[이란]] [[왕중왕]]의 관계 =====
30
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 왕국|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30
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 왕국|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3131
3232
두 제국은 로마와 파르티아가 처음 충돌한 기원전 1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에 의해 멸망하는 기원후 7세기까지 [[로마-페르시아 전쟁|700여년에 걸쳐 중근동 세계의 패권을 겨룬]] 숙명의 [[라이벌]]이었으나, 서로의 황제위에 대한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3333
......
3636
====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 ====
3737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국의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은 굳건하게 유일한 황제국으로서 존재했고, 서방 국가들도 그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좋든 싫든 유럽에서 황제는 곧 [[로마 황제]]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
3838
39
따라서 동로마에 맞서 황제를 칭하려는 이민족 국가들도 좋든 싫든 로마의 정통성을 가져다가 황제를 칭해야만 했고, 처음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가 800년에 [[로마인의 황제]]를 칭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황제를 칭한 이민족 국가들은 국호에 로마를 집어넣거나[* [[신성 로마 제국]], 로마니아 제국([[라틴 제국]]).], 로마와 관련된 명칭이 들어간 황제 칭호[*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등]를 사용했다.
40
==== 서방 세계의 부가적 요건: 교회의 인정 ====
41
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는 이와 별도로 교회의 인정, 정확히는 [[교황]]의 인정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39
따라서 동로마에 맞서 황제를 칭하려는 이민족 국가들도 좋든 싫든 로마의 정통성을 가져다가 황제를 칭해야만 했고, 처음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가 800년에 [[로마인의 황제]]를 칭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황제를 칭한 이민족 국가들은 국호에 로마를 집어넣거나[* [[신성 로마 제국]], [[로마니아 제국]]([[라틴 제국]]).], 로마와 관련된 명칭이 들어간 황제 칭호[*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등]를 사용했다.
40
==== 서방 세계의 부가적 요건: [[교회]]의 인정 ====
41
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는 이와 별도로 교회의 인정, 정확히는 [[교황]]의 인정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4242
43
고대 로마에서 직접 이어지는 제국이라 굳이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로마 제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방 가톨릭 세계의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은 태생부터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에게 [[대관식|관을 씌워주며]] 시작되었기에 교회의 인정이 곧 제국의 존립 그 자체를 보증해주는 필수요소였으며, [[신성 로마 황제]]들은 황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교황으로부터 대관받기 이전까지는 왕을 칭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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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에서 직접 이어지는 제국이라 굳이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로마 제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방 가톨릭 세계의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은 태생부터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에게 [[대관식|관을 씌워주며]] 시작되었기에 교회의 인정이 곧 제국의 존립 그 자체를 보증해주는 필수요소였으며, [[신성 로마 황제]]들은 황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교황으로부터 대관받기 이전까지는 왕을 칭해야만 했다.
4444
45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이 여러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가 되어 유명무실해지는 계기가 된 건 가톨릭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개신교가 제국 북부를 휩쓴 16~17세기 종교 개혁이었으니, 말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가톨릭 교회의 인정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45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이 여러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가 되어 유명무실해지는 계기가 된 건 가톨릭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개신교]]가 제국 북부를 휩쓴 16~17세기 종교 개혁이었으니, 말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가톨릭 교회의 인정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4646
==== 번외 ====
4747
===== 중세 [[스페인]]의 자칭 황제들 =====
4848
레콩키스타가 진행 중이던 중세 스페인에서는 여러 [[가톨릭]] [[왕국]]의 [[군주]]들이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를 칭했으나, 이들은 억지로라도 [[로마 제국|로마]]와의 연관성을 찾아서 칭제한 나라들과 달리 [[로마 제국 계승론|로마 제위 계승]]과 무관하게 칭제한 것이기에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
5656
==== 서방: [[신성 로마 제국]]의 [[선거군주제|선출 황제]] ====
5757
15세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로 선출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교황]]이 집전하는 [[대관식]] 이전까지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하던 관례를 깨고 선출 직후에 바로 황제를 칭했는데, 본거지인 [[오스트리아]] 외에도 저지대 국가(지금의 베네룩스)를 비롯한 여러 영지를 획득하며 기세를 올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세에 눌린 교황이 마지못해 이를 인정하여, 교황 집전 대관식 없이도 황제를 칭할 수 있게 되었고, 아예 [[신성 로마 황제]]의 공식 칭호가 '''선출된 로마 황제'''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5858
59
막시밀리안 1세 사후에 선출된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대관받기는 했으나, 이는 황제로 즉위하고 수십년이 지난 1527년에 교황의 도시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교황에 대한 황제권의 우위를 확정지은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였으므로, 이때의 대관식은 오히려 교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했다.
59
막시밀리안 1세 사후에 선출된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대관받기는 했으나, 이는 황제로 즉위하고 수십년이 지난 1527년에 교황의 도시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교황에 대한 황제권의 우위를 확정지은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였으므로, 이때의 대관식은 오히려 교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했다.
6060
61
카를 5세 이후의 황제들은 위와 같은 형식적인 대관식마저 치르지 않고 선거 직후에 바로 황제가 되었으며, 이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지속되었다.
61
카를 5세 이후의 황제들은 위와 같은 형식적인 대관식마저 치르지 않고 선거 직후에 바로 황제가 되었으며, 이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지속되었다.
