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24 vs r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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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15 |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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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17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
| 18 | ==== 번외 | |
| 18 | ==== 번외 ==== | |
| 19 | ===== 3세기의 자칭 독립 제국들 ===== | |
| 19 | 20 |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의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
| 20 | 21 | |
| 21 | 22 | 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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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4 | 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
| 25 | ===== 로마와 이란 왕중왕의 관계 ===== | |
| 26 | 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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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두 제국은 로마와 파르티아가 처음 충돌한 기원전 1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에 의해 멸망하는 기원후 7세기까지 700여년에 걸쳐 중근동 세계의 패권을 겨룬 숙명의 [[라이벌]]이었으나, 서로의 황제위에 대한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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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이는 양국 황제 칭호의 기원이 달랐기 때문인데[* 로마 황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면서 형성되었고, 이란의 왕중왕은 아시리아의 군주가 일반적인 왕(샤르)보다 높은 왕중왕(샤르 샤라니)를 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로마 황제나 이란 왕중왕이나 둘다 한자어 황제, 영어 Emperor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대인들은 각자 상대국의 지배자가 쓰는 별개의 칭호로 인식했기에, 로마인들이나 이란인들이나 서로의 황제 칭호가 자국 황제 칭호의 정통성과 충돌한다는 의식은 갖지 않았다. | |
| 24 | 31 | === 중세 === |
| 25 | 32 | ====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 ==== |
| 26 | 33 |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국의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은 굳건하게 유일한 황제국으로서 존재했고, 서방 국가들도 그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좋든 싫든 유럽에서 황제는 곧 [[로마 황제]]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 |
| ... | ... | |
| 32 | 39 | 고대 로마에서 직접 이어지는 제국이라 굳이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로마 제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방 가톨릭 세계의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은 태생부터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에게 관을 씌워주며 시작되었기에 교회의 인정이 곧 제국의 존립 그 자체를 보증해주는 필수요소였으며, [[신성 로마 황제]]들은 황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교황으로부터 대관받기 이전까지는 왕을 칭해야만 했다. |
| 33 | 40 | |
| 34 | 41 |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이 여러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가 되어 유명무실해지는 계기가 된 건 가톨릭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개신교가 제국 북부를 휩쓴 16~17세기 종교 개혁이었으니, 말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가톨릭 교회의 인정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
| 35 | ==== 번외 | |
| 42 | ==== 번외 ==== | |
| 43 | ===== 중세 스페인의 자칭 황제들 ===== | |
| 36 | 44 | 레콩키스타가 진행 중이던 중세 스페인에서는 여러 가톨릭 왕국의 군주들이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를 칭했으나, 이들은 억지로라도 로마와의 연관성을 찾아서 칭제한 나라들과 달리 로마 제위 계승과 무관하게 칭제한 것이기에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
| 45 | ===== 중세 유럽인들과 다른 문화권의 황제 ===== | |
| 46 | 중세 유럽인들은 위와 같이 제위 계승에 있어서 [[로마 제국]]과 연결되는 정통성을 극도로 중시했으나, 이슬람 세계의 칼리파, 유라시아 대초원의 카간(대칸) 등 다른 문화권의 황제급 칭호들에 대해서는 그냥 '아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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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이는 중세 유럽의 봉건적 관습에서 작위는 토지와 직결되기에 유럽에는 [[로마 황제]]만이 존재할 수 있어도 다른 대륙에는 다른 황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대 로마인]]들이 이란 왕중왕에 대해 가졌던 견해, 즉 '기원이 다른 칭호면 로마 황제와 무관한 별개의 칭호'라는 인식이 더 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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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그래서 아예 다른 대륙에 있던 제국들은 물론이고 로마의 속주였던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진 코르도바 칼리파국도 이슬람이라는 종교 때문에 이교도라고 욕을 먹을 지언정, 로마의 정통성과 연계해서 물고 늘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37 | 51 | === 근세 === |
| 38 | 52 | ==== 서방: 신성 로마 제국의 선출 황제 ==== |
