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76 vs r77
......
8383
8484
그리고 1871년에 이르러선 로마 계승과 무관해보였던 개신교 국가 프로이센 왕국마저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독일 제국을 선포하고 [[독일 황제|황제]]를 칭하며 이와 같은 칭제 릴레이에 동참했다.
8585
==== 다른 문화권을 이용한 편법 칭제 ====
86
19~20세기에는 기존의 유럽 황제국들과 달리 자국 본토에서는 계속 왕을 칭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하는 동군연합을 통해 황제가 되는 신박한 편법마저 등장했는데, 이는 다른 문화권에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기에 가능했디.
86
19~20세기에는 기존의 유럽 황제국들과 달리 자국 본토에서는 계속 [[]]을 칭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하는 동군연합을 통해 황제가 되는 신박한 편법마저 등장했는데, 이는 다른 문화권에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기에 가능했디.
8787
88
우선 영국은 1857년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폐위시키며 자신들이 없애버렸던 '인도 황제' 칭호를 20여년만인 1876년에 부활시키는 꼼수를 두며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은 1936년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점령한 후 [[이탈리아 국왕|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왕중왕|에티오피아 황제위]]를 바쳤다.[* 로마 제국의 본토였던 이탈리아 반도를 보유한 왕국이 직접 제국을 칭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한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국내외 정세는 쉽게 자국을 황제국으로 격상시킬 여력이 없었다. 우선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고, 1870년에는 로마를 병합하긴 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교황]]을 압박하여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여력이 없었으며, 교황청과의 관계도 험악했다. 또한 입헌군주제라 군주의 입맛대로 칭호 격상 및 국호 변경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일당독재 정권을 구축하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교황청과의 관계도 개선한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기에는 이전에 비해 칭제 난이도가 내려갔지만, 그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탈리아 제국 선포를 시도하진 않았다. 정작 꼼수를 쓰면서 황제 칭호를 가져온 에티오피아 합병이 단순 칭제보다 더 큰 반발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한 게 함정이자만(...)]
88
우선 영국은 1857년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폐위시키며 자신들이 없애버렸던 '인도 황제' 칭호를 20여년만인 1876년에 부활시키는 꼼수를 두며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은 1936년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점령한 후 [[이탈리아 국왕|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왕중왕|에티오피아 황제위]]를 바쳤다.[* 로마 제국의 본토였던 이탈리아 반도를 보유한 왕국이 직접 제국을 칭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황제 칭호를 겸임한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국내외 정세는 쉽게 자국을 황제국으로 격상시킬 여력이 없었다. 우선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고, 1870년에는 로마를 병합하긴 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교황]]을 압박하여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여력이 없었으며, 교황청과의 관계도 험악했다. 또한 입헌군주제라 군주의 입맛대로 칭호 격상 및 국호 변경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일당독재 정권을 구축하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교황청과의 관계도 개선한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기에는 이전에 비해 칭제 난이도가 내려갔지만, 그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탈리아 제국 선포를 시도하진 않았다. 정작 꼼수를 쓰면서 황제 칭호를 가져온 에티오피아 합병이 단순 칭제보다 더 큰 반발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한 게 함정이자만(...)]
8989
9090
한편 아메리카에서는 유럽 식민제국에서 독립한 신생국들이 유럽식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아이티 제국[* 근대 아메리카에서 미국 다음으로 독립을 달성했으며,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를 칭하자 아이티 독립군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은 자국이 프랑스와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황제 자크 1세로 즉위하며 아이티 제1제국을 수립했다.][* 아이티 제2제국은 대통령이었던 포스탱 엘리 술루크가 황제 포스탱 1세로 즉위하여 다스렸다.], 멕시코 제국[* 독립군 지도자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황제 아구스틴 1세를 칭하며 멕시코 제1제국을 수립했다.][* 멕시코 제2제국은 프랑스 제2제국의 괴뢰국이었다.], 브라질 제국[* 제국을 선포한 주체가 포르투갈 왕세자 페드루였지만, 브라질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본국에 반기를 들고 황제 페드루 1세로 즉위했으며, 부왕 주앙 6세의 포르투갈 왕위를 일시적으로 승계하기도 했으나 딸 마리아 2세에게 포르투갈 왕위를 넘겨서 포르투갈 왕국과 브라질 제국의 동군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등이 수립되었는데, 이들은 신대륙에 위치했던만큼 로마 계승과는 아예 무관했고 기존의 현지 제국을 계승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런 칭호도 없는 빈 땅에 새로운 황제 칭호를 창조해내는 것도 칭호와 영지가 직결된다는 관점에 따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9191
==== 20세기: 황제국의 종말 ====
......