6262
==== 동방 ====
6363
===== [[오스만 제국]]의 카이세리 룸 =====
64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카이세리 룸)을 칭하고, 동로마의 국교였던 정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정교도 신민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64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카이세리 룸)을 칭하고, 동로마의 국교였던 [[정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정교도 신민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6565
66
이와 별도로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어로 '왕들의 주인'을 뜻하는 중동식 황제 칭호인 파디샤 역시 사용하고, 1517년부터는 이슬람 세계의 수장인 [[칼리파]] 칭호 역시 카이로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강탈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중근동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디샤이자 칼리파로서,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는 로마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두 거대 종교권에 걸친 제국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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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도로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어로 '왕들의 주인'을 뜻하는 중동식 황제 칭호인 파디샤 역시 사용하고, 1517년부터는 이슬람 세계의 수장인 [[칼리파]] 칭호 역시 카이로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강탈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중근동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디샤이자 칼리파로서,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는 로마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두 거대 종교권에 걸친 제국을 유지했다.
6767
===== [[전러시아의 황제]] =====
6868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전러시아의 황제)]
6969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칭했으며, 이반 4세 시대부터는 공식 국호 역시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루스 차르국]]으로 변경했다.
......
7474
==== 번외: 근세 유럽인들과 다른 문화권의 황제 ====
7575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어 유럽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유럽인들이 존재를 인식하는 다른 문화권의 황제들도 늘어났고, 유럽인들은 그들의 존재 역시 해당 문화권 내에서는 황제급 위상을 가진다고 인정했다.
7676
77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유럽 기독교 제국들과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 칭호는 인정받지 못해도 이슬람 세계의 황제급 칭호인 파디샤(왕들의 주인)과 [[칼리파]]는 인정받았고, 그 라이벌인 이란계 제국[*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왕중왕]](샤한샤),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제국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의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와 머나먼 동방의 거대 제국인 명청시대 [[중화제국|중국]]의 [[천자]], [[인도]] [[무굴 제국]]의 파디샤 등도 해당 문화권을 대표하는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77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유럽 기독교 제국들과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 칭호는 인정받지 못해도 이슬람 세계의 황제급 칭호인 파디샤(왕들의 주인)과 [[칼리파]]는 인정받았고, 그 라이벌인 이란계 제국[*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왕중왕]](샤한샤),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제국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의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와 머나먼 동방의 거대 제국인 명청시대 [[중화제국|중국]]의 [[천자]], [[인도]] [[무굴 제국]]의 파디샤 등도 해당 문화권을 대표하는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7878
7979
그러나 오늘날 제국이라 불리는 모든 문화권 황제국들이 이러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는데, 대항해시대 초기에 콩키스타도르에게 무너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그냥 힘 좀 쓰는 왕국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8080
=== 근대 ===
......
8383
8484
우선 [[신성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하는 [[프랑스 제1제국|별개의 가톨릭 제국]]을 다름아닌 교황이 [[대관식]]을 집전하여[* 단, 나폴레옹은 교황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관을 머리에 썼다.] 인정함으로써 [[가톨릭]] 세계에는 하나의 제국만이 존재한다는 중세적 관념이 붕괴되었고, 신성 로마 황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오스트리아 황제]] 칭호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8585
86
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 - 위그 카페 - 나폴레옹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억지로나마 로마 계승을 표방하긴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 본인이었으니 [[로마 제국 계승론]]에 입각한 황제위 계승 논리가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칭제에 필요한 명분과 대내외적 여건이 크게 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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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 - 위그 카페 - 나폴레옹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억지로나마 로마 계승을 표방하긴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 본인이었으니 [[로마 제국 계승론]]에 입각한 황제위 계승 논리가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칭제에 필요한 명분과 대내외적 여건이 크게 완화되었다.
8787
8888
그리고 1871년에 이르러선 로마 계승과 무관해보였던 [[개신교]] 국가 [[프로이센 왕국]]마저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독일 제국]][* 이후에도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제국의 구성국으로서 존속했다.]을 선포하고 [[독일 황제|황제]]를 칭하며 이와 같은 칭제 릴레이에 동참했다.
8989
==== 다른 문화권을 이용한 편법 칭제 ====
......
9595
==== 20세기: 황제국의 종말 ====
9696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로마 계승을 주장하며 황제를 칭한 제국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며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렸다.
9797
98
우선 [[러시아 제국]]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가장 먼저 붕괴되었고, 1918년에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제가 퇴위하고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폐지되었으며, 그나마 [[오스만 제국]]이 패전 이후에도 제정을 유지하며 버텼으나 연합국에게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실권을 장악한 전쟁영웅 무스타파 케말이 1922년에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키며 유럽에서 로마 계승을 표방하며 칭제한 국가들은 모두 멸망했다.
98
우선 [[러시아 제국]]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가장 먼저 붕괴되었고, 1918년에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제가 퇴위하고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폐지되었으며, 그나마 [[오스만 제국]]이 패전 이후에도 제정을 유지하며 버텼으나 연합국에게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실권을 장악한 전쟁영웅 [[무스타파 케말]]이 1922년에 마지막 황제 메흐메트 6세를 폐위시키며 유럽에서 로마 계승을 표방하며 칭제한 국가들은 모두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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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0
그리고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가 1936년부터 1941년까지 겸임하던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황제위]]를 [[영국]]에게 패하여 토해내고, 그 영국도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승인하며 [[인도 황제|인도 황제위]] 겸임을 포기함으로써, 동군연합이라는 편법으로나마 제위를 유지하던 나라들마저 사라지고 유럽에는 더이상 황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101101
== 유럽 문화권의 황제국 및 칭호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