| 39 | 53 | 15세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로 선출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교황이 집전하는 대관식 이전까지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하던 관례를 깨고 선출 직후에 바로 황제를 칭했는데, 본거지인 오스트리아 외에도 저지대(지금의 베네룩스)를 비롯한 여러 영지를 획득하며 기세를 올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세에 눌린 교황이 마지못해 이를 인정하여, 교황 집전 대관식 없이도 황제를 칭할 수 있게 되었고, 아예 [[신성 로마 황제]]의 공식 칭호가 '''선출된 로마 황제'''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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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66 | 루스 차르국은 유럽의 주류 국가들과 이질적인 동방 국가인데다 칭호 역시 유럽의 국제어인 라틴어가 아닌 슬라브어 칭호인 차르고, 국력도 주변국들[* 오스만,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 국제 사회에서 제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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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68 |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개혁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대북방전쟁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가면서 열강을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1721년에 기존의 차르 칭호 대신 서구식 칭호인 '''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황제)'''를 칭하며 명실상부한 황제국이 되었다. |
| 69 | ==== 번외: 근세 유럽인들과 다른 문화권의 황제 ==== | |
| 70 |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어 유럽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유럽인들이 존재를 인식하는 다른 문화권의 황제들도 늘어났고, 유럽인들은 그들의 존재 역시 해당 문화권 내에서는 황제급 위상을 가진다고 인정했다. | |
| 71 | ||
| 72 |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유럽 기독교 제국들과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 칭호는 인정받지 못해도 이슬람 세계의 황제급 칭호인 파디샤(왕들의 주인)과 칼리파는 인정받았고, 그 라이벌인 이란계 제국[*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왕중왕(샤한샤),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제국 에티오피아의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와 머나먼 동방의 거대 제국인 명청시대 중국의 천자, 인도 무굴 제국의 파디샤 등도 해당 문화권을 대표하는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 |
| 73 | ||
| 74 | 그러나 오늘날 제국이라 불리는 모든 문화권 황제국들이 이러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는데, 대항해시대 초기에 콩키스타도르에게 무너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당대 유럽인들은 그냥 힘 좀 쓰는 왕국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 |
| 55 | 75 | === 근대 === |
| 56 | ==== 나폴레옹의 | |
| 57 | ==== 19세기의 칭제 | |
| 58 | ==== 제정의 종말: | |
| 76 | ==== 나폴레옹의 칭제와 19세기의 변화 ==== | |
| 77 | 1804년 나폴레옹이 교황을 파리로 끌고 와서 [[프랑스인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럽의 황제위 계승론에도 변화게 생겼다, | |
| 78 | ||
| 79 | 우선 신성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하는 별개의 가톨릭 제국을 다름아닌 교황이 대관식을 집전하여[* 단, 나폴레옹은 교황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관을 머리에 썼다.] 인정함으로써 가톨릭 세계에는 하나의 제국만이 존재한다는 중세적 관념이 붕괴되었고, 신성 로마 황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오스트리아 황제]] 칭호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 |
| 80 | ||
| 81 | 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 - 위그 카페 - 나폴레옹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억지로나마 로마 계승을 표방하긴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 본인이었으니 [[로마 제국 계승론]]에 입각한 황제위 계승 논리가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칭제에 필요한 명분과 대내외적 여건이 크게 완화되었다. | |
| 82 | ||
| 83 | 그리고 1871년에 이르러선 로마 계승과 무관해보였던 개신교 국가 프로이센 왕국마저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독일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를 칭하며 이와 같은 칭제 릴레이에 동참했다. | |
| 84 | ==== 다른 문화권을 이용한 편법 칭제 ==== | |
| 85 | 19~20세기에는 기존의 유럽 황제국들과 달리 자국 본토에서는 계속 왕을 칭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하는 동군연합을 통해 황제가 되는 신박한 편법마저 등장했는데, 이는 다른 문화권에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이 가능했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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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우선 영국은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가 보유했으나 자신들이 없애버렸던 '인도 황제' 칭호를 20년만에 부활시키는 꼼수를 두며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이탈리아 왕국은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에티오피아 왕중왕(황제) 칭호를 강탈하여 황제를 칭했다. | |
| 88 | ||
| 89 | 한편 아메리카에서는 유럽 식민제국에서 독립한 신생국들이 유럽식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아이티 제국, 멕시코 제국, 브라질 제국[* 제국을 선포한 주체가 포르투갈 왕세자 페드루였지만, 브라질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본국에 반기를 들고 황제 페드루 1세로 즉위했으며, 부왕의 포르투갈 왕위를 일시적으로 승계하기도 했으나 딸 마리아 2세에게 양위하여 포르투갈 왕국과 브라질 제국의 동군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등이 수립되었는데, 이들은 신대륙에 위치했던만큼 로마 계승과는 아예 무관했고 기존의 제국을 계승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런 칭호도 없는 빈 땅에 새로운 황제 칭호를 창조해내는 것도 칭호와 영지가 직결된다는 관점에 따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 |
| 90 | ==== 제정의 종말: 20세기 ==== | |
| 59 | 91 | == 유럽 문화권의 황제국 및 칭호 목록 == |
| 60 | 92 | * [[로마 제국]]: [[로마 황제]] |
| 61 | 93 | * [[서로마